좌절된 애도, 함께 나누지 못한 슬픔이 되돌아올 때
좌절된 애도, 함께 나누지 못한 슬픔이 되돌아올 때
  • 권명아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 승인 2017.05.17 17:17
  • 수정 2017-07-12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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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기표 1번과 5번으로 나뉜

조롱과 증오의 공방전 끝은 어디

 

정당 정치 너머, 부당한 죽음에 대한

좌절된 애도를 정치적 주체화로 

2014년 7월, 세월호 참사 100일이 지나고 있었다. 단식 농성을 하던 유가족은 탈진해서 병원으로 실려 가고, 생존 학생들이 안산에서 국회의사당으로 행진했다. 보수정당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유가족에 대한 혐오발화를 쏟아내고 있었다. 가족과 친구,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당사자들의 마음과 비교할 수 없지만, 세월호 참사는 많은 이들에게 극심한 상처를 남겼다. 무엇보다 가장 큰 상처는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없었다는 것, 국가와 정치 공동체가 슬픔을 나누는 것을 강제로 좌절시키고 조롱하고 매도한 것이다.

2016년 5월 강남역에서 발생한 여성 살해 증오 범죄 이후, 여성들은 이 사건을 공동체 모두의 문제로 함께 논의하고 애도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슬픔과 애도는 ‘여성의 일’로, 증오는 그런 여성들을 남성 혐오라고 매도하는 집단의 것으로 각각 할당돼버렸다. 2003년 4월, 성소수자 활동가인 육우당은 혐오발화가 넘쳐나는 현실에 절망해 생을 마감했다. 올해는 육우당의 14주기가 되는 해다. 한국의 진보 정치가 국가 폭력에 의한 부당한 죽음을 애도하는 데서 시작됐다면, 소수자 정치 역시 애도 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1번과 5번으로 나뉜 조롱과 증오의 공방전이 끝을 모른다. 한편에서는 육우당을 기이하게 인용하면서 성소수자 정치를 조롱하거나, 다른 한편에서는 죽음의 트라우마를 무시한 채 정치 팬덤으로 상대를 조롱하는 담론들이 넘쳐난다. 한쪽 편을 들지 않으면 어차피 양비론으로 매도될 터이나, 증오가 난무하는 담론 공간에서 휘발되는 죽음의 무게에 대해, 잠시라도 말을 건네고 싶다.

먼저 페미니즘이나 소수자 정치는 한국에서 정당 정치와 특별한 접점을 갖고 있지 않다. 이번 대선에서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이슈가 뜨거운 논란이 되면서 정당 지지자별로 페미니즘과 반페미니즘 진영이 나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대선 이후까지 정당 중심의 진영 재편이 이어지는 것은 페미니즘 실천의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의당이 페미니즘의 보루도 아니고, 더불어민주당이 언제까지나 반페미니즘 정당일 수도 없다. 무엇보다 페미니스트와 퀴어 이론가들이 이런 분할을 지속하는 데 기여하기보다, 대선 이후의 새로운 지형도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페미니즘을 비판한다고 페미니즘 정치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위안부’ 담론이 상징하듯 페미니즘은 증언과 애도의 정치학에 대한 깊은 이론적 사유와 실천의 역사를 갖고 있다. 팬덤 정치에 대한 비판도 페미니즘의 주요 이론적 실천 영역이다. 동시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당한 죽음과 여기서 비롯된 트라우마 그리고 좌절된 애도가 남긴 문제를 사유하고 감당하는 것도 페미니즘 이론의 중요 과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당한 죽음은 많은 사람에게 막대한 트라우마를 남겼다. 정치 팬덤에 대한 비판과 문제 제기와는 또 별도로 사실 이 트라우마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일베와 극우 보수 논객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조롱하고 매도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점을 정치 공학이 아닌 페미니즘 정치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증오 정치에 의해 애도가 좌절되면서 촉발되는 여러 양태에 대해 페미니즘의 사유는 개입해나가야 한다.

부당한 죽음이 여전히 조롱과 매도의 대상이 되는 현실에서 트라우마는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 또 이 트라우마는 자기보존 본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맹렬하게 달려간다. 애도에 대한 모든 이론이 말하는바, 상실의 공포가 자기보존 본능과 공격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게 하려고 애도의 윤리와 정치가 필요하다. 그간 정치 팬덤에 대한 논의도 이론적 사유보다는 ‘*빠’식의 비하적인 딱지 붙이기(라벨링)로 환원됐다. 적어도 이론의 영역은 이런 딱지 붙이기와는 다른 사유를 펼쳐나가야 한다.

또 고 노무현 대통령의 부당한 죽음에 대해서는 집단 트라우마와 증오 정치라는 적대적으로 분할된 담론 지형의 각축전에 내맡겨졌다. 집단 트라우마와 증오 정치에 대해 페미니즘의 이론과 실천은 더 깊이 개입하고 사유해나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는 정당 정치나 정치인에 대한 지지나 선호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온전히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의 문제다. 정당 정치와 접점을 더 많이 만들고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페미니즘 정치에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정당 정치 너머, 부당한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와 좌절된 애도를 새로운 정치적 주체화로 변용시킬 수 있는 이론과 실천이 필요하다. 거기서 비로소 대선 이후의, 대선 너머의 페미니즘 정치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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