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성우가 VR(가상현실) 게임 속 미성년자 여성 캐릭터의 속옷을 훔쳐보는 영상을 온라인에 올려 파문이 일고 있다. 게임 속에서라지만, 성범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퍼뜨릴 우려가 높은 행위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해당 성우 보이콧을 주장하는 게임 팬들도 있다. 

문제의 영상은 성우 진정일(37) 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진정크랫TV’에 지난달 28일 올린 ‘(후방주의) 섬머레슨 팬티 훔쳐보기, PS VR 가상현실 게임 by 진정일 성우’이다. 약 3분짜리 영상으로, 진 씨가 VR 연애시뮬레이션 게임 ‘서머 레슨’을 직접 플레이하면서 수차례 시도 끝에 여성 캐릭터의 치마 속 팬티를 훔쳐보는 과정을 담았다. 직접적인 성적 묘사가 없는 12세 이용가 게임이지만, 진 씨는 게임 팬들 사이에 알려진 각종 편법을 동원했다. 여성 캐릭터의 의상을 선택할 때 “짧은 걸 입혀야 돼”라며 짧은 교복 치마를 입히고, 여성 캐릭터에게 “이리 오너라. 누구긴! 너의 속옷을 훔쳐볼 사람이란다”라고 말한 후 수차례 고개를 숙여서 속옷을 훔쳐보려고 시도하는 식이었다.

 

 

이는 명백히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행위이며, 성폭력에 대한 낮은 한국 사회의 인식을 드러낸 사건이라는 지적이 빗발쳤다. 진 씨의 팬카페 ‘작은 요정마을’ 운영진은 이에 대해 지난달 29일 “옳지 못한 일이고 옹호의 뜻이 없다”며 팬카페 운영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성우 진정일 씨의 팬카페 ‘작은 요정마을’ 운영진은 지난달 29일 “(진 씨의 ‘여자 팬티 훔쳐보기’ 게임 방송은) 옳지 못한 일이고 옹호의 뜻이 없다”며 팬카페 운영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성우 진정일 씨의 팬카페 ‘작은 요정마을’ 운영진은 지난달 29일 “(진 씨의 ‘여자 팬티 훔쳐보기’ 게임 방송은) 옳지 못한 일이고 옹호의 뜻이 없다”며 팬카페 운영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2011년 EBS 22기 공채 성우로 데뷔한 진 씨는 인기 온라인FPS 게임 ‘오버워치’의 캐릭터 ‘정크랫’ 목소리를 연기해 주목받았다. 오버워치 공식 커뮤니티와 SNS에선 진 씨를 보이콧하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여성 게이머 이하진(23) 씨는 “미성년자 성범죄 피해자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성폭력을 재미있는 소재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황당하고 불쾌하다. 진 성우의 사과와 책임 있는 후속 조처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게임업계가 여성을 대하는 차별적 태도를 명백하게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근 다수의 제작사와 게이머들이 현실의 여성혐오를 분별없이 답습하거나, 아예 포르노 수준의 게임과 관련 콘텐츠를 선보였다. 업계 안팎의 비판에도 끄떡없다. 이번 ‘팬티 훔쳐보기’ 사건의 경우에도, 적지 않은 게임 팬들이 “단순한 해프닝인데 페미니스트들이 과장된 억지 주장을 펼친다” “남성 게임 캐릭터를 갖고 팬픽을 쓰거나 성적으로 소비하는 경우도 문제다” 등 반응을 내놓았다. 

반면 업계 내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는 매번 삭제되거나 축소됐다. 지난해 7월, 성우 김자연 씨는 메갈리아 티셔츠를 입고 SNS에 인증샷을 올렸다는 이유로 ‘넥슨’ 게임에서 하차했다. 김 씨가 연기한 게임 주인공의 목소리도 삭제됐다. 지난해 11월 1일, 김 씨를 지지하며 페미니즘 관련 발언을 해온 일러스트 작가 송미나 씨도 ‘넥스트 플로어’ 게임 일러스트 작업을 삭제당했다. “‘메갈 티셔츠’는 퇴출감이고, ‘팬티 훔쳐보기’ 게임은 ‘게임에서 재미로 한 일이니 봐주자’며 옹호할 일이다? 게임업계 전반에 여성을 차별하고 존중하지 않는 정서가 이토록 만연하다는 겁니다.” 진 성우 보이콧 운동을 제안한 여성 게이머 김주령(29) 씨의 비판이다.

여성신문은 진 씨의 입장을 듣고자 2일 오후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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