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

식약처 허가 받은 월경컵 아직 없어

허가 위해 필요한 실험비용 약 2억원

마련 위한 ‘블랭크 컵 프로젝트’ 시작

1개월 만에 약 1800명 십시일반 참여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가 월경컵을 소개하고 있다. 안 대표는 30여개의 제품을 분석해 직접 디자인한 월경컵 ‘블랭크 컵’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가 월경컵을 소개하고 있다. 안 대표는 30여개의 제품을 분석해 직접 디자인한 월경컵 ‘블랭크 컵’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에서 월경컵 판매는 불법이다. 월경컵을 구입하려면 현재로선 ‘해외직구’ 말고는 답이 없다. 월경컵은 생리대처럼 의약외품이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허가를 받아야만 제조와 판매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불법이라는 것은 식약처 허가를 받은 제품이 전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월경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제조하려는 기업도 있지만 허가를 받기 위해 필요한 시간과 비용은 이들의 발목을 잡는다. 식약처 허가를 받으려면 수개월간 임상시험 등 다양한 안정성 실험을 거쳐야 하는데 소요되는 추정 비용만 약 2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 금액을 모두 제조업체가 떠안아야 한다. 임상실험의 경우 동일한 원료를 사용했다면 다른 업체들은 받지 않아도 된다.

첫 길을 내야 하는 선두주자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모두가 주저하는 상황에서 ‘이지앤모어’를 이끄는 안지혜(31) 대표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직원 2명이 전부인 소셜벤처가 해내기엔 무모한 도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안 대표는 성공을 자신했다. 이지앤모어 뒤에는 1800명에 달하는 시민들의 연대가 있기 때문이다. 국내 첫 월경컵 출시 허가를 받기 위한 ‘블랭크 컵 프로젝트(Blank Cup Project)’ 이야기다.

이지앤모어는 지난 4월 5일 와디즈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을 통해 블랭크 컵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 달이 지난 5월 1일 현재 목표 금액 5000만원의 75%인 37000여만을 달성했다. 현재까지 1753명이 십시일반 힘을 보탰다.

안 대표는 “생리대 시장이 굳건한 상황에서 투자한 만큼 월경컵 시장이 클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나서는 기업이 없었다”며 “월경컵을 써보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여성들에게 다양한 월경용품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줘야 한다는 생각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지앤모어는 월경용품 판매하고 저소득층 소녀에게 생리대를 지원하는 소셜벤처기업이다. 마케터로 일하며 창업을 꿈꾸던 안 대표는 생리대를 구매할 돈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소녀들의 사례를 접한 지난해 월경용품 소셜벤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창업 초기엔 이른바 ‘깔창생리대’ 이슈로 이지앤모어를 통해 저소득층 소녀들을 돕겠다는 움직임이 많았다. 현재 매달 431명에게 생리대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와 정부가 지원에 나서고 이슈도 사그라들면서 이지앤모어에 대한 관심도 줄었다. 저소득층 여성을 돕기 위한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던 안 대표의 눈에 든 게 바로 월경컵이다. 미국·프랑스 등 선진국에선 이미 70년 전에 개발돼 30여개의 브랜드가 판매되고 있으나 국내에선 제품은커녕 정보 찾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월경컵을 직접 사용해보면서 확신을 갖게 됐다.

 

서울 송파구 장지동 가든파이브 내 이지앤모어 사무실에서 안지혜 대표와 직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 송파구 장지동 가든파이브 내 이지앤모어 사무실에서 안지혜 대표와 직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안 대표는 “탐폰은 처음엔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지만 혈을 빨아들이면 팽창하는 느낌이 든다. 반면 월경컵은 시간이 흘러도 모양이 유지되다보니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고 냄새도 전혀 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월경컵에 관심있는 여성들을 초대해 ‘월경컵 수다회’를 열어 사용후기와 니즈를 분석했다. 여기에 약 30여개의 월경컵 제품을 사용해보며 장단점을 분석하고 실리콘제조 업체들을 만나 안정성을 따졌다. 그렇게 이지앤모어의 첫 월경컵 ‘블랭크 컵’을 직접 디자인까지 마쳤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레나컵’보다 밑둥을 넓혀 접었을 때 삽입이 조금 더 쉽도록 디자인했다.

안 대표는 “각종 제품들을 분석하고 여성들의 요구를 담아 디자인하고 원료도 의료용 실리콘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며 “블랭크 컵 프로젝트에 많은 분들이 성원을 보내주고 컨설팅 지원을 해주겠다는 후원자도 나타나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1월 계획대로 식약처 허가가 이뤄진다면 내년 6월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허가 받은 월경컵인 블랭크컵을 만날 수 있다. 복잡한 임상실험 없이도 월경컵을 제작할 수 있게 되면 국내에서 월경컵이 줄지어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안 대표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디자인의 월경컵이 국내에서 제조돼 여성들이 쉽게 월경컵을 선택하고 사용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란다”며 “이지앤모어도 월경문화를 바꾸는 소셜미디어 커머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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