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5.17 강남역 살인 1주기 앞서 29일 방문

“국가는 여성이 밤늦게 다니든 짧은 치마를 입든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사회 만들어야”

 

정의당이 2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를 앞두고 ‘여성이 당당한 나라, 여성폭력 없는 나라’를 주제로 여성 정책을 약속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의당이 2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를 앞두고 ‘여성이 당당한 나라, 여성폭력 없는 나라’를 주제로 여성 정책을 약속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제19대 대통령선거가 10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주말을 맞아 각 정당이 전국 곳곳에서 치열한 선거 유세를 펼친 가운데 서울 강남역에서 특별한 거리 유세전이 진행됐다.

정의당은 29일 오후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여성이 당당한 나라, 여성폭력 없는 나라’를 주제로 평범한 여성들이 무대에 올라 발언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비록 선거 운동의 일환이기는 하지만 원내 정당 가운데 정의당이 가장 먼저 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인 5월 17일을 앞두고 여성 안전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심상정 대선후보는 참석하지 않았다. 당 관계자는 “기습적인 사드 배치 문제로 일정에 변동이 생겼다”고 말했다.

정의당 선대위 오김현주 성평등선대본부장은 여성 폭력 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대응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권이 여성 대상 범죄를 정치권이 엄벌하겠다, 강경대처하겠다고 하는데, 변화가 없는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정부가 CCTV를 추가한다는 정도의 발상이나, 여성들에게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국가의 책임은 여성이 밤늦게 돌아다니든 짧은 치마를 입든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어떤 폭력이 발생했을 때 국가가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책임을 지는 게 나라다운 나라이고, 내 삶을 바꾸는 일이다”면서 “스토킹, 데이트폭력, 디지털성폭력을 단순히 엄벌하겠다, 강경대응 하겠다는게 아니라, 성폭력, 성교육을 통틀어 인권의 관점에서 차별없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수정씨는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정수정씨는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정의당 서울시당 박지아 여성위원장은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들의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 대학에서 강의 당시 만난 여학생은 강남역 사건이 발생하고서야 자신이 여성임을 깨달았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 학생은 이때까지 자신이 여성이라서 무언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고 뭐든 노력하면 해낼 수 있을거라 믿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 시간에 강남역에 있었다면 내가 죽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삶을 완전히 바꿨다”고 전했다.

평범한 여성들도 무대에 올라 발언을 했다. 특히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사회 권력구조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위협받는 여성의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지방에서 참석한 이들도 있었다.

새벽에 부산에서 출발해 서울에 도착했다는 부산지하철 청소노동자 서숙자(65) 씨는 “12년째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고,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올려달라고 몇 년 간 요구했지만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며 “노동자의 삶을 바꾸기 위해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밝혔다. 또 “다 큰 딸, 아들과 함께 사는데 딸은 저녁에 늦으면 불안해서 꼭 연락을 하게 된다. 여성 폭력 없는 세상이 되려면 법적 처벌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계에 종사하는 20대 여성 정다솔 씨는 “여성 배우, 스텝 등 노동자들이 성차별, 성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며 특히 “촬영 현장에서 발생한 남배우의 여배우 성폭행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계 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계가 마찬가지로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부산지하철 청소노동자 서숙자(65) 씨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부산지하철 청소노동자 서숙자(65) 씨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항공사에서 근무하는 정수정 씨는 “비정규직의 대부분이 여성이고 실태가 심각하다”고 전했다. 그는 “인턴, 비정규직으로 입사해 정규직이 되기 위해 성희롱 등 온갖 부당한 일을 참고 견뎠지만 결국 고용 전환이 안 된 여성들이 많았다”면서 “이제 비정규직은 고용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 인권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또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1년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는 바뀐게 전혀 없다. 남자는 설거지를 해선 안되다거나, 저출산이 고학력 여성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단순한 묻지마 사건의 희생양 정도로 취급될 뿐”이라고 했다.

유세 현장에는 홍보물만 보고 찾아왔다는 일반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경기도 성남에서 왔다는 구은아(35)씨는 “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강남역 1주기 행사 안내 정보를 접하고 응원하려고 친정에 어린 아들을 맡기고 혼자 왔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이다보니 딸 키우는 친구들에 비해 마음 졸일 일이 적은데, 이것마저 일종의 기득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가령 “아들은 급한 상황에서 기저귀를 내리고 소변을 봐도 걱정할 일이 없는데, 친구들의 어린 딸이 기저귀를 내리거나 노출된 옷을 입히면 나쁜 생각을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성별 고정관념을 갖지 않게 가정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의당 류은숙 여성위원장은 “안전한 나라, 생명이 존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의제를 제시하면서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정의당이 2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를 앞두고 ‘여성이 당당한 나라, 여성폭력 없는 나라’를 주제로 여성 정책을 약속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의당이 29일 오후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를 앞두고 ‘여성이 당당한 나라, 여성폭력 없는 나라’를 주제로 여성 정책을 약속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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