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화가 김현정

내숭 이야기, 내숭 올림픽 등 ‘내숭 시리즈’로 유명

미술 문턱 낮추기 위해 SNS 소통·이모티콘 출시 

“화가는 ‘1인 창업자’… 경영 마인드 필수로 가져야”

 

한국화가 김현정 작가는 “학교 다닐 땐 여자 친구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필드로 나오면 유명한 사람들은 거의 다 남자”라며 “언젠가부터 여성 화가로서 사명감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화가 김현정 작가는 “학교 다닐 땐 여자 친구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필드로 나오면 유명한 사람들은 거의 다 남자”라며 “언젠가부터 여성 화가로서 사명감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미술계에도 경력단절 여성이 많아요. 출산 후에 많이들 붓을 놓게 되죠. 근데 붓은 한 번 놓으면 다시 잡기가 어려워요. 그림이란 쉬지 않고 끊임없이 그려야 하는 건데, 아이를 키우면서 그러기엔 쉽지 않죠.”

‘한국화의 아이돌’로 불리는 김현정(29) 작가를 4월 21일 서울 강남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곱게 차려입은 한복과 댕기머리 자태는 작품 속 인물과 꼭 닮아 있었다. 자신을 모델 삼아 작업한다는 그의 말 대로였다. 여성 화가로 활동하며 자신 안의 페미니즘 요소를 발견했다는 그는 최근 페미니즘을 공부 중이다. 지인을 만나면 “너는 페미니스트야?”라는 질문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본인이 운영 중인 아트센터 직원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페미니즘을 주제로 삼는다. “여성 화가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차별을 겪으면 울컥해요. ‘예쁘네’ ‘맘에 든다’ 등 외모로 평가당하는 경우도 많죠. 특히 성희롱은 온라인상에서 많이 일어나요. 제 작품을 봐달라는 거지, 외모 이야기를 해달라는 게 아닌데도 말이에요.”

 

김현정 작가의 최신작인 ‘목욕탕 시리즈’ ⓒ김현정아트센터 제공
김현정 작가의 최신작인 ‘목욕탕 시리즈’ ⓒ김현정아트센터 제공

 

김현정, , 한지 위에 수묵담채, 콜라쥬, 2016
김현정, <내숭:환상의 떡볶이/Feign:Fantastic Stir-fried Rice Cake(Tteok-bokki)>, 한지 위에 수묵담채, 콜라쥬, 2016 ⓒ김현정아트센터 제공

8살 때부터 화실을 다닌 김 작가는 예중(선화예술학교), 예고(선화예술고등학교), 미대(서울대 동양화과)를 거쳐 화가의 길을 걸어왔다. 인생의 반 이상을 그림쟁이로 살아온 셈이다. 그는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에 이름을 올렸다. 순수 미술작가로서 동양화가가 해당 부문에 선정된 것은 이례적이라 김 작가는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 다닐 땐 여자 친구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필드로 나오면 유명한 사람들은 거의 다 남자다. 마치 셰프의 세계와 같다”며 “언젠가부터 여성 화가로서 사명감을 가지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내숭 시리즈’로 이름을 알린 그는 “하이퍼리얼리즘 기법을 활용”한 한국화를 그리고 있다. “저처럼 그리는 작가가 국내에 몇 없어요. ‘내가 이 기법에서 손을 떼면 명맥이 끊길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내숭’을 주제로 한 그림 속 여성은 속살이 훤히 드러나는 한복 치마를 입고 있다. 한복을 차려입고도 격식을 차리지 않는 모습 때문에 수묵담채화는 정갈하면서도 톡톡 튀는 매력을 풍긴다. 한복을 입고 질주하는 경주마를 타는가 하면, 치마를 걷어 올린 채 라면을 먹고, 당구와 볼링을 치기도 한다. 뒷산이나 놀이공원, 포장마차 등에서 일상을 즐기는 작가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김 작가는 2013년부터 내숭을 주제로 ‘내숭 이야기’ ‘내숭 올림픽’ ‘내숭 겨울이야기’ 등 개인전과 단체전을 이어오고 있다. “내숭은 속마음과 다른 것을 뜻하지만, 전 이게 ‘화이트 라이(White Lie·악의 없는 거짓말)’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쁘다고만은 생각하지 않아요. 치마를 비치게 그린 것도 속이 드러나는 거짓을 표현한 거예요.”

 

한국화가 김현정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화가 김현정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하지만 작품은 페미니즘 관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내숭녀’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은 구두를 줄에 묶어 강아지처럼 끌고 가는가 하면, 라면을 먹으면서 가방에 든 스타벅스 커피를 바라보기도 한다. 여성이 소비하는 것을 아니꼽게 바라보는 한국남성들의 시선이 담겼다는 비판이다. 그는 “성격상 숨기고 거짓말하는 걸 잘 못한다. ‘다중이’ 스타일이라 내 안에 여러 명이 살고 있고, 표현하고 싶은 건 다 표현해야 한다”면서도 그러한 지적에 수긍한다고 했다.

김 작가는 한국화가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SNS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13개 채널을 직접 관리한다. 페이스북 팔로워만 11만 명이다. “SNS를 하다보면, 전시를 실시간으로 여는 것 같아요. ‘좋아요’로 인기 작품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죠. 또 누리꾼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기도 해요. 집단지성을 활용한 작업인 거죠.” 작가는 이를 ‘소셜 드로잉’이라고 부른다. 이를 바탕으로 완성한 작품이 ‘새해다짐(feat.내일부터)’이다. 다이어트를 다짐한 여성이 ‘내일부터’를 외치며 냉장고 앞에서 피자, 아이스크림 등 좋아하는 음식을 늘어놓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그렸다.

 

김현정, , 한지 위에 수묵담채, 콜라쥬, 2016
김현정, <내숭:새해다짐(feat.내일부터)>, 한지 위에 수묵담채, 콜라쥬, 2016 ⓒ김현정아트센터 제공

 

김현정, , 한지 위에 수묵담채, 콜라쥬, 2015
김현정, <내숭:달려가마(馬)/Feign:Let’s Run>, 한지 위에 수묵담채, 콜라쥬, 2015 ⓒ김현정아트센터 제공

SNS 소통은 “미술의 문턱을 낮추고 싶다”는 김 작가의 염원이 담긴 활동이기도 하다. 지난해 출시한 이모티콘 출시도 그중 하나다. “대중들이 실생활에서 제 작품이 담긴 이모티콘을 쓰다보면 ‘그 작가 작품 전시하던데 보러 갈까?’ ‘김현정 그림 재밌던데 다른 동양화가 작품도 구경하러 가볼까?’ 이렇게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고 있어요.” 혹자는 “격 떨어지게 그런 걸 하느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김 작가는 고루한 관념에서 벗어나 미술계도 변화에 발맞춰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화가가 ‘1인 창업자’라고 생각해요. 일단 작업실 임대료를 내야하고, 물감 값이라도 벌려면 경영 마인드를 가져야 하죠. 근데 예술계는 돈을 벌려는 순간 ‘나쁜 애’로 몰아가요. 돈을 벌려는 게 왜 나쁜 거죠? 우리도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보통 디자인과는 상업미술, 회화는 순수미술이라고 표현해요. 근데 ‘순수하다’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상업이 싫으면, 아예 작품을 팔지 말아야죠.”

김 작가는 경영학과 복수전공이라는, 미술학도로선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예체능이라고 무시하고, 여자라고 무시”하는 대학 내 풍조에 맞서기 위한 선택이었다. ‘미친 듯이’ 공부하는 경영대생들을 따라가는 게 힘들었지만 배운 것은 많다고 했다. 기업의 고민을 알게 됐고, 기업별 맞춤형 강의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앞으로 내숭 시리즈 외에 다른 주제도 다루고 싶다고 했다. ‘목욕탕 시리즈’ ‘표정 시리즈’ 등을 구상해뒀다. 인물화에 관심이 많아 초상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 시대 영웅들의 얼굴을 기록하고 싶어요. 박술녀 선생님을 포함해 주변인 3명 정도 작업을 마쳤어요.” 그는 해외 진출에 대한 포부도 확고했다. 지난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베를린 주독일한국문화원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게 참 많아요. 유럽과 중국 시장에 진출하고 싶고, 궁극적으로는 화가를 지망하는 여자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롤모델이 되고 싶어요.”

김현정 한국화가

△2001~2004 선화예술학교 △2004~2007 선화예술고등학교 △2008~2013 서울대학교 동양화, 경영학과 학사 △2013~2015 서울대학교 대학원 동양화 석사 △2017 서울대학교 대학원 동양화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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