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저항하기 어려운 성폭력은

그 자체로 폭력이자 공포

피해자에게 책임 묻는 사회

우리 안의 편견을 버려야

얼마 전 한 20대 여성이 택시기사로부터 강간을 당하고 목이 졸려 살해당했다는 사건 보도가 있었다. 승객을 인적이 드문 곳으로 끌고 가서 강간을 할 발상을 하고 실행한 범인이나 그 죄질에 대해 굳이 따로 언급을 할 필요가 있을까.

그저 그 밤 평화로운 귀갓길에 낯선 도로에 접어든 택시 안에서, 도움을 청할 인적을 찾을 길이 없는 외진 창고 건물에서 강간을 당하며, 목이 졸리며 피해자가 느꼈을 공포가 느껴져 가슴이 답답해졌다. 피해자에게는 끌려간 그 자체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폭행이고 협박이었을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계속되고 있을 각종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에서 강간 피해자들이 듣고 있을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폭행 협박이 있었느냐?”는 질문과 확인이 환청처럼 들렸다. 목이 메었다.

강간과 같이 중한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들이 낯선 이로부터 범죄를 당하는 일도 많지만 일상에서 어떤 식으로든 안면이 있는 관계에서 범죄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가해자가 누가 됐든, 강간이 일어나는 장소는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강간이 일어나는 순간은 피해자에게 뭘 해야 할지를 모를 멘붕 상태의 시간이다. 있지 말아야 할 일이지만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사회다. 멘붕에 빠진 피해자들을 향해 그 정도는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냐, 저항을 ‘충분히’ 안한 거면 합의한 것 아니냐며 멘붕이 온 순간 합리적인 대처를 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범죄를 당한 직후에 충격에 빠진 피해자들에게 “네가 당한 일이 강간”이라고 표현했어야 하고 나중에 살펴보는 사람이 의구심을 갖지 않게 말끔한 표현을 했어야 한다며 재단한다.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저항하기 어려운 성폭력의 상황은 그 자체로 폭력이고 공포다. 인적이 끊긴 심야의 주차장에서, 새벽의 지방도로변에서, 화장실에서, 가해자와 단 둘이 있는 집 안에서 위에서 몸으로 내리깔며, 뒤에서 몸을 억압하며 일어난다. 피해자는 물리적으로든 권력관계에서든 약자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거기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상황까지 더해지면 미약하게나마 거부하고 응하지 않는 것 이상 저항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피해자를 덮쳐오는 것은 가해자의 몸의 무게만이 아니라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다. 몸을 밀어내 보거나 싫다고 말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강간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피해자에게 항거불능의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냐고 묻는다. 막아낼 정도였는데 저항을 못한 것은,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고, 그러면 강간이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뒷목 잡고 쓰러질,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인 것은 분명”하지만 “강간은 아니다”라는 불기소 이유서나 판결문을 받아보는 상황은 이러한 이유와 함께 발생한다.

당최 이해하기 어려운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데에는 법조계조차 가해자에게 그 입장을 이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심하게 때리거나 묶어놓고 한 것도 아닌데 피해자가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고 온힘을 다해 저항하지 않으면 가해자가 강간을 하는 것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생각한다. 범죄를 하지 않을 주의의무를 강간범에게 부여하는 대신 범죄를 당하지 않을 주의의무를 강간피해자에게 부여한다.

그래서 야심한 밤 끌려가 강간을 당하게 되더라도 목이 졸릴 때까지 저항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이야기한 사건의 피해자가 저항을 해서 죽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사건들을 볼 때마다 수많은 강간 사건에서 저항하기 어려운 폭행이나 협박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받고 웃으며 법정을 떠나던 가해자들의 얼굴이 함께 떠오른다. 저항할 수 없는 폭력으로 피해자를 강간하고 죽인 사건을 보면서야 온전히 그것은 강간이지, 라고 말하는 우리 사회의 성감수성이 안타깝다.

도둑을 맞은 피해자를 향해 집 담벼락을 낮춰 집을 지었으니 당신 집에 도둑이 들었으나 도둑이 아니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당연히 강간을 당한 피해자를 향해 의사에 반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가해자가 인정할 수 있을 정도로 저항을 안했으니 강간이 아니란 말은 어떤가. 우리 사회가 강간을 당해 멘붕에 이른 피해자의 시선이나 그 충격을 입은 상태에서의 피해자의 언어를 이해하는 수준은 여전히 당황스럽다. 이제 사회의, 법의 시선을 다시 정비해야 할 때다.

 

이은의 변호사
이은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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