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게이 묘사하는 방식 한정적

“게이에 대한 고정관념 고착화하지 말라”

 

자신이 짝사랑하는 안민혁(박형식) 대표에게 안긴 상상을 하는 오돌뼈(김원해). ⓒJTBC 홈페이지
자신이 짝사랑하는 안민혁(박형식) 대표에게 안긴 상상을 하는 오돌뼈(김원해). ⓒJTBC 홈페이지

하늘하늘한 블라우스, 스키니 진, 초커에 네일아트까지.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에 출연한 오돌뼈(김원해)의 패션이다. 여기에 아이라인과 빨간 입술은 ‘여성’스러움을 한층 강조한다. 지정성별 남성인 오돌뼈는 콧소리를 내고, 호들갑을 떨고, 히스테릭한 성격을 지녔다. 안민혁(박형식) 대표를 보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품에 안기는 상상을 하며, 민혁의 연인인 도봉순(박보영)에게 질투를 느껴 틈만 나면 짜증을 부린다.

작가는 이러한 오돌뼈를 ‘진짜 게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말에 따라야 한다면, 우스꽝스럽게 묘사되는 ‘여성’스러운 몸짓과 말투, 과장된 히스테리는 곧 게이의 특성이 된다. 시청자들은 극대화된 ‘여성’성을 남성에 부여한 뒤 ‘이게 진짜 게이야’라고 정의내린 작가에 분노했다. ‘진짜 남자’ ‘진짜 여자’가 허황된 말이듯이, ‘진짜 게이’ 또한 없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남자를 바라보며 쉽게 들뜨거나 눈물짓고, 토라지는 ‘감정적’인 인물. 이는 그간 미디어가 여성을 묘사해온 방식이다. 미디어는 ‘여성’성을 게이에 덧씌우고, ‘여자 같은 남자=게이’라는 등식을 생산한다. 이처럼 구태의연한 공식을 입고 태어난 캐릭터가 바로 오돌뼈다. 그는 극중에서 웃음코드로 소비되고, ‘별난 인물’로 희화화된다. 그가 안민혁을 연애 대상으로 바라보거나 공비서(전석호)와 부둥켜안고 있을 때, 주변인들은 그를 향해 경멸의 눈빛을 드러낸다. 드라마는 그들의 반응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고자 한다.

미디어가 성소수자를 그리는 고루한 방식에 시청자들은 염증을 느끼고 있다. “더 이상 게이를 희화화하지 말고, 그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고착화하지 말라”는 지적이다. 그리고 이는 ‘여성’성을 희화하지 말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극중 게이인 ‘오돌뼈’ 역할을 맡은 배우 김원해. ⓒJTBC 홈페이지
극중 게이인 ‘오돌뼈’ 역할을 맡은 배우 김원해. ⓒJTBC 홈페이지

미디어가 게이를 묘사하는 방식은 한정적이다. 한국드라마나 영화에서 게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는 이상, 그들은 대개 조연에 그친다. 그리고 그 캐릭터는 웃음을 유발하는 데 목적을 둔다. 웃음은 주로 게이의 ‘여성’스러운 행동, 말투, 패션을 기반으로 형성된다. 게이에 대한 특정 묘사가 반복되면, 그것은 게이의 특성이 돼버린다. ‘게이’ 하면 ‘여성스럽다’는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 것은 그 자체로 혐오이자 차별이다. 

2010년 김수현 작가는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남성 성소수자 커플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양태섭(송창의)과 경수(이상우)의 사랑은 고난과 역경을 겪어야 했지만, 우스꽝스럽게 그려지진 않았다. 그때로부터 7년이 지났다. 그간 게이에 대한 우리사회 인식은 얼마나 성장했을까. 영화나 드라마에서 게이가 주인공 혹은 긍정적인 역할을 맡은 적이 손에 꼽는 것을 보면 아직 제자리걸음인 듯하다. 안타까운 건, 여성 성소수자는 미디어에서조차 가시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돌뼈(김원해)와 공비서(전석호). ⓒJTBC 홈페이지
오돌뼈(김원해)와 공비서(전석호). ⓒJTBC 홈페이지

게이 중 ‘여성’스러운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게이라고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다양한 인간이 있듯이, 다양한 성소수자가 존재한다. 영화감독이자 게이로 유명한 김조광수씨는 2010년 10월 21일 한겨레에 연재한 칼럼(김조광수의 ‘마이 게이 라이프’)에서 이렇게 말했다. “게이를 표준화하지 말라.” 

방송인 홍석천은 “동성애자 중에도 멋있는 사람, 재미있는 사람 등 다양한 캐릭터가 있다. (미디어에선) 동성애자의 다양함을 보여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연합뉴스, 4월 5일자) 바야흐로 다양성의 시대다. 개인마다 개성이 넘쳐나고, 개인의 취향이 존중받는 시대다. 시청자들은 더는 ‘여성’스러운 게이만 보고 싶지 않다. 유쾌하고, 재밌고, 멋있고, 조용하고, 우울하기도 하고, 새침하고, 제멋대로인…. 다양한 게이를 보고 싶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