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광화문마라톤모임’, 베테랑 회원 중심 ‘1기 페이싱팀’을 결성

독거노인 돕기 후원, 정부미인가시설 지원 등 다양한 봉사활동

동호인 마라톤대회에 참가해보면 허리춤이나 상의에 풍선을 매단 채 다른 여러 참가자들을 이끌고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페이스메이커들이다. 이들은 풍선에 목표 기록을 써놓고 정확히 그 시간에 맞춰 완주할뿐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페이스를 지키며 달린다. 초보자에서 중상급자로 발돋움하려는 러너들에게 페이스메이커는 든든한 선배이자 가이드이고, 때론 플레잉 코치이기도 하다.

 

광화문페이싱팀이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공원에서 열린 ‘전기사랑마라톤대회’에 페이스메이커로 참가해 출발 전 대회장 주변을 달리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광화문페이싱팀이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공원에서 열린 ‘전기사랑마라톤대회’에 페이스메이커로 참가해 출발 전 대회장 주변을 달리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혹자는 ‘어? 내가 아는 페이스메이커랑 좀 다른데?’ 하고 의문을 가졌을 지도 모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원래 마라톤 페이스메이커란 최상위권 주자의 기록 경신을 돕기 위한 서포터를 일컫는 말이었다. 30~35km 거리까지만 최고수준의 페이스로 선두를 이끄는 것이 임무이며, 대개 마라톤으로 전향 중인 젊은 장거리 선수가 맡는다. 지구력이 부족한 대신 스피드가 우수하기 때문이다.

반면 동호인 대회에서의 페이스메이커는 참가자들의 목표기록 달성을 돕는 인솔자를 뜻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페이스로 달려 완주를 돕는 것이 임무다. 목표완주기록 기준 5~10분 간격으로 별도의 페이싱이 이루어지며, 경험 많은 베테랑 러너들이 투입된다. 단순히 앞에서 끌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인솔하는 러너들의 기능과 컨디션을 파악해서 목표기록을 재설정해주기도 한다. 체계적으로 훈련하기 어려운 동호인들에겐 기록경신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다.

동호인 페이스메이커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마라톤 동호회 ‘광화문마라톤모임’이 베테랑 회원을 중심으로 ‘1기 페이싱팀’을 결성하면서 부터다. 당시 마라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하프나 풀코스에 도전하는 초심자들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지만 페이스 운영이 미숙해 대회를 망치는 동호인들이 부지기수였다. 광화문페이싱팀은 그런 초심자들을 돕기 위해 최초로 만들어진 재능봉사 모임이다.

토대가 없는 상태에서 시작됐지만 이들은 해외 사례를 참고해서 나름 전문성을 갖추려고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시간대별로 팀원을 구분하고 이븐페이스로 목표기록을 맞추는 훈련을 통해 엘리트 선수들도 놀랄 정도로 랩타임을 맞춘다. 자타가 공인하는 ‘달리는 시계’다. 페이스 전략과 코스 공략에 관한 노하우를 공유해서 레이스 중 주자들에게 어드바이스도 해준다. 이런 노력 덕분에 광화문페이싱팀은 창단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신뢰받는 원조 페이스메이커 팀이다.

현재 광화문페이싱팀을 이끌고 있는 한택운(62) 코디는 마라토너들에게 사랑받는 비결로 투철한 봉사정신을 꼽는다.

 

광화문페이싱팀이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공원에서 열린 ‘전기사랑마라톤대회’에 페이스메이커로 참가해 출발 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광화문페이싱팀이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공원에서 열린 ‘전기사랑마라톤대회’에 페이스메이커로 참가해 출발 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우리는 기록이 좋다고 해서 팀원으로 받지 않습니다. 자기 레이스가 아니라 남을 위한 레이스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남다른 봉사정신이 꼭 필요해요. 페이스 훈련과 실전테스트를 거쳐서 페이싱팀원이 되더라도 연간 5회 이상 페이싱 봉사를 하지 않으면 팀원 자격을 박탈할 만큼 엄격한 룰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투철한 봉사정신이 바탕이 된 탓일까. 광화문마라톤모임은 페이스메이커 출전 외에도 다양한 기부사업을 꾸준히 벌여오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달려라 하니 육상꿈나무’ 프로그램이다. 한 회원이 어려운 육상선수를 개인적으로 후원하던 것을 2003년부터 공식사업으로 만들었다. 형편이 어려운 중학생 선수를 육상연맹에서 추천받아 장학금을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또 다른 사업으로 ‘하트마라톤교실’도 있다. 발달장애인 청소년을 위한 달리기 교실인데, 이 역시 2003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발달장애 특성상 달리다가 엉뚱한 길로 가거나 느닷없이 바지에 소변을 보는 등 돌발상황이 수시로 벌어지지만 일단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면 사회성을 기르는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한다. 실제로 하트마라톤교실에서 운동하던 전병혁(26)씨의 경우 동호인들에게 꿈의 기록인 서브3(풀코스 3시간 이내 완주)를 달성했다. 뿐만 아니라 15기 페이싱팀원으로 합류해 비장애인 러너들을 당당히 이끌고 있다.

이 밖에도 광화문마라톤모임은 독거노인 돕기 후원, 정부미인가시설 지원, 마라톤용품 기부를 통한 불우이웃돕기 바자회, 소아암환우돕기마라톤 전 회원 자원봉사 등 연간 다양한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광화문페이싱팀은 오는 5월13일 본지가 주최하는 여성마라톤대회에도 출전해 참가자들의 페이스를 책임진다. 이 대회에선 여느 마라톤에서 보기 어려운 5km 종목 페이스메이커도 운영되어 마라톤 초보자의 기록 단축과 입문자의 첫 완주의 이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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