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속 여성학 ② 한국YWCA연합회

Young Women's Christian Association

1922년 창설된 한국 최초 여성운동 단체

여성인권·소비자·돌봄·환경·생명평화운동 등

52개 지역 290개 센터, 실무활동가 3000명

유성희 사무총장 “지속가능성 위해 선택과 집중”

 

유성희 한국YWCA연합회 사무총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유성희 한국YWCA연합회 사무총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7년 현재, 페미니즘은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2030 ‘넷 페미니스트’들의 역동적인 에너지가 만들어낸 다양한 사회적 파장은 연일 대중과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 여성운동사의 분수령을 맞이한 때에, 다양한 세대와 주체들이 서로 경험을 나누며 여성운동의 더 큰 그림을 그릴 필요도 커졌다. 지금은 다양한 페미니즘 이슈와 문제의식, 철학을 공유하고,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며 함께 나아갈 때다. 여성운동 현장 탐방 프로그램 ‘현장 속 여성학’은 이런 취지에서 시작됐다.

‘현장 속 여성학’ 두 번째 탐방 기관은 올해 창설 95주년을 맞은 한국YWCA연합회(이하 YWCA)이다. YWCA(Young Women's Christian Association)는 영국에서 19세기 중반 근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전통에 따라 결성돼 이후 세계 각 지역으로 확대됐고 한국에는 1922년 창설됐다. YWCA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여성운동의 기틀을 다져왔다.

지난 10일 기자들이 찾은 YWCA회관은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서울 명동성당 맞은편에 위치한 건물 입구 바닥에는 ‘YWCA위장결혼식 현장’이라는 글귀의 작은 ‘인권현장 표지석’이 박혀 있다. 1979년 위장결혼식을 통해 집회를 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 민주인사들의 저항의 기록이다. 건물 현관에 들어서면 한국YWCA연합회의 옛이름인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가 새겨진 오래된 동판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왼편에는 ‘박에스더 기념관’이란 또 다른 동판을 볼 수 있다. 1960년대 회관 건립을 주도하고 YWCA 활동의 초석을 다지는데 크게 기여한 한 박에스더(1902~2001) 선생의 노고를 기리는 의미로 회관 이름을 ‘박에스더 기념관’이라 명명한 것이다.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한국YWCA연합회 건물. ⓒ한국YWCA연합회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한국YWCA연합회 건물. ⓒ한국YWCA연합회

이날 현장 속 여성학은 건물 2층 사무국 회의실에서 유성희 사무총장이 강의하고 신미희 부장, 이기원 간사, 문윤희 인턴이 참석했다. 27년째 YWCA에 몸 담고 있는 유 총장은 2004년부터 13년째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본격적인 강의에 앞서 YWCA의 조리실에서 방금 조리한 집밥같은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손이 많이 가는 봄나물인 원추리나물과 새우튀김은 손맛에 정성이 가득했다. YWCA의 활동가들의 에너지에는 밥심이 한몫하는 듯했다.

유 총장은 YWCA의 역사와 조직 체계와 운영방식, 주요 활동 내용, 과제 등을 소개했다. YWCA는 일제 강점기 1922년 당시 김활란, 김필례, 유각경 선생이 창설한 이후, 여성인권운동,소비자운동, 돌봄운동, 환경운동, 생명평화운동을 펼쳐왔다. YWCA 95년의 역사는 여성운동사와 그 맥을 같이 한다.

그동안 여성운동은 다양한 주체와 의제를 통해 발전해왔다. 여권 신장과 폭력 등에 제한된 문제에 집중한 운동이 한 축을 이룬다면, 다른 쪽에서는 이를 포함해 여성 인력 개발과 소비자운동, 봉사활동 등 광범위한 사회운동에 무게 중심을 두고 활동해왔다. 이들의 공존과 협력은 여성운동의 외연을 넓히고 사회에 더 깊이 뿌리내리는 촉매제가 됐다.  

현재 YWCA의 중점 운동은 탈핵이다. “2014년부터 시작한 탈핵생명운동을 이어오고 있고, 대선을 앞두고 대선정책 요구서를 만들어 제시했다. 2016년~2017년 우리의 정책과제는 ‘생명의 바람, 세상을 살리는 여성’이라는 주제로 탈핵뿐만 아니라, 성평등운동, 평화통일운동, 청년운동, 돌봄정의운동으로 정해졌다.”

유 총장은 YWCA의 특징으로 사업이 한번 결정되면 지속적이고 대대적으로 진행하지만, 결정 과정은 민주적으로 진행되는 만큼 오래 걸리고 품이 많이 든다고 했다. 현재 52개 지역 290개 센터를 운영하며 실무활동가 3000명, 총 회원수 10만명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 총장은 “조직이 방대하다보니 하나의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은 내부 합의가 완전히 이루어지기까지 5번의 회의를 거치기 때문에 2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면서 “Y의 큰 힘은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과 2년마다 바뀌는 지도력 순환 구조”라고 소개했다.

 

지난해 대구YWCA가 남녀임금차별 철폐를 위해 거리 캠페인을 벌인 모습. ⓒ한국YWCA연합회
지난해 대구YWCA가 남녀임금차별 철폐를 위해 거리 캠페인을 벌인 모습. ⓒ한국YWCA연합회

기자가 YWCA의 인적 구성과 ‘YW(젊은 여성)’의 참여 방식에 대해 묻자 유 총장은 “YWCA의 주체는 예나 지금이나 젊은 여성”이라고 말했다. “청년을 앞세우기 때문에 중고등, 대학 청년 회원들이 투표권을 가지고 이사로 활동해 청년이 주체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활동가들의 연령대가 높다는 점에 대해서는 “젊음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Y는 오랫동안 청년 중심이었다. 1970년대 초반까지 30세를 기준으로 5대 5로 비슷했다. 이후 지역 조직의 확장 과정에서 교회 부흥과 관련되면서 보수화됐다. 그래서 잠시 목적문 내용 중 ‘젊은’이라는 표현을 빼기도 했지만 대다수가 반대하면서 다시 포함됐다.”

YWCA가 안고 있는 고민 또한 다른 시민단체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 총장은 풀뿌리 시민운동의 역할은 더욱 커지지만 지속가능성은 낙관적으로 볼 수 없다고 전망했다. “4차산업혁명 등 급변하는 세상에서 국가나 시장권력에 대응하기 위해 시민운동의 역할이 더 커져야 하는 상황이지만 자치의 방법에 대한 고민은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축소와 절약을 통한 자치와 자급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의 방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다양한 요구를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Y는 선택과 집중에 노력하고 있다.”

YWCA라고 해서 이에 특별한 방도가 있는 것은 아닐 터. 이들이 선택한 것은 초기 정신 회복이다. 설립 목적을 성찰하고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 총장은 95주년 메시지인 ‘고백’에 다양한 뜻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자발적 헌신이라는 기초로 돌아가자는 뜻도 있고 과거 역사에서 친일에 대한 것, 위안부 문제에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 독재 정권에서의 민주화운동 당시 노동자와 청년에 눈감았던 것 등에 대한 반성의 의미를 담았다. 또 100주년을 향해 제대로 가겠다는 의미도 담았다.”

 

 

올해 3월 UN CSW(유엔 여성지위위원회)에 한국YWCA연합회 회원들이 참가해 평화비 모금을 안내하며 기념촬영했다. ⓒ한국YWCA연합회
올해 3월 UN CSW(유엔 여성지위위원회)에 한국YWCA연합회 회원들이 참가해 평화비 모금을 안내하며 기념촬영했다. ⓒ한국YWCA연합회

한국YWCA연합회의 역사

한국 YWCA연합회는 일제 강점기 1922년 당시 김활란, 김필례, 유각경 선생 등 지식인이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라는 이름으로 창설했다. 당시 농촌계몽운동으로 출발해 1950년대 이후에는 여성의 법적 지위향상을 위한 혼인신고운동과 축첩반대운동, 1960년대 여성인권보호를 위한 근로여성교육과 프로그램 운영, 1970년대 가족법개정운동과 파출부 직업개발로 시작한 돌봄노동의 전문화, 1980년대 이후 평화통일, 환경운동을 펼쳤다. 2016~2017년 정책과제는 탈핵생명, 성평등, 평화통일, 청년, 돌봄정의로 정하고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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