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명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

임기 동안 연구 성과 국제화에 주력

‘여성 안전과 폭력 대응’ 연구 범위 넓혀 성과

“교수 복귀하면 보건과 젠더 접목 연구할 것”

 

이명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명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하 여정연)이 올해 개원 34주년을 맞이했다. 성평등이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1983년 한국여성개발원으로 출범한 여정연은 이제는 국무총리 산하 여성정책 전문 정부출연 연구기관으로 성평등 정책을 선도하고 있다.

올해 여정연은 국제화로 한발 더 나아가고 있다. 미국, 스웨덴, 튀니지 등 주한 대사관, 유엔 위민 등 국제기구와 워크숍과 컨퍼런스, 학술대회 등을 개최해 다양한 여성정책 현안으로 지속적으로 국제심포지엄을 열었다. 외국 주요 대학들과의 연구협력도 왕성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는 이명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이 취임 이후 국제 네트워크 강화에 주력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 원장은 지속적으로 성인지 정책을 비롯해 가족정책과 양성평등 문화 확산 등 다양한 연구 성과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확산하는데 방점을 찍고 적극 추진해왔다.

이명선 원장은 보건학자로 25년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보건관리학과(현 융합보건학과) 교수를 지냈고 4년간 여정연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다가 2014년 9월 원장에 임명됐다. 그의 연구 범위는 폭넓다. 보건과 여성 분야 뿐만 아니라 안전·재난 등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분야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대통령 소속 규제개혁위원회, 국무총리실 소속 사회보장위원회, 고용노동부, 국민안전처, 여성가족부, 통계청, 행정자치부 등 다양한 정부기관의 위원을 거쳤고, 국가위기관리학회 회장, 대한보건협회 부회장, 세이프키즈코리아 부대표, 전국재해구호협회 연구위원 등 학계와 민간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14일 연구원에서 만난 이 원장은 새 정부의 양성평등 정책의 비전과 방향의 내용을 마무리하는데 분주했다. 그는 바쁜 일정 중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는 에너지의 원천으로 “자기 일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꼽았다. “저 역시 두 아이를 가진 워킹맘으로 경력단절의 위기를 느꼈지만 이겨낼 수 있었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에게서 여정연의 성과와 과제, 임기 마지막 해를 보내는 소회도 함께 들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34년 역사의 의미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호주제 폐지, 국회 비례대표제 여성할당제 등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연구를 통해 정책을 선도하고 후속 연구로 제도를 안착시키는 등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제가 대학을 졸업한 1980년도에는 취업을 할 때 ‘결혼하면 퇴사한다’는 계약서를 썼다. 임신·출산이 용납되지 않았고 가사 일을 여성이 혼자 다 하던 시대였음을 떠올려보면, 사회문화적으로나 법률적으로도 개선되는데 여정연이 기여한 부분이 상당하다.”

 

2016년 11월 ‘아시아가족의 변화와 지속성: 이론, 정책, 실천적 방안모색’을 주제로 열린 제5회 아시아 가족기관협회 국제심포지엄에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공동주최 기관으로 참여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6년 11월 ‘아시아가족의 변화와 지속성: 이론, 정책, 실천적 방안모색’을 주제로 열린 제5회 아시아 가족기관협회 국제심포지엄에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공동주최 기관으로 참여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남성 성평등 의식에 관한 연구도 하고 있는데 성평등 의식 향상을 위한 방안은.

“여성혐오 현상 속에는 성별 관계와 성평등에 대해 왜곡된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성평등이 이미 달성됐다는 때 이른 판단과 특히 남성들의 피해의식과도 깊이 관련돼 있다고 본다. 다양한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여성들이 남성들의 기득권을 빼앗는 존재가 아니라 동등한 인격체라는 것을 이해시키고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특히 양성평등을 달성하는 것이 오히려 남성에게도 이익이 되고, 모든 사회구성원의 행복과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양성평등을 지지하는 남성들의 활동이 늘고 있어 이들을 양성평등 의식 확산을 위한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적 노력도 필요하다.”

-일·가정 양립 확산과 여성 고용률 증대가 중요하지만 최근 세 자녀 워킹맘 공무원의 과로사로 일·가정 양립 정책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기본적으로 출산·양육에 대한 가족친화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자녀가 함께 하는 가족생활 시간 확보를 위해 장시간근로 개선과 부부의 평등한 가사분담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사회적 인식 개선이 전제돼야만 한다. 또 지역사회 기반의 ‘한국형 가족센터’를 제안하고 싶다. 온 가족이 퇴근 후나 휴일에 집과 가까운 지역사회에서 함께 즐기면서 육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하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국형 가족센터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자녀양육을 지원하고 가족친화적인 사회를 조성해나갈 수 있는 인식 제고 노력이 필수적이다.”

-곧 들어설 새 정부가 다양한 개선 방안을 담은 성평등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비전은.

“우선 여성 관련 다양한 현안을 분석하고 지금까지의 정책 성과를 점검하고, 향후 정책 과제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특히 2015년 양성평등기본법 시행으로 본격적인 양성평등정책의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확대된 만큼, 향후 양성평등 정책의 방향은 개별적인 정책을 발굴해 시행하는 것과 함께 모든 정책의 영역에 양성평등 관점이 반영돼 추진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성별영향분석 평가제도와 성인지 예산제도가 하는 기능이다. 향후 두 제도의 효과적인 연계와 실효성 강화가 요구된다.”

 

이명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명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정연의 연구 실적과 성과에 비해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 위원회에도 여정연이 포함되지 않았다.

“우리도 이 부분을 고민하고 대외 활동과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저출산 대책의 경우 그동안 우리나라가 출산 장려 정책을 보건복지부 중심의 보건통계학적 관점에서 접근했고 양성평등의 관점이 없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제 바뀌고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제안해 저출산 관련 협동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책임연구기관인 보건사회연구원과 공동 연구도 진행한다. 기획재정부도 저출산 대책 회의를 하면 우리에게 꼭 참석을 요청한다.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발표와 강연을 다녔다. 이렇게 하다보니 외국에서도 초청 강연 요청을 받을 정도로 관심이 높아졌다.”

-오는 9월 퇴임을 앞두고 있다. 재임 기간에 가장 의미있는 성과를 꼽는다면?

“2014년 취임 후 2년 6개월이 한 순간 지나간 것 같다. 취임 후 전통적으로 여성정책의 주요 이슈였던 여성폭력 연구를 ‘여성 안전과 폭력에 대한 대응’으로 확대해 연구 영역의 폭을 넓혔다. 이를 위해 여성 권익·안전연구실을 신설하고, 여성권익연구센터와 안전·건강연구센터를 두었다. 예산과 우수 연구 인력을 확보해 연구 역량을 강화했다. 부서 신설 이후 여성가족부 뿐만 아니라 국민안전처,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 다양한 부처의 수탁과제를 수행할 수 있게 됐고, 정부수탁연구 수주 건수가 1.8배 증가했다. 여러 실태조사와 실적분석 등의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여성안전, 폭력예방 정책의 기초자료 구축에도 탄력을 받고 있다.”

-보건관리학 교수로서 여정연 원장직은 어떤 의미인가.

“여성정책의 산실인 여정연의 원장으로 일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 매우 명예롭고 의미있는 일이다. 연구 결과가 실제 정책화되고, 국가발전과 우리 사회의 실질적인 양성평등에 밑거름이 된다는 게 매우 보람있고, 뿌듯했다. 안전 분야 전문가로서도 여성이 살기 좋은 행복한 사회 환경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안전 연구를 강화할 수 있어 더 의미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보건학 교수로서 보건과 젠더 관점을 접목해서 연구하고 싶다. 저출산 문제도 여성학자들과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제자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잘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겠다. 여정연의 14대 원장으로서의 긍지와 명예가 빛날 수 있도록 어느 곳에서든 맡은 바 소임에 최선을 다하겠다.”

 

이명선 원장 약력

△1957년 △이화여대 보건교육학 졸업 △연세대 대학원 보건학 석·박사 △2014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14대 원장 △1991년~ 현재 이화여대 융합보건학과 교수

△2012년 대통령 소속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 △2013년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2015년 국무총리 소속 사회보장위원회 민간위원 △2015고용노동부 고용정책심의회 위원 △2015국민안전처 정책자문위원 등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소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1983년 한국여성개발원으로 출범한 국무총리실 산하 여성정책 전문 정부출연 기관이다. 한해 예산 220억원 규모로 운영되며 전체 임직원 수는 124명이고 박사급 인력 62명이 근무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으로부터는 중앙성별영향분석평가센터로 지정받아 성별영향평가, 성인지예산, 성인지통계연구 등을 위탁수행하는 등 연구를 협력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34년간 기여한 법률 재·개정과 제도화

- 남녀고용평등법, 여성발전기본법, 경력단절여성등의경제활동촉진법, 양성평등기본법 등과 같이 여성의 경제활동·인권보호·성평등 실현 등과 관련된 법률의 제·개정

-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 여성할당제, 국공립대학 여성교수임용목표제 등 여성의 사회 참여 확대를 위한 제도화

- 국가사업의 성별영향분석평분석평가가법 제정 지원, 국가재정법 개정 이후 국가사업예산에 성인지 예․결산제도 도입 및 운영 내실화 지원

- 여성정책기본계획,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 건강가정기본계획 수립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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