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도 안 찍었는데” “예민하네”...아직도 낮은 ‘몰카 범죄’ 인식

인격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몰카 범죄

“뒤통수만 찍어도 문제냐” “봐줘라” 등 경각심 낮아

이대론 ‘한국은 몰카 공화국’ 비난 피할 길 없어

‘몰카 판매 금지법’ 제정 촉구 목소리 높아

 

2017년 3월 31일, 그룹 ‘여자친구’의 팬사인회에 참석한 한 남성 팬이 뿔테안경 모양의 몰래카메라를 사용하다가 여성 멤버 ‘예린’에게 적발됐다. ⓒ유튜브 영상 캡처
2017년 3월 31일, 그룹 ‘여자친구’의 팬사인회에 참석한 한 남성 팬이 뿔테안경 모양의 몰래카메라를 사용하다가 여성 멤버 ‘예린’에게 적발됐다. ⓒ유튜브 영상 캡처

 

지난달 31일, 그룹 ‘여자친구’의 팬사인회에 참석한 한 남성 팬이 뿔테안경 모양의 몰래카메라를 사용해 여성 멤버를 촬영하다 적발됐다. 이 남성에 대한 제재나 별다른 조처는 없었고, 오히려 그를 옹호하는 여론이 형성됐다. “뭐가 문제지? 노출 사진을 찍길 했나 사적인 공간에서 찍길 했나” “속옷을 찍은 것도 아닌데 왜 난리지” “가까이서 찍고 싶은 마음 이해한다” 같은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 등장했다. 몰카를 발견한 여성 멤버를 두고 “연예인이 돈 벌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되게 예민하네” “영악하다”며 도리어 나무라는 이들도 있다. 

이달 초엔 한 남성이 PC방에서 게임을 하는 여성의 뒷모습을 몰래 찍어 ‘여자도 게임을 하다니 신기하다’는 투로 적은 글과 함께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다. 사진 속 피해 여성의 외모를 품평하는 댓글이 여럿 달렸다. ‘몰카는 범죄’라며 비판하는 댓글도 많았지만, “얼굴이 나왔니 (외모) 비판을 했니” “뒤통수 찍으면 안 잡히는디?” 라며 반박하는 이들도 있었다. 

한국에서 몰카가 법적 처벌 대상이 된 지 20여 년이 흘렀지만, ‘몰카는 범죄’라는 인식은 아직도 부족하다. 최근까지도 불법 몰카 영상 공유 허브 ‘소라넷’ 폐쇄, ‘워터파크 몰카 사건’을 비롯해 크고 작은 몰카 범죄가 이어지는 현실이다. ‘한국은 몰카 공화국’이라는 국제 사회의 비아냥을 피할 길이 없다. 분노한 여성들은 몰카 범죄에 대한 더 강력한 법적 제재를 촉구하고 있다. 아예 몰래카메라 판매 금지를 법제화하려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한국에서 몰카가 법적 처벌 대상이 된 지 20여 년이 흘렀지만, ‘몰카는 범죄’라는 인식은 아직도 부족하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에서 몰카가 법적 처벌 대상이 된 지 20여 년이 흘렀지만, ‘몰카는 범죄’라는 인식은 아직도 부족하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몰카를 악용한 불법 촬영·사생활 침해는 지겹도록 반복돼 온 문제다. 성관계 몰카 유포, 백화점 화장실·대학 내 몰카 설치 문제 등은 1990년대부터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1998년 12월에야 이를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할 근거 법규가 만들어졌다. 오늘날 상대방의 신체를 동의 없이 촬영하는 행위는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제14조에 규정되어 있는 성범죄로,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벌금형 이상 처벌을 받는 경우, 성범죄자로 등록돼 신상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몰카를 은밀한 쾌락, 돈벌이 대상으로 여기는 문화까지 뿌리 뽑진 못했다. 몰카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를 자극적으로 소비하거나,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치부하는 일부 대중과 미디어의 태도도 이에 일조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마치 놀이처럼 몰카 피해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고, 신상을 찾아내어 유포하기도 한다. 

모바일 기기의 범용화와 함께 동영상 촬영·업로드·공유가 쉬워진 것도 몰카 증가에 일조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몰카 범죄 발생 건수는 2010년 연간 1000여 건이었는데, LTE와 고성능 스마트폰 보급이 대중화된 2014년엔 연간 6600여 건으로 6배 이상 늘었다. 현행법상 몰래카메라의 판매는 불법이 아니다. ‘범죄 감시·예방’ 등 공익적 목적으로도 활용된다는 이유에서다. 누구나 성인인증이나 본인 명의 인증 절차 없이 손쉽게 몰카를 구할 수 있다. 몰카 종류도 뿔테안경, 무테안경, 옷 단추, TV 리모컨, 보온병, 볼펜, 옷걸이, 무선 공유기, 벽 스위치, 자동차 키 등 다양하고, ‘풀HD’나 HD급 화질, 16GB 대용량을 갖춘 제품이 많다.

 

1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서울본부세관에서 열린 몰래카메라 부정수입 기획단속 결과 기자회견에서 관세청 관계자가 압수된 몰래카메라를 공개하고 있다. 관세청은 최근 발생한 워터파크 몰카사건으로 국민 불안이 높아짐에 따라 지난 7일 부터 집중 기획 단속을 실시했다. 2015.09.15.
1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서울본부세관에서 열린 '몰래카메라 부정수입 기획단속 결과' 기자회견에서 관세청 관계자가 압수된 몰래카메라를 공개하고 있다. 관세청은 최근 발생한 '워터파크 몰카사건'으로 국민 불안이 높아짐에 따라 지난 7일 부터 집중 기획 단속을 실시했다. 2015.09.15. ⓒ뉴시스·여성신문

외신들도 이 낯부끄러운 현실에 주목했다. 지난해 10월 영국 일간지 ‘더 선’은 한국의 몰카 문화를 보도하며 이렇게 평했다. “한국은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나라이며 여성 인권 지표는 초라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자랑하는 발달한 기술 문화는 기술에 빠삭한(tech-savvy) 일군의 변태들을 낳았다.” 

몰카 범죄가 끊이지 않자 서울시는 지자체 중 최초로 지난해 8월부터 ‘여성안심보안관’ 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2인 1조의 보안관들이 지난해 8월부터 지난 2월까지 서울 시내 건물 1만1000여 곳의 화장실·탈의실·샤워장·수영장 내 몰카 설치 여부를 점검했다. 적발된 곳은 없다. 단 개인이 운영하는 술집 등 자영업소는 경찰과 동행하지 않는 한 강제로 단속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서울시는 이 사업을 오는 11월까지 진행하되, 몰카 단속보다 인식 개선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이용철 서울시 여성정책담당관은 “몰카 탐지로 과연 얼마나 잡아낼 수 있을지는 사실 불확실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너무 무기력하다”고 밝혔다. 

 

몰카는 ‘인격 살인’에 이를 수 있는 범죄지만, 피해 복구와 보상은 쉽지 않다. 온라인상 유포된 동영상 삭제를 전문으로 하는 ‘산타크루즈컴퍼니’는 지난해 기준 매달 300여 건의 동영상 삭제 문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경찰의 수사 태도가 미온적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게임을 하다가 뒷모습 몰카 촬영·유포·외모 품평을 당한 여성은 “경찰에게서 뒷모습만으로는 본인 확인이 되지 않아 범죄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도촬범이 CCTV에 찍혔는데도 고소조차 못 하는 처지”라며 한탄했다. 

당장 몰카 범죄의 타겟이 될까봐 두려워하는 여성들은 더 강력한 법적 제재를 요구하고 있다. 소라넷 폐쇄에 앞장서는 등 디지털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해온 ‘디지털성폭력아웃(DSO) 프로젝트’는 최근 입법 청원 플랫폼 ‘국회톡톡’ 사이트에 ‘몰카 판매 금지법안’ 제안서를 올렸다. 초소형 카메라 구매에 대한 전문가 제도를 만들고,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초소형 카메라를 소지하는 일을 불법화하라고 촉구했다. 11일 현재 1만3273명이 참여했고,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일 몰카판매금지법 입법화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DSO 측은 오는 22일까지 다른 의원들도 응답하길 기대하고 있다.

 

‘디지털성폭력아웃(DSO) 프로젝트’는 최근 입법 청원 플랫폼 ‘국회톡톡’ 사이트에 ‘몰카 판매 금지법안’ 제안서를 올렸다. 4월 11일 현재 1만3273명이 참여했다. ⓒ국회톡톡 사이트 캡처
‘디지털성폭력아웃(DSO) 프로젝트’는 최근 입법 청원 플랫폼 ‘국회톡톡’ 사이트에 ‘몰카 판매 금지법안’ 제안서를 올렸다. 4월 11일 현재 1만3273명이 참여했다. ⓒ국회톡톡 사이트 캡처

‘몰카’라는 단어를 좀 더 무겁고 경각심을 일으킬 수 있는 용어로 바꿔 사용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직장인 김민진(31) 씨는 “예전부터 ‘몰카’는 깜짝 이벤트, 장난 같은 유희적인 의미로도 자주 사용됐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려면 이 말부터 좀 더 진지하고 부정적인 용어로 대체하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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