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성폭력대항단체인 ‘DSO(Digital Sexual Crime Out·디지털 성폭력 아웃)'를 이끄는 하예나 대표(활동가)가 2월부터 여성신문 연재를 시작합니다.
하 대표는 2015년 소라넷 고발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활동가 연대를 구축하고 모니터링하면서 공론화를 주도했습니다. 2016년 경찰의 소라넷 폐쇄는 그가 계속해서 싸우고 더 강력하게 외쳐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다가왔습니다. DSO 단체 설립에 나선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하 대표는 연재를 통해 디지털 세상에서 무감각하게 벌어지는 성폭력 실태를 낱낱이 고발할 예정입니다. 코너명 ‘하예나의 로.그.아.웃’에는 디지털공간의 성폭력을 종료·근절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골뱅이, 고등어, 영계... 디지털 성범죄 사이트에 별의별 식재료가 등장한다. 식당 메뉴판에 있어야할 이 단어들은 영상에 등장하는 여성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서 쓰이고 있다. 술안주로 쓰이는 골뱅이는 술 취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뱅뱅’ 돈 여자를 뜻하고. 고등어는 고등학생, 영계는 어린 여성을 뜻한다.
이런 이름을 붙인 디지털 성범죄의 가해자들은 창조적인 ‘작가’가 된다. 그들은 여성을 ‘골뱅이’로 만들 수 있는 ‘레시피’와 골뱅이가 잘 만들어지는 장소를 은밀하게 공유하고 영상, 사진을 공유하며 인심도 얻는다. 그런 그를 누군가는 영웅으로 칭송한다. OO본좌라는 별명도 있으며 여기서 파생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지못미)’라는 유행어도 있다.
단어는 인간의 지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골뱅이를 먹었다’와 ‘취중 여성을 강간하는 범죄를 저질렀다’가 주는 어감의 차이는 극명하다. 디지털 성범죄를 접하며 ‘골뱅이’물에 익숙한 사람들은 길에 쓰러져 있는 여성을 보고는 자연스럽게 ‘골뱅이’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그에게 그것은 범죄가 아니다. 단순히 ‘골뱅이를 먹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해당 영상 위의 배너에는 ‘골뱅이’를 만들 수 있는 ‘최음제’, ‘흥분제’ 즉 강간 약물이 팔리고 있었다. 중국집에 앉아 ‘골뱅이’를 언급하며 낄낄거리는 남성들을 보며 나는 이 세상의 대한 괴리감과 혐오감을 느껴야 했다.
나는 그들이 일상에서 여성을 대할 때 과연 ‘인간’으로서 바라볼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그들이 사용한 단어 속에서 ‘여성’은 분명 인격체가 아니다. 여성들, 그리고 나는 그저 그들이 조리해야할 무언가일 뿐이다. 피해자에겐 갖가지 꼬리표가 매겨지고, 가해자들은 취향 껏 바구니에 골라담는다. 디지털 성범죄 사이트를 보며 이따금 갖가지 상품이 진열된 시장을 생각한다.
얼마 전 남성인 나의 친구들과 만났다. 자연스럽게 야동 이야기가 나왔고 그들은 한국 야동이 ‘취향’이라고 말했다. 외국 영상보다 자연스럽고, 한국인이라 익숙하고, 일본 애들은 오버하는 것 같고. 내가 디지털 성범죄를 알기전이라면 ‘그러려니’하고 지나갔을 만한 대화다. 한 대학생 사이트에서 진행한 통계에 따르면 475명의 설문조사에서 41%의 대학생이 ‘국산’ 취향이라고 말했으니 2명중 한명은 ‘국산’이 취향이라고 하겠지.
중학생 시절 남자애들과 친했던 나는 그들이 파일 다운로드 사이트인 웹하드(k디스크 온디스크등) 아이디를 공유해 그 영상들을 돌려본다는 것도 안다. 각 반마다 공유하는 웹하드 아이디도 달랐고 서로 자랑하던 것도 알고 있다.
나는 확신한다. 이들도 분명 내가 본 것을 보고 살았을 것이다. 차라리 몰랐다면 좋았을까. 그것은 괴리감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범죄라는 것을 알기 전에는 웃고 넘길 수 있는 무언가였을테지만. 진실을 보고 난 뒤의 세상은 너무나도 이상했다. 남자인 그 친구들에게 나란 존재는 무엇일까.
단순히 ‘음란물’이라는 단어만이 피해자를 삭제하는 것이 아니다. 영상들의 제목, 취향별로 선택할 수 있도록 달린 꼬리표들, 그들의 은어 하나 하나가 가해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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