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성 후보는 1987년 13대 대선 홍숙자 후보

김옥선 전 의원, 1992년 14대 대선 출마해 완주

이후 ‘깜깜’...18대 대선 5명 출마해 3명 완주

 

18대 대선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무소속 김소연 후보, 무소속 김순자 후보가 출마해 기권없이 완주했다.
18대 대선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무소속 김소연 후보, 무소속 김순자 후보가 출마해 기권없이 완주했다.

5월 9일 ‘장미대선’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제19대 대통령선거 후보 등록일은 16일까지로, 현재까지 원내 5개 정당에서 5명이 출마를 선언하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중 여성 후보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 한명에 머물고 있다.

첫 여성 대통령의 실패로 여성 리더십이 타격을 받은 만큼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더 다양한 여성들이 대중 앞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동안 대중에 드러난 여성 리더가 극소수에 불과해 ‘여성 리더는 박근혜’라는 이미지가 굳어지는데 한몫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대 대선에서 첫 출마한 여성 후보와 완주한 후보들은 누구인지 살펴봤다.

지난 1대 대통령선거부터 18대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기준으로 총58명의 후보가 출마해 선거일까지 완주했다. 이중 여성은 4명으로 6.9%를 차지했다. 제14대 대선 김옥선 후보, 제18대 대선 김소연 김순자 박근혜 후보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에 사회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홍숙자 씨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에 사회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홍숙자 씨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는 직업 외교관 출신의 홍숙자 씨였다. 1987년 9차 헌법개정과 함께 16년 만에 부활한 제13대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 사회민주당 후보로 지명받아 출마했으나 중도 사퇴했다. 대한민국 최초 여성 외교관을 지낸 그는 당의 후보로 선출되자 연설을 통해 “정치 기적은 여성 대통령이 창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과 세계여성단체협의회장으로 재임하며 여성운동을 이끌었다.

대선 후보로 출마해 사퇴하지 않고 완주한 첫 인물은 1992년 14대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옥선 후보다. 김옥선 후보는 신민당 소속으로 제7대, 제9대, 제12대 등 3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양복과 짧은 머리 때문에 ‘남장여자’로도 유명하다. 1975년 유신체제 당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딕테이터(dictator·독재자)박”, 유신정권에 대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권”이라고 비판해 제명 대상이 됐으나 김 의원이 먼저 자진사퇴서를 제명안은 폐기됐다. 이후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 박찬종, 백기완 후보 등이 출마한 14대 대선에서 김 후보는 ‘무공약이 공약’이라는 공약을 내세우며 등장해 화제가 됐다. 지키지 않을 바에는 안 하는 게 낫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0.36%를 획득해 6위로 낙선했다. 그가 남장여자를 하게 된 이유는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가 죽은 오빠를 그리워하는 어머니 때문이었고, 젊은 나이에 사회 생활을 하다보니 작업복이나 군복이 편했고 자연스레 남장을 하게 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1992년 14대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옥선 후보
1992년 14대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옥선 후보

이후에는 18대 대선에 대거 등장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비롯, 무소속으로 김소연 전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과 비정규직 청소노동자인 김순자 울산과학대 지부장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기권없이 완주했다. 또 심상정 진보정의당 후보,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도 유세활동을 벌였으나 중도 사퇴했다.

김소연 후보는 2005년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를 결성, 해고자 복직과 불법파견자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1895일간 투쟁해 2010년 말 정규직화 합의를 이끌어낸 주인공이다. 김순자 후보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해 열악한 환경에서 대우받지 못하며 일하는 노동자들을 대변하기 위해 출마했다. 용역업체 청소노동자인 그가 낸 대선 기탁금 3억원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후원해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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