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동원해 한국산 짓밟고

노골적 배타적 애국주의 마케팅

사드 배치 보복 통해 드러난 민낯

 

주한미군 사드 한국 배치와 관련, 중국 당국의 한국 단체 관광 금지 조치로 중국인 관광객이 급격하게 줄었다. 사진 왼쪽은 지난해 10월 중국 국경절 연휴기간에 열린 ‘코리아 세일 페스타’ 기간에 서울 명동 거리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 오른쪽은 지난달 중순 명동 거리의 모습이다. ⓒ뉴시스·여성신문
주한미군 사드 한국 배치와 관련, 중국 당국의 한국 단체 관광 금지 조치로 중국인 관광객이 급격하게 줄었다. 사진 왼쪽은 지난해 10월 중국 국경절 연휴기간에 열린 ‘코리아 세일 페스타’ 기간에 서울 명동 거리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 오른쪽은 지난달 중순 명동 거리의 모습이다. ⓒ뉴시스·여성신문

계속되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비해 한국이 자위적 방어 대책으로 결정한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빌미로, 중국이 한국에 대해 벌이는 경제 보복이 가히 점입가경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소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이렇게까지 치졸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시작은 경북 성주골프장을 부지로 제공한 롯데였다. 소방법 위반 등을 문제 삼아 중국 내 대부분의 롯데마트가 영업정지를 당했다. 중국인들의 한국 단체관광을 금지시켰고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참가를 위한 한국 선수단의 전세기편 신청도 불허했다. 최근에는 사탕제품 상자에 ‘비타C’라는 명칭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사탕을 의약품으로 재분류하라거나 부산의 영문 명칭 표기를 문제 삼아 통관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중국 업체들은 이 혼란을 틈타 초등학교 아이들까지 동원해 한국산 제품을 짓밟게 시키고 “한국산 대신 중국 제품을 사라”는 배타적 애국주의 마케팅을 노골적으로 펼치고 있다. 여기에 한국산 화장품 수입을 불허하는 금수령, 복수 비자를 취소하는 금첨령, 한류 콘텐츠를 제한하는 한한령, 한국산 식품의 통관을 불허하는 폐관령, 한국 모바일 게임의 수입을 금지하는 금희령 등 모든 명목의 보복 방식이 총동원되고 있다. 그런데 시진핑 주석은 지난 1월 다보스포럼에서 “보호주의는 자신을 어두운 방에 가둠으로써 비바람을 피한 것 같지만 실은 햇볕과 공기를 차단한다. 글로벌 자유무역과 투자를 권장하며 보호주의를 반대한다”고 연설했다.

그뿐인가. 시 주석은 2014년 서울대 연설에서 “백금으로 집을 사고 천금으로 이웃을 산다. 좋은 이웃은 황금을 줘도 안 바꾼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2013년 10월에는 ‘주변국 외교의 기본방침’이란 강연에서 “인접국과 친선을 도모하고 인접국을 동반자로 삼는 목린(睦隣)정책을 실행하며 그들에게 친근하고 성실하고 은혜를 베풀고 포용정신을 발양해야 한다”고 말한바 있다.

지금 중국이 벌이고 있는 작태는 중국이 표방해 온 반(反)보호주의 자유무역 방향과 주변국 외교의 기본방침과도 전혀 맞지 않는 것은 물론 그동안 한국에 천명해온 이른바 천년우의(千年友誼)의 다짐과도 거리가 멀다. 이럴 거면 한중 FTA는 왜 체결했는지 묻고 싶다. 중국의 이러한 언행 불일치와 조변석개식 태도는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사실 중국이 다른 나라와 정치·외교적 마찰을 빚었을 때 경제, 교역 제재에 나선 것은 한국이 처음이 아니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중국인들의 일본 단체관광을 금지시켰고, 노르웨이가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에게 노벨평화상을 주었다고 연어 수입을 제한하고 노르웨이 총리의 입국비자를 발급해 주지 않았다. 또 남해 영유권 분쟁이 발생했을 때 베트남에서 반중국 데모를 했다고 베트남의 리치넛 수입을 갑자기 금지했다. 하지만 상대국의 시장 다변화 전략으로 중국의 횡포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최근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전방위 보복에 대해 ‘조공국가 접근법’을 채택하고 있다고 날선 비판을 했다. 중국의 문명이 찬란했고 중국의 경제력이 세계의 3분의1을 넘었던 중화제국 시절, 중국은 주변의 작은 나라들과 조공 책봉 관계를 수립해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와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중국의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에 압도당한 나머지 중국 주변의 소국들은 스스로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나라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조공 체제는 19세기 들어 서구 열강이 아시아로 몰려오면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청나라는 이들에게도 조공 관계를 따를 것을 요구했지만, 영국과 프랑스 등은 전쟁에서의 승리와 난징조약 등의 체결을 통해 거꾸로 중국을 서구 열강의 ‘평등한 조약 시스템’에 편입해 버렸다. 유교주의에 기반한 중국적 위계질서는 서구의 수평적 질서로, 중국의 문화적 우위를 기본으로 한 중화사상은 서구식 인권‧민주‧자유‧평등 등의 가치로 대체된지 오래다.

마오쩌뚱이 문화혁명을 통해 중화사상과 유교를 배제하고 전체주의에 기반한 중국의 정체성을 창조하려 했다면 시진핑 주석은 유교를 복원하고 원조와 교역으로 주변국을 길들여 자국의 영향권 내에 편입시키는 21세기 중화제국 재건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2007년 출간한 저서 『중국이라는 거짓말』에서 “중국의 발전은 공산당원을 포함한 2억 특권층이 10억 인민을 쥐어짜서 부를 축적한 결과”라고 설파했다. 우리는 그동안 중국의 놀라운 경제성장 뒤에 가려진 중국 사회의 숱한 모순과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를 잊고 살았다. 한국에 대한 사드 배치 보복을 통해 모처럼 드러난 중국의 민낯은, 이제는 중국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음을 역설적으로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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