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고령화와 평균 수명 늘면서

삼중, 사중의 돌봄 굴레에 묶이고

여성의 ‘돌봄 빈곤’ 위험도 높아져

 

돌봄자에게 좋은 돌봄을 제공하고

돌봄 독박 없는 ‘돌봄 민주화’ 지향

돌봄친화 사회만이 근본적 해법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거주하는 한 워킹맘이 출근 전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거주하는 한 워킹맘이 출근 전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사회인구학적 환경변화 속에서 돌봄 현실이 달라졌는데도 사회정책이 민감하게 반영하지 못하면서 돌봄이 여전히 가족과 여성의 삶을 제약하고 있다. 이같은 정책 부정합(mismatch) 이유를 살펴보면 우선 전통적으로 돌봄을 맡았던 여성들이 살아가는 패턴이 달라지고 있는데 이를 제대로 잡아내 정책에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돌봄을 위한 사회서비스가 2000년대 중반 이후 늘고 있으나 여성에게 일어난 생애주기 변화를 담아내지 못해 여전히 여성의 돌봄 부담을 줄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아동양육은 주로 20∼30대 청장년층 여성이 당면하는 문제로, 노인 돌봄은 50∼60대 이후의 중·노년층 여성의 문제로 별개의 사안으로 구분돼 왔다. 그런데 여성의 삶의 방식이 달라지면서 이 두 돌봄이 중첩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여성의 학력 수준이 높아지고 노동시장 참여율도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출산 시기도 고령화됐다. 대략 35세 전에 출산을 마쳤던 1990년대에 비해 2010년대 이후 뚜렷해진 경향은 30∼34세 출산이 가장 보편적인 패턴이 됐으며, 35∼39세의 조출산율도 32.6까지 높아졌다. 출산 고령화로 아동 돌봄이 40대 이후 중년기에도 지속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고령으로 질환이나 장애를 갖기 시작하는 부모·시부모 돌봄도 함께 수행해야 하는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일군의 학자들은 이것을 ‘이중 돌봄(double care)’으로 칭하고 있다. 적지 않은 여성이 아동양육 문제만 해결되면 경제활동 복귀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사회 기대와는 다르게 여러 층위의 돌봄 책임 속에 놓여 있다. 보육서비스가 확대돼도 여성의 경제 활동이 늘지 않는 이유는 노동시장의 폐쇄성, 기업의 외면에만 있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중 돌봄의 시기가 끝나도 노부모에 대한 돌봄은 지속된다. 근래 평균수명이 기록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80∼90대를 넘기면서 살아가는 부모세대의 등장은 기약 없는 돌봄과 이로 인한 여성의 ‘돌봄 빈곤’ 위험이 가중되고 있다. 여성은 사회서비스가 늘고 있어도 새로운 유형의 돌봄으로, 쉼없이 돌봄에 묶이면서 경제 활동을 해야 하는 삼중, 사중의 굴레에 들어가거나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채 경력 개발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어 노후가 빈곤해지는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

또 1980년부터 지속돼 온 소자녀화로 개인별로 부담해야 할 부모 노후에 대한 돌봄의 총량이 커졌다. 1, 2명의 자녀만을 낳게 되면서 한 명의 성인이 노부모에 대해 짊어질 돌봄의 총량을 형제자매들과 나누지 못하면서 부담이 가중되는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시부모뿐 아니라 부모도 돌봄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딸에게는 정서적, 관계적 지원을 원하면서 구체적 행위로서의 돌봄을 원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결국 한 명의 성인여성이 돌봐야 할 피돌봄자가 증가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초)고령화가 정책적으로는 주로 재정부담 증가 차원에서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지만, 실제 (가족)세대간 돌봄 부담과 이로 인한 문제는 전면화되지 않고 있다. 돌봄을 둘러싸고 일어난 여성과 세대 간 변화를 적극 고려하지 않는 정책은 현대판 고려장이나 방임을 초래할 위험이 있어 보인다. 이렇게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은 돌봄 퍼즐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무엇보다도 ‘좋은 돌봄’을 정책 기조로 놓는 관점이 요구된다. 저출산고령화사회의 도래 속에서 돌봄을 받아야 하는 대상은 늘고 있다. 이들을 그저 경제 발전을 제약하는 그룹으로만 인식하면 돌봄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좋은 돌봄이 보장돼야 아이를 낳고 싶을 것이며, 아동과 노인들은 충분한 돌봄을 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우선 돌봄을 맡은 돌봄자에게 좋은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 공사 영역에 걸쳐 일하는 돌봄자에 대한 처우 개선과 권리 보장을 통해 좋은 돌봄의 원천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돌봄 책임을 남성-여성, 국가-가족-지역사회 등 여러 주체가 나눠 갖는 돌봄의 민주화를 지향해야 한다. 육아 독박, 돌봄 독박의 부담이 없어야 좋은 돌봄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돌봄 없이는 인간은 존재할 수 없으며 사회도 지속될 수 없다는 불변의 진리를 사회 전반에 복원시켜야 한다. 돌봄친화 사회만이 저출산고령화 시대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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