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뛰드하우스’ ‘넷플릭스’ 등 

여성 소비자가 주를 이루는 업체서

광고영상 모델로 ‘여혐’ 방송인 기용

“소비자 기만하는 행위” 비판 쇄도

기업, “소비자 의견에 귀기울이겠다”

형식적 답변만 내놔 소비자들 ‘답답’

 

방송인 전현무(왼쪽), 개그맨 유세윤 ⓒ뉴시스·여성신문,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방송인 전현무(왼쪽), 개그맨 유세윤 ⓒ뉴시스·여성신문,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최근 여성이 주 소비층인 기업들이 광고영상에 ‘여혐’ 방송인을 기용해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화장품 브랜드 ‘에뛰드하우스’(지난달 27일 영상 게재 및 비공개 전환·영상 재편집)와 유료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지난달 22일 광고 게재, 다음날 광고 삭제) 이야기다. 두 업체는 각각 방송인 전현무와 개그맨 유세윤을 광고영상에 등장시켰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재 이후 소비자들의 항의가 쇄도했다. 두 곳은 곧 영상을 비공개 전환하거나 삭제하는 조치에 나섰다.

 

에뛰드하우스가 지난달 27일 인스타그램에 게재한 ‘NEW 에뛰드 애니쿠션’ 광고영상. ⓒ에뛰드하우스 인스타그램
에뛰드하우스가 지난달 27일 인스타그램에 게재한 ‘NEW 에뛰드 애니쿠션’ 광고영상. ⓒ에뛰드하우스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코리아 트위터 공식계정이 지난달 22일 게재한 ‘마블 아이언 피스트’ 광고영상. ⓒ넷플릭스 코리아 트위터
넷플릭스 코리아 트위터 공식계정이 지난달 22일 게재한 ‘마블 아이언 피스트’ 광고영상. ⓒ넷플릭스 코리아 트위터

에뛰드하우스는 자신 안에 숨겨진 공주를 찾아나가는 것을 브랜드 콘셉트로 삼는다. 자사 제품을 사용하면 ‘공주가 된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일명 프린세스 마케팅에 중점을 두고 있다. 마케팅 전략에서부터 여성을 주요 타겟으로 잡은 것이다. 그러나 광고모델로는 ‘여혐’ 방송인을 활용해 많은 이들의 반발을 샀다. 넷플릭스는 페미니즘과 소수자 권리를 옹호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용자들이 많다는 점에서 분노가 컸다. 특히 국내에선 여성 이용자가 남성에 비해 많다고 알려져 있어 문제가 두드러졌다. 누리꾼들은 “20~30대 남자들 죄다 다운받아서 보지 넷플릭스 결제 안 한다”(트위터리안 @regu*******) “영화나 음악 돈 주고 사서 듣는다고 하면 돈 낭비하고 아낄 줄 모른다고 타박하는 남자들 내 주변에 엄청 많다”(@yai9*****)며 여성들이 넷플릭스의 주 이용자임을 주장했다.

전현무와 유세윤의 과거 ‘여혐’ 발언

 

JTBC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2014) 방송영상. ⓒJTBC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 방송영상
JTBC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2014) 방송영상. ⓒJTBC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 방송영상

전현무는 2014년 tvN 예능프로그램 ‘로맨스가 더 필요해’ 진행을 맡을 당시, 살이 쪄 남편에게 구박받는 아내 사연에서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설거지는 식기 세척기가 하는데 아내가 힘들 게 뭐가 있느냐” “하루 종일 아내가 애 보면 되겠네” 등의 발언을 한 바 있다. 또 “(아내는) 하루 종일 애 보는데 살은 어떻게 빼라는 건가”라는 질문에 “아기 안고 앉았다 일어났다(하면 되지 않나)”라고 답해 여성 패널들을 분노케 했다. 2014년 jtbc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서도 ‘다음 생애 다시 태어난다면 남자 VS 여자?’라는 주제로 토론했을 때 “남자들은 여자를 위해주고 살아간다” “우리는 일생을 서포트만 했다”등의 여혐 발언으로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전현무가 출연한 광고영상 게재 후 “어떤 공주님도 전현무가 있는 왕국엔 가고 싶지 않을 것” “에뛰드는 여혐무랑 놀아 공주님들은 옆 동네 갈게” 등의 반응이 터져 나온 이유다.

 

개그트리오 ‘옹달샘’ 멤버인 장동민, 유상무, 유세윤이 2015년 4월 2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스탠포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팟캐스트 방송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에서 여성혐오 발언을 한 데 대해 기자회견을 갖고 공식사과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개그트리오 ‘옹달샘’ 멤버인 장동민, 유상무, 유세윤이 2015년 4월 2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스탠포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팟캐스트 방송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에서 여성혐오 발언을 한 데 대해 기자회견을 갖고 공식사과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유세윤은 과거 동료 개그맨 장동민, 유상무와 함께 진행한 팟캐스트 ‘옹달샘과 꿈꾸는 라디오’에서 지속적인 여성비하·혐오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여자들은 멍청해서 남자한테 머리가 안 된다” “처녀가 아닌 여자, 성 경험을 숨기지 않는 여자를 참을 수 없다”고 말하며, ‘개보X’ ‘개 같은 X’등 욕설을 한 바 있다. 

직장인 이모(25)씨는 “광고 의사결정권자들, 소위 말해 윗선에 있는 사람들이 전현무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오로나민씨나 중국어 학원 광고 등에서 보였던 코믹한 이미지를 좋아한다는 거다. 그래서 유사 효과를 바라고, 전현무의 과거 여혐 발언은 아예 고려대상으로 삼지 않은 것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서혜원(24)씨는 업체들이 노이즈 마케팅을 염두에 둔 것 같다는 의문을 내비쳤다. “전현무의 여혐 발언을 몰랐을 땐 단순히 에뛰드가 ‘마동석=전현무’ 느낌으로 전현무를 광고모델로 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을 안 후에는 ‘에뛰드가 노이즈 마케팅을 노리고 전현무를 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세윤은 여성비하 욕설과 여혐 발언으로 한 차례 사회적 물의를 빚었고, 공개 사과도 한 바 있다. 서씨는 “이미 여혐으로 유명한 방송인을 광고모델로 기용했을 땐 무언가 노린 게 있지 않을까. 그게 아니라면 사전에 모델 분석조차 거치지 않은 게 들통난 것”이라며 기업의 안일한 일처리를 지적했다. 

기업은 왜 ‘여혐’에 둔감한가?

최근 소비자들은 ‘여혐’ 광고에 강력 대응하고 있다. 젠더 감수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진 결과다. 하지만 기업은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여혐’ 방송인을 모델로 한 지속적인 광고 제작·유통이 이를 방증한다. 

여성 소비자를 타겟으로 하는 기업에서 모델에 대한 사전 조사나 분석을 거치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다. 관련 질문에 에뛰드는 다소 기계적인 답변을 보내왔다. 에뛰드하우스 홍보담당자 이규원씨는 “(문제가 된) 광고는 ‘유명인의 일상 생활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착안해 기획된 영상”이라며 “이에 해당 프로그램 MC 중 한 명인 전현무씨를 섭외했으나, 다양한 소비자들의 의견을 고려하지 못한 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SNS상의 고객 의견과 반응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전했다.

 

에뛰드하우스가 지난달 28일 공식 트위터에 올린 사과문. ⓒ에뛰드하우스 트위터
에뛰드하우스가 지난달 28일 공식 트위터에 올린 사과문. ⓒ에뛰드하우스 트위터

 

넷플릭스 코리아가 지난달 22일 공식 트위터에 올린 사과문. ⓒ넷플릭스 코리아 트위터
넷플릭스 코리아가 지난달 22일 공식 트위터에 올린 사과문. ⓒ넷플릭스 코리아 트위터

넷플릭스 국내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MSL그룹의 김영신 팀장은 3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내부 확인을 거친 후 관련 질문에 회신을 주겠다”고 했으나, 4일 연이은 전화에도 연결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고질적 문제점인 수직적 업무 환경이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마케팅 관련 직종에 종사 중인 자오(닉네임)씨는 “마케팅하는 사람들이 트렌드에 민감하고 깨어있을 거라는 생각 버려라. 여기도 그냥 개저씨판”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기업이 여혐 모델을 쓰는 이유에 대해 “의사결정권자가 ‘요즘 잘 나가는 거 누구야? 거 왜 전현무나 유세윤 있잖아!’ 하면 직원들은 그걸 설득하기 힘들다. 만약 본인이 설득해서 뽑은 모델이 문제가 생기면 독박 써야 한다. 그래서 설득의 과정을 거치는 것보다 윗선에서 하자는 대로 하고 나중에 수정하는 것이 부담감이 덜하다”고 설명했다. 시류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마케팅 직종에서도 위계질서와 가부장제가 공고하다는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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