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은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말이 나올 만큼 페미니즘이 대중화된 한 해였습니다. 지난해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을 알고 배우고 흡수한 한 해였다면, 올해는 지난해 배운 페미니즘을 실제로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해가 될 것입니다. 2030 세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이 학교, 직장, 가정 등 일상 속에서 직접 페미니즘을 실천하며 실제 자기 주변의 세상을 변화시킨, 혹은 자기 자신을 바꾼 이야기들을 발굴해 '세상을 뒤집는 페미니스트들(세뒤페)' 연재합니다. 

 

취업박람회를 찾은 한 여성 구직자가 채용일정을 확인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취업박람회를 찾은 한 여성 구직자가 채용일정을 확인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대학을 다니면서 딱히 여자라서 차별받은 적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본격적으로 취업준비를 하면서부터였다.”

2년 전 여름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본격적인 취업준비생의 길로 접어든 지 반년이 넘어간다. 아직 사회에는 한 발짝도 내딛지 못했는데 내게 다가와 부딪히는 크고 작은 차별과 혐오는 나를 너무 지치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있고, 살아갈 것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읽는 시간은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을 멈추지 않는 것이 내가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 믿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의 페미니스트이고, 그러한 내 모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 때는 내가 잘나면 되는 부분이 많았다. 어쨌든 학교에서는 시험 성적으로 줄을 세우니 차라리 공평했다. 남자와 여자 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공부를 잘 하면, 노력하면 이길 수 있었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꽤 잘하는 편이었고 그래서 큰 불편함을 느낀 적이 별로 없었다. 노력하면 정말 대통령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녀 차별은 극복하려는 노력을 안 해서 존재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대학에 진학했고, 성적은 언제나 노력한 만큼 나왔다. 대학을 다니면서 딱히 ‘여자라서’ 차별받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조금 재수 없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매일 술을 마시고 PC방에서 밤을 새는 남학우들을 보며 칼 같은 졸업과 칼 같은 취업이 가능하리라 믿은 적이 있다. 대학을 다니며 겉멋으로 훑어 본 페미니즘 책에서는 현실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가부장제의 위험성을 역설했지만 이는 과거의 일이라고, 나는 조금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착각은 오래 가지 않았다.

문제는 본격적으로 취업준비를 하면서 시작됐다. 2015년 겨울 처음으로 대기업 계열사의 영업관리직 인턴을 지원했다. 면접관들은 나에게 ‘(당신은) 여자고, 몸이 약해 보이는데 일을 잘 할 수 있겠느냐’ 물었고 나는 웃으면서 이래봬도 잔병치레가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 느꼈던 짜증이 부당한 대우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꽤 나중에서야 알았다. ‘여자지만 남자랑 똑같이 일할 수 있어요, 여자라서 꼼꼼하고 섬세한 편이에요’ 같은 차별적 언사를 나를 팔아먹기 위해 써야 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그 후 몇 번의 자잘한 면접에서도 나는 심심찮게 그런 질문을 받았야 했다. 체중, 결혼 계획, ‘손이 예쁘다’ 등 내 능력과는 전혀 관계없는 질문들….

어느 면접에서는 결국 참지 못하고 남자 사원의 연봉이 여자 사원보다 200~300 높게 시작한다는 인사팀의 말에 왜 그런지 물어보고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이유는 군대였고, 나는 그때 내가 2등 시민일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했다.) 아, 정말 더러워서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하는 사회가 싫었다. 부모님에게 말해봤자 네가 조금 더 노력하면 되지 않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그게 아니라고, 이 구조가 틀렸다고, 이 사회가 잘못됐다는 말을 입 속에서 굴리고 또 굴리곤 했다.

취업 관련 사이트에서는 여자가 27살만 넘으면 서류를 블라인드 처리한다는 수많은 ‘썰’들이 넘쳐났고, 남자가 사실상 최고의 스펙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나는 그 구조 속에서 도무지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질문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면 곧바로 떨어져버리는 그 낭떠러지에서 나는 결국 대기업 입사를 포기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글을 쓰고, 생각할 수 있는 언론사를 준비해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 또한 수월하지는 않았다. 필기 시험장에서 손에 꼽는 남자 비율이 면접장에만 가면 비슷하거나 더 많아지고, 최종 명단에는 남자로 추정되는 이름이 더 많은 일을 몇 번이나 겪고 나서 나는 내 세상이 투명한 벽 같은 것으로 둘러싸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현실이라면 적어도 나만은 미치지 말자, 하는 다짐으로 나는 절대 생각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떠들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은 현재진행형이다.

나는 지금도 ‘백수’지만 우울하진 않다. 일어나서 신문을 읽고 세상 벌어지는 일들을 훑어보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조목조목 반박을 생각하고 쓴다. 좋은 페미니즘 책을 읽으면 내 일상에 비춰 생각하며 구절을 손으로 옮겨 적고 친구들과 토론한다. 여성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 친구들과 함께 보러가고 감상을 나눈다. 대화를 나누다가도 여성이나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발언이 나오면 넘어가지 않고 정정한다. 덕분에 카카오톡 단체방에서는 ‘진지충’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진지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반박하지 않는다. 나와 다른 여성들, 그리고 소수자들의 삶을 생각하는 이 모든 것은 진지한 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것은 나의 일상이다. 자그마한 일들을 넘기지 않고 앞으로도 나를 둘러싼 벽을 두드릴 것이다. 요즘 내가 가장 기쁠 때는, 그 두드리는 소리가 나 혼자만이 내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이다.

옳은 것을 위해 싸우는 일은 가치가 있다. “저들이 저급하게 갈 때 우리는 품위를 지킨다”는 말을 남긴 힐러리 클린턴과 미셸 오바마를 기억한다. 나는 그들처럼 옳은 것을 위해 앞으로도 질문할 것이고, 언제나 품위 있는 일상을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사소한 움직임들로 점철된 나의 개인적인 삶이 곧 치열한 정치임을 믿기 때문이다. 유리 천장을 결국 깨지 못하는 것이 나여도 좋다. 계속 부딪히겠다는 희망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멈추지 않겠다는 것을 맹세할 뿐이다. 나는 페미니스트이며, 페미니스트로 계속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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