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2.2세(세계경제포럼 보고서)다. 20년 전에 비해 10년가량 늘었다. 한국은 내년이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전체 국민의 14%를 넘어서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25년이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가 된다.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은 65세 이상이라는 뜻이다. 초고령사회 문턱에 선 한국사회에서 고령화 문제의 해법으로 ‘액티브 시니어’가 주목받고 있다. 소비와 노동, 여가의 주체로 떠오른 액티브 시니어를 만나보고 시니어산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 주]

새로운 시민‚ 액티브 시니어①

내년이면 고령사회 맞는 한국

‘액티브 시니어’ 사회적 화두로

고용·복지 두 토끼 잡을 해법 전망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플러스카페 2호점에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한 어르신 점원들이 커피를 만들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종로구가 운영하는 플러스카페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한 어르신들이 직접 커피를 만들어 판매한다. ⓒ뉴시스·여성신문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플러스카페 2호점에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한 어르신 점원들이 커피를 만들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종로구가 운영하는 플러스카페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한 어르신들이 직접 커피를 만들어 판매한다. ⓒ뉴시스·여성신문

1023만5951명. 행정자치부가 3월 발표한 60세 이상 인구수다. 한국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19.8%)은 60세 이상이라는 뜻이다. 고령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말 65세 이상 인구(13.5%)가 처음으로 15세 미만 인구(13.4%)를 추월했고 2월에는 65세 이상이 13.7%로 15세 미만 인구(13.3%)와의 격차를 0.4%포인트로 벌렸다. 8년 전인 2008년엔 65세 이상 인구가 10.2%, 15세 미만 인구가 17.2%였다. 지난 200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한 한국은 내년이면 고령사회를 맞이한다. 국제연합(UN)은 인구의 7%가 65세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본다.

고령화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며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활동적 고령층)’가 주목받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는 소비생활과 여가생활을 즐기며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50~60대 세대를 가리킨다. 일할 능력과 경제력을 겸비한 시니어 세대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박계영(63)씨도 환갑이 넘었지만 사회활동에 여념이 없는 액티브 시니어다. 요즘 그는 일주일에 3일 동안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출근한다. 그의 직업은 ‘이야기할머니’. 손주 같은 어린 제자들에게 준비해간 동화와 옛날이야기를 들려준다. 오랫동안 운영하던 화장품가게를 접고 인생 2막을 시작하기 위해 수지침 등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하다 만난 지인의 권유로 이 일을 처음 접한 그는 지금까지 4년 넘게 이야기할머니로 활약하고 있다. 박씨는 “처음엔 ‘애들 키울 때처럼 아이들에게 전래동화를 들려주면 되겠지’라고 쉽게 생각했지만 70여시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여러 권의 이야기책을 외우는 일이 쉽지 만은 않았다”고 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학진흥원이 2009년부터 시작한 사업이다. 이야기할머니들이 유아교육기관을 찾아가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문화전승 사업이자 유아교육 사업이다. 만 56살에서 70살 사이의 여성이 지원할 수 있는데, 서류 심사와 면접을 거쳐 선발된다. 거기에 7개월간의 양성교육을 마쳐야 비로소 이야기할머니로 활동할 수 있다. 이런 까다로운 전형에도 선발 경쟁은 뜨겁다. 내년 활동하는 9기 모집엔 1097명이 몰려 4.4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박씨는 “처음에는 낯설어하고 관심도 안보이던 아이가 제 치맛자락을 잡고 가지 말라고 붙잡을 때 일을 하는 보람을 느꼈다”며 “남들은 은퇴할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점도 만족스럽고 적성에 딱 맞는 일을 찾게 돼 행복하다”고 말하며 환히 웃었다.

 

사회, 경제에 적극 참여하는 액티브 시니어는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고 정체된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을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여성신문
사회, 경제에 적극 참여하는 액티브 시니어는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고 정체된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을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여성신문

이처럼 일과 봉사, 문화생활을 즐기고 적극 참여하는 액티브 시니어는 늘고 있지만 누구나 액티브 시니어처럼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실제로 한국 직장인의 평균 은퇴연령은 53세다. 국민연금을 정식으로 받으려면 61세까지 8년을 견뎌야 한다. 기대수명은 길어졌지만 노후 준비가 덜 된 탓에 은퇴 후에도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는 어르신도 많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16년 노후준비 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후준비 수준은 100점 만점에 62.8점에 그쳤다. 80점은 돼야 선진국 수준이다.

전업주부였던 김성예(62·가명)씨도 2년 전부터 가사도우미로 일주일에 4일 일한다. 그렇게 일하고 손에 쥐는 돈은 월 70만원 남짓. 남편이 정년퇴임을 하면서 수입이 급격히 준 탓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일이다. 조금 더 편한 일을 하고 싶었지만 기술이나 경력이 없는 김씨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이것 하나였다. 김씨는 “조금이라도 벌어야 아들 결혼자금도 마련하고 노후준비도 할 수 있어 힘들어도 열심히 하고 있다”면서도 “솔직히 노래도 배우고 여행 다니느라 바쁜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은행도 경제의 잠재성장률 하락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그 원인으로 고령화 등 인구 요인을 꼽았다. 이는 고령화사회 문턱에 선 현재 풍부한 경제력과 구매력을 지닌 액티브 시니어층이 넓어지면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령친화산업이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경진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최근 열린 시니어 산업 육성 세미나에서 “고령화 사회는 저축률 감소로 인한 가계부담 증가와 의료 복지비용 증가, 연금고갈 등으로 사회적 위기라고 볼 수 있다”면서도 “반대로 막대한 수요가 있는 고령친화산업 발전을 통해 경제문제를 해결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면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고 말했다.

잠재수요도 충분하다.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시에는 건강과 미용, 자기계발에 적극적인 730만 베이비부머(1955~63년생) 세대가 시니어 세대로 편입돼 능동적인 소비주체로 부상하게 된다. 또 2030년에 이르면 한·중일 3국에서 4억명에 달하는 시니어 소비기반이 형성될 것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전망하고 있다.

우리 사회 고령층이 액티브 시니어로 전환되는 징조는 곳곳에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고령친화산업환경 변화 및 대응방안’ 보고서에서 건강과 레저, 스포츠, 문화 등 시니어 관련 산업 규모가 2010년 27조3800억원에서 2020년에는 72조8305억원으로 3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온라인 쇼핑몰 옥션에서는 지난해 50∼60대의 여행·항공권 판매가 전년보다 115% 급증했다. 건강식품·다이어트식품 판매는 28%, 헬스기구와 수영용품 판매는 각 42%, 33% 늘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2015 소비자 행태 조사’에 따르면 액티브 시니어의 실제 소비규모도 큰 편이다. 시니어의 월평균 카드 사용액은 177만원으로 30대 124만원, 40대 136만원을 훨씬 웃돌았다.

 

‘이야기할머니’로 인생 2막을 연 박계영씨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동화 구연을 하고 있다. ⓒ박계영씨
‘이야기할머니’로 인생 2막을 연 박계영씨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동화 구연을 하고 있다. ⓒ박계영씨

하지만 시니어의 주머니를 공략하기에 앞서 필요한 것은 시니어가 소비와 노동의 주체인 액티브 시니어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인프라 조성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고령친화산업지원센터 민경민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고령친화산업 시장 확대의 핵심은 일본과 같이 고령자를 소비 주체자로 이끌어내기 위한 전방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민 연구원은 “아직 초기 단계에 국내의 고령친화산업은 주로 공급자측면에서 이뤄져 왔으며, 상대적으로 수요와 관련된 지원이나 정책은 소홀히 다뤄져 왔다”면서 “향후에는 수요자 측면에서 고령자의 의식변화, 소비 트렌드, 니즈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조사가 꾸준히 수행되어 이것이 산업과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에 대비하기 위해선 시민사회와 기업, 정부 등 사회 전반에서 함께 노력을 기울여야 뜻이다.

정부도 올해 노인연령 기준과 정년·연금수급연령 조정, 실업급여 등 수급기준, 고용확대 방안 등 노인기준 재정립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본격 시작했다. 시니어 일자리 재정지원도 강화하기로 했다. 지방자치단체도 양질의 어르신 일자리 만들기에 한창이다.  대전시 유성구의 지난 2월 '제1기 할아버지 할머니 선생님 전문가 양성과정' 교육을 통해 동화구연과 손 인형극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전문가 27명을 배출하기도 했다.

기업도 액티브 시니어층을 넓히기 위한 발판 마련에 동참하고 있다. 기업 차원에서 액티브 시니어 확대에 앞장서는 유한킴벌리가 대표적이다. 최규복 유한킴벌리 대표는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이끈 시니어 세대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시니어 일자리가 많이 필요하다”며 “액티브시니어가 생산가능 인구로 편입되어 소득과 소비의 주체가 된다면, 경제 파이가 커지고 다시 일자리도 늘면서 경제가 성장하는 공유가치의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최근 (사)50플러스코리아와 함께 새로운 시니어서비스사업모델인 ‘종합생활지원서비스’를 론칭하고, (재)함께일하는재단과 함께 전문직 은퇴자 또는 경력단절 시니어들의 전문 경험을 활용한 일자리 모델인 ‘시니어케어매니저’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Tip 액티브 시니어는 누구?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란 자산과 소득·소비 수준이 높은 50∼60대를 가리키는 용어로,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성장의 주역인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해당한다. 이들은 외모나 건강관리 등에 관심이 많아 자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여유 있는 자산을 기반으로 경기에 별 영향을 받지 않고 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높은 구매력을 지니고 있다. 여가와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특징을 띈다. 기존의 실버세대가 연금이나 자녀의 용돈에 의존해 수동적인 이미지가 강했다면, 액티브 시니어는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문화활동을 즐기는 주체적 이미지다.

최근 고령층 인구가 늘면서 액티브 시니어가 주목받고 있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는 분석이 많다. 세계 최고 수준의 노인빈곤율 때문이다. 한국의 노인빈곤율(2014년 기준)은 48.8%로 경제협력기구(OECD) 평균(12.1%)보다 4배나 높다. 이는 시니어 시장의 소비를 이끌 액티브 시니어층이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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