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수준 운영자에 달려

네티즌만 탓할 수 없어

군대갈 의무와 아기 낳을 의무가 맞붙었다. 신설된 여성부를 두고 인터넷 상에서 조금 유치하기까지 한 논쟁이 뜨겁다. 여성부의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는 ‘병역의무’까지 강조하는 남성들의 볼멘소리로 가득하다. 비속어까지 동원한 남성 네티즌들의 글은 인터넷과 같이 진보된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여론의 질을 반드시 고양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사실, 여성부 신설에 대한 남성 네티즌들의 이같은 반응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인터넷은 ‘실제 세계보다 더 남성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사용되는 각종 언어적 메타포(예를 들어, 정보초고속도로)조차 남성적이다. 초창기 야후(Yahoo)에 ‘여성’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포르노 사이트 목록이 검색되어 나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공간이 얼마나 남성적(masculine) 공간인지를 실감할 것이다.

인터넷이 남성 중심적인 것은 그것이 컴퓨터 문화를 그대로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상에 통용되는 일련의 규범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규범체계에 그 뿌리가 있다. 온라인 공간 속에서 남성은 숫적 우위뿐만 아니라 그 문화도 지배하고 있다. 온라인 게시판 상에서 남녀간의 사용언어의 차이를 분석한 헤링(Herring)과 프리스(Preece) 등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상대를 격려하는 스타일이나 질문성 글을 많이 올리는 경향이 높은 반면 남성은 자기를 과시하고 톤이 강한 단언적 문구를 많이 사용했다. 온라인 게시판 상에 사용되는 언어적 차이는 남성과 여성의 윤리적 차이도 동반한다.

이를 고려한다면 ‘여성부 신설 논쟁’에서 남성의 우위는 이미 확정적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여성들이 인터넷의 이런 반응에 낙담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여론은 양의 문제뿐만 아니라 질의 문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온라인에서 이성적인 토론은 애초부터 불가능한가? 혹자는 인터넷의 익명성이 토론의 질을 저하시킨다고 말한다. 익명성은 다중적인 자아를 만들기도 하며, 무책임한 언어적 행동을 이끌기도 한다. 실제로 온라인 상에서 남성들의 목소리는 익명성으로 인해 더욱 공격적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인터넷이 갖는 중요한 장점이다. 글(text)은 인간의 사회적 지위(성별, 연령, 수입 등)를 가장 적게 드러내는 표현방식이다. 그로인해 인터넷 상에서의 대화는 다른 어떤 방식보다 평등적이다. 인터넷에서 익명성이 유지되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상호작용성이 높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 공간은 메시지 송신자의 신뢰도가 낮고 언제든지 상호작용적 피드백이 가능하기 때문에 비록 그것이 익명의 메시지라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것이 된다.

익명성과 이성적 토론의 관계

인터넷 게시판 상의 토론 책임은 상당부분 사이트 운영자에게 달려 있다.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는 말이 있다. 단순히 네티즌의 교양을 탓하거나 거친 남성 문화를 탓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이는 마치 길거리에 쓰레기통 하나를 세워두고,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다고 이용자를 탓하는 것과 같다.

사실 온라인 상의 모든 토론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그것이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인정될 때, 즉 사회적 재활용 가치가 높은 의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인터넷 운영자들의 과제인 것이다.

감슨(William Gamson)이 말한 대화의 두 가지 개념은 여기에 적절한 설명을 제공한다. 그가 말하는 대화의 한 차원은 충동적이며 정확한 정보가 결여된 ‘사교적인 대화’이며 다른 차원은 신중하고 정보와 주장이 고려된 ‘숙의적 대화’이다. 일상세계처럼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오는 많은 대화들은 충동적인 사교적 대화가 대다수이다. 이런 사교적 대화를 숙의적 대화로 바꾸는 것은 운영자의 역할이다.

중요한 의제 설정 등 관건

여성부 신설 문제는 사교적 대화를 숙의적 대화로 바꾸어야 하는 중요한 사회적 의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부 사이트는 여전히 하나의 큰 의견 바구니(게시판)만 제공한다. 숙의적 대화로 진전하기 위해서는 1) 중요한 의제를 설정하는 것, 2) 중요한 의제와 관련된 충분한 판단정보를 제공하는 것, 3) 토론의 양과 질을 평가할 수 있는 조사방법 사용, 4) 전문가 그룹의 참여, 5) 온라인 토론 중재자 및 조정자(일종의 사회자) 설정이 필요하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쉽지는 않지만, 사안의 중요도에 따라 게시판을 의제 토론방으로 전환해서 각각의 조건을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온라인 토론의 성공적인 사례는 미국 NewYork Times가 개설한 NYTimes.com의 포럼 섹션이다. 이 포럼 사이트는 현재 “How race lived in America”라는 주제로 인종문제에 대한 온라인 토론을 진행중이다. 전문가 그룹이 결합된 이 사이트는 개설 이후 수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포럼에 글을 남겼으며 수천 명 이상의 독자들이 인종문제와 관련한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상세한 질문을 해왔다. 숙의적 토론의 좋은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인터넷의 대중화로 거의 모든 사이트들이 게시판 기능을 두고 있지만, 이처럼 숙의적 대화로 진전시키는 사이트는 드물다. 이러한 기능은 남성 지배적 인터넷 공간에서 그들의 문화와 부딪쳐야 하는 여성들에게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황용석/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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