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음악이고 음악이 삶인 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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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 속의 댄서>

영국의 뉴에이지 그룹 ‘Dead Can Dance’는 모든 음악이 결국 죽은 물소, 나무, 말 등의 가죽과 껍질로부터 나온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들 그룹의 이름처럼. 이들의 말대로라면 모든 것은 죽지 않고 음악으로 남게 된다. 그래서 음악은 살아있는 것들의 영혼을 움직인다.

<어둠 속의 댄서>의 셀마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멤버들에게 음악은 그들 삶을 밀어가는 힘이다. 그러나 그것은 터지는 무엇이 아니라 흐르는 강물같은 것이다.

자신처럼 눈이 멀어가는 아들을 위해 수술비를 모으고 있는 셀마나 쿠바의 허름한 뒷골목 구두닦이 이브라힘, 낮엔 이발소에서 일하고 밤엔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는 꼼빠이 세군도, 쿠바의 3대 피아니스트였지만 80이 넘어서야 첫 솔로 음반을 낸 루벤 등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멤버들의 삶은 신산하다. 그러나 이들은 그런 삶에 엄살을 부리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두 영화에는 실제로 음악하는 사람들이 출연한다. <어둠 속의 댄서>(24일 개봉)의 셀마 역엔 아이슬란드 출신 가수 비요크가 열연했고 <부에나 비스타…>는 실제로 그 클럽의 멤버들이 등장한다. <어둠 속의 댄서>가 자신처럼 시력을 잃어가는 아들의 수술비를 모으던 어머니가 그 소중한 돈을 훔친 이웃을 죽이게 되고 결국 사형대에 서면서까지 아들의 시력을 찾아주려 한다는 플롯을 가진 반면 <부에나 비스타…>는 클럽의 음악 사이사이에 실제 멤버들의 인터뷰가 삽입되는 식으로 구성된 뮤지큐멘터리이다.

비요크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강렬한 음악 메시지에 끌려 <어둠 속의 댄서>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교향악적 멜로디와 일상의 사물이 뿜어내는 타악 사이로 맑고 기름진 비요크의 노래가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공장의 기계 소리, 새들의 노래 소리, 사람의 발걸음 소리, 규칙적 또는 불규칙적으로 들리는 소리들에 생명을 부여하는 그를 보면서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에서 마치 실뜨기를 하듯 건져 올려진 음악의 결을 느끼게 된다.

영국의 록밴드 라디오 헤드의 톰 요크와 듀엣으로 부른 ‘I've Seen It All’은 톰의 건조한 보컬과 비요크의 풍요로운 소리와 춤이 어우러져 관객의 오감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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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3월 1일 개봉)은 작곡자이자 프로듀서,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로서 제 3세계 음악을 발굴했던 라이 쿠더와 그가 동경해온 쿠바의 전설적인 뮤지션들의 만남을 빔 벤더스가 디지털 카메라에 담은 것.

가난하지만 남루하거나 비굴하지 않은 쿠바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영화다. 1950년대식 낡은 스튜디오 녹음실에 모인 나이든 뮤지션들은 ‘음악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쫓기지 않는 여유와 관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풍요로운 그들의 에너지는 어디서 온 것인지 영화 보는 내내 부러움과 서글픔을 갖게 했다. 문득 이 땅의 사람들이 방황하는 이유와 비뚤어진 것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나이 90이 넘어서도 음악을 할 수 있는 곳과 아닌 곳과의 차이에서 연유하는 것일 거다.

낡은 도시 거리와 희뿌연 공기, 그러나 힘차게 부서지는 파도를 가진 그 작은 나라는 아주 자연스럽게 미국의 카네기 홀에 쿠바의 국기를 펼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그게 음악의 힘인지 아니면 땅의 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은주 기자 ippe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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