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서울 신촌 일대에서 열린 페미니스트 대학생들의 문화제, ‘평등한 대학을 위한 펭귄들의 반란’이 열렸다. ⓒ평등한 대학을 위한 3.30 펭귄들의 반란 기획단 제공
3월 30일 서울 신촌 일대에서 열린 페미니스트 대학생들의 문화제, ‘평등한 대학을 위한 펭귄들의 반란’이 열렸다. ⓒ평등한 대학을 위한 3.30 펭귄들의 반란 기획단 제공

“우리는 여기서 대학을 바꾼다! 펭귄은 날 순 없어도 걸을 수 있다. 뒤뚱뒤뚱 한 발 한 발 걸어서 우리가 바라는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새학기 시즌이면 어김없이 ‘대학 내 성폭력’ 소식이 들려온다.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라지만, 학내 여성혐오는 여전히 공고하다. 12개 대학 소속 페미니스트들이 모인 ‘펭귄프로젝트’는 이에 대항하는 작지만 눈에 띄는 움직임 중 하나다. 이들이 지난 30일 오후 서울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평등한 대학을 위한 3·30 펭귄들의 반란’ 문화제를 열었다. 그들의 목소리엔 “우리가 대학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분명했다. 참가자들이 고발한 대학 내 성폭력·여성혐오와 이들의 주장을 기록해 정리했다.

▶성공회대 한하늘씨

“성공회대는 ‘인권과 평화의 대학교’라고 하지만, 최근 그 민낯을 보게 됐습니다. 익명 커뮤니티엔 적나라한 혐오와 차별 발언이 만연합니다. 학생들은 총학생회장 커밍아웃 소식에 ‘나는 동성애자가 싫다’ ‘요즘 그렇게 관심 끄는 게 유행이냐’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분노를 넘어 당황스러웠습니다. ‘인권과 평화의 대학’이라는 슬로건 때문에 자신의 혐오 차별과 발언을 당당히 할 수 없어 불편하다는 반응도 있어요. 이건 폭력에 대한 방관과 기만입니다.”

▶성균관대 사회인문학회 ‘맏봄’ 함수민씨

“페미니즘이 공공연히 발화되는 오늘날,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하려 모인 분들과 함께 해 기쁩니다. 2015년 여름, 처음 페미니즘을 접하고 내가 하는 말들이 끊임없이 누군가를 배척·혐오하고 있다는 걸 알게 돼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왜 내게는 한 명의 인간이 아니라 ‘여자애’라는 불필요한 수식이 붙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는 나답게 존재하기 위해 페미니스트가 됐습니다. 지난해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있었지요. 저와 동갑인 여성은 단지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살해됐습니다. 그 후 수많은 여성혐오 담론이 형성됐고, 페미니즘은 그간 제가 느낀 공포와 의문에 이름을 달아줬습니다. 왜 밤에 혼자 돌아다니는 게 공포가 됐는지, 왜 나는 내 생리대를 감췄어야 했는지,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이 왜 불효녀가 되는지.

지금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공간이자 여성혐오를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대학입니다. 3수해서 대학 왔는데, 어렵게 들어온 대학에서 왜 ‘여학생이 따라주는 술 마셔야겠다’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까. 저는 모르겠습니다. 분노와 억울함은 우리 모두의 것이었고, 연대는 제게 큰 힘이 됐습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바꿔 보려 하는 노력이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톡방’ 감시 프로젝트 ‘톡옵티콘’ ⓒ여성신문
‘남톡방’ 감시 프로젝트 ‘톡옵티콘’ ⓒ여성신문

▶서울대 페미니즘 모임 ‘관악의 페미들’ 이승수씨

“저는 지정성별 남성이자, 한 명의 페미니스트입니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너는 목소리가 높고 남자답지 않아 이상하다’ ‘왜 너는 성격이 세심하고 남자답지 못하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목소리에 신경을 썼고 바꾸려고 노력했습니다.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책을 읽은 후 모든 여성혐오의 기저에 ‘호모소셜’이 깔려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남성성’을 갖지 못해 배제됐다는 걸 그 때 알았습니다. 여성분들도 ‘여성성’을 지니지 못해서, 혹은 지녔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가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서강대 여성주의학회 ‘담다디’ 김유영씨

“고3 때 우울증이 있었습니다. 대학에 오고서도 한동안은 사람을 기피했어요. 부모님 영향이 컸습니다. 저는 늘 아빠의 눈치를 봤어요. 고등학생 땐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은 거실로 불려나가 훈계를 들었습니다. ‘공부 좀 해라’ ‘조금만 참으면 인생이 바뀐다’ ‘머리 길다. 좀 잘라라’ ‘신체발부 수지부모인데 다시 길러라’ 저를 질식하는 말들에 저는 점차 익숙해졌습니다. 또 아빠는 엄마에게 힘든 말을 하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대학에 와서야 여성주의를 알게 됐습니다. 그간 아내, 딸, 여성이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빼앗겼음을 깨달았습니다. 아빠가 나와 엄마에게 폭력을 가했음을, 내가 가스라이팅을 당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알고 보니 여성들에겐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빈번한 일이었습니다. 대학 내 남톡방에선 성폭력 발언이 오가고, 성소수자 동아리의 플랑이 훼손되고…. 성평등한 대학으로 다 같이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평등한 대학을 위한 3·30 펭귄들의 반란’에 참가한 대학생 옥채원씨. 이날 옥씨는 펭귄 인형과 함께 행사를 즐겼다. ⓒ여성신문
‘평등한 대학을 위한 3·30 펭귄들의 반란’에 참가한 대학생 옥채원씨. 이날 옥씨는 펭귄 인형과 함께 행사를 즐겼다. ⓒ여성신문

▶대학 연극영화과 재학생 윤유정 씨

“연극영화학과 재학생입니다. 과 학생들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대학에 와 보니까 대학은 제가 생각했던 곳이 아니더군요. MT에서 ‘병신샷’ ‘장애인’ 하며 조롱하고…. 졸업하면 창작자나 배우가 될 사람들이 소수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성소수자 다루는 작품을 하면서 트랜스젠더, 게이도 구분 못합니다. 특이하고 멋있는, 흥미로운 소재로만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게 너무 화가 났습니다. 배우, 창작자라면 당연히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소수자 관련 작품 하는) 대학로 배우들도 ‘남자랑 키스하는 거 더러웠어요, 끔찍했어요’라고 이야기하더군요. 학교에서 그런 걸 가르치지 않으니까, 배우가 돼 현장에 나가서도 아무렇지 않게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소수자에 대한 이해 교육을 필수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균관대 박지연 씨

“길에서 모르는 사람이 다가온 적 있습니까? 장난하다가 고의적으로 신체 부위 접촉을 당한 적 있습니까? 혼자 여행하다가 남성들에게 추행당한 적 있나요? 다 제가 경험한 일들입니다. 오늘 여기 오려고 버스를 탔는데 어떤 남자가 제 엉덩이를 만졌습니다. 이런 걸 여자들은 너도나도 겪었다고 합니다. 이게 정상입니까? 주변 남성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모든 남자가 그런 게 아니야’ ‘그래서 여자는 지켜줄 남자친구가 필요해’ ‘네가 겪은 사람들보다 내 군대 선임이 더 무섭다’고 합니다. 이게 정상입니까?”

“부당한 일들을 당하고도 보복이 두려워 대처하지 못했던 제가 부끄러워 여기 나왔습니다. ‘저 남자가 보복하지 않을까?’ ‘교수님에게 찍히지 않을까?’ 혼자 벌벌 떨기 싫어서 나왔습니다. 당당히 내 권리를 이야기해도 보복을 무서워할 필요 없는 사회가 될 때까지 노력합시다!”

▶직장인 김모 씨(25)

“전국디바협회가 올린 트윗을 보고 오게 됐어요. 참가자들 발언을 듣고 울컥했습니다. 저도 대학시절, 학내 성폭력이나 여성혐오를 경험한 적이 꽤 있었요. 1학년 MT 때 남자·여자애가 같이 노래 부르는 게 있었는데, 남자애가 여자애한테 일방적으로 뽀뽀한 적도 있어요. 그래서 오늘 발언자 분들 이야기에 공감이 많이 됐어요. 앞으로 건강이 허락한다면 계속 페미니즘 활동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대학생 옥채원(22)씨

“경기도 일산에서 왔어요.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일 줄 몰랐어요. 생각보다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런 장소에 제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었어요. 1학년 때부터 학내 여성혐오나 성폭력 경험을 굉장히 많이 들었지만, 뭔지 몰랐다가 페미니즘 접하고 알게 됐어요.

페미니즘을 말하기 시작한진 얼마 안 됐어요. ‘페미니즘이 나를 위한 학문이구나’ 생각해서 책을 읽고 공부한 건 최근이에요. 제 친구들도 저와 같은 얘기를 하다보니까 함께 영향을 받으면서 이야기들이 공유되고 주제가 통일되는 것 같아요. 시간만 된다면 앞으로도 행사 에 계속 참가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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