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생 치마·바지 교복 선택권’ 논의 20여년

‘학교 명예·여성스러움’ 이유로 치마만 입으라는 학교

학생들 개선요구 높아...인권위 진정·학생인권센터 항의 이어져

 

2017년이지만, 여전히 많은 중·고교가 여학생에게 치마 교복만을 허용한다. 사진은 28일 경기도 안산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하교하는 모습.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17년이지만, 여전히 많은 중·고교가 여학생에게 치마 교복만을 허용한다. 사진은 28일 경기도 안산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하교하는 모습.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우리도 바지를 입고 싶어요!” 서울 용산구의 A 여자중학교 학생들은 지난 20일 교장을 찾아가 바지 교복도 입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교장이 답했다. “자율도 좋지만 학생의 본분을 잊으면 안 되지요. 치마 교복은 우리 학교의 전통이고, 여러분의 본분은 치마를 입는 것입니다. 정 바지를 입고 싶다면 사유서를 쓰고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제출하세요.”

서울시 마포구의 B 고등학교에선 여학생이 바지를 착용하면 교칙 위반이다. “여성스럽지 않은 복장”이라며 벌점을 매긴다. 여학생은 한겨울에도 얇은 스타킹과 무릎까지 오는 길이의 치마만 착용해야 한다. 재학생 최모(17) 양은 “학교는 학생들의 의사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여학생은 어떠해야 한다’는 틀에 억지로 밀어 넣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2017년 새 학기, 여학생들의 치마·바지 선택권은 얼마나 보장되고 있을까? 서울 시내 중학교의 73%(281교), 고등학교의 59%(189교)만이 여학생에도 바지 교복을 허용한다(2015년 서울시교육청 학생생활규정 점검 결과). 여중생 10명 중 3명, 여고생 10명 중 4명에겐 아직도 선택의 자유가 없다. 

 

2015년 서울시교육청 학생생활규정 점검 결과, 서울 시내 중학교의 73%, 고등학교의 59%만이 여학생에도 바지 교복을 허용한다. ⓒ여성신문
2015년 서울시교육청 학생생활규정 점검 결과, 서울 시내 중학교의 73%, 고등학교의 59%만이 여학생에도 바지 교복을 허용한다. ⓒ여성신문

학생들의 항의는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2013년 한 여고생은 “치마만 입게 하는 것은 인권 침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8일 펴낸 ‘여학생 인권 가이드’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나온다. 치마 입기 싫다는 한 여중생은 바지 교복을 불허하는 학교와 갈등을 빚었고, 결국 교복 문제로 대안학교에 가겠다고 주장해 부모님과 갈등을 겪었다. 모 학교는 ‘학교 평판’ 때문에 여학생에 치마 교복만을 허용한다. 학부모가 직접 ‘피부염’ ‘장애’ 등 ‘자녀가 바지를 입어야 하는 사유’를 증명해야만 바지 교복을 허용하겠다는 학교도 있다. 바지를 입었다가 등하굣길에 제재를 당하거나 벌점을 받는 학생들도 많다.

‘여학생의 치마·바지 선택권’ 논의는 20여 년째 현재진행형이다. 교육부는 2000년부터 일선 학교에 이를 권고해왔다. 2003년, ‘여학생 치마 교복 의무 조항은 남녀차별 소지가 있다’는 정부 발표가 나왔다. 여성부는 “여학생 교복이 치마여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부족하고, 치마만 입을 경우 여학생의 행동과 태도를 규제하게 되어 성별에 따른 차별적 감정을 초래할 수 있다”며 학교에 개선을 권고했다. “전통을 무시하는 처사” “남성 차별”이라는 반발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많은 학부모와 여성·교육 단체가 여성부의 권고를 환영했다. 

학교 현장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2004년 “치마 교복만 허용하는 중·고교는 전국 학교의 28%(1142개교)로, 여성부의 권고 전보다 크게 감소하는 추세”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성평등 관점에서 학생의 선택권을 적극 보장하려는 학교도 있다. 서울 용산구 한강중학교는 2010년부터 여학생도 바지를 입을 수 있도록 했고, 2014년엔 ‘여학생도 남학생처럼 교복 넥타이를 매고 싶다’는 학생 의견을 수용했다. 활동하기 편하고 따뜻한 바지를 학생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많은 여학생들이 ‘바지 교복의 디자인과 핏이 세련되지 못하다’며 치마를 선호하지만, 적어도 바지 입은 여학생을 ‘이상하다’ ‘여자답지 못하다’라고 보는 시선은 이제 드물다.  

 

28일 경기도 안산 상록구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8일 경기도 안산 상록구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 용산구 한강중학교는 2010년부터 여학생에 치마·바지 선택권을 보장했고, 2014년엔 여학생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남학생처럼 넥타이를 맬 수 있도록 교칙을 변경했다. ⓒ교복왕 인스타그램 캡처
서울 용산구 한강중학교는 2010년부터 여학생에 치마·바지 선택권을 보장했고, 2014년엔 여학생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남학생처럼 넥타이를 맬 수 있도록 교칙을 변경했다. ⓒ교복왕 인스타그램 캡처

그러나 여전히 많은 학교들이 ‘명예’ ‘전통’ ‘여성스러움’ 등을 이유로 여학생엔 치마 교복만을 허용한다. 교육부와 외부 기관은 ‘권고’만 할 뿐, 교복 규정은 각 학교가 알아서 정하는 게 원칙이다.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해 서울과 각 시도에서 제정한 학생인권조례 대부분은 “복장에 대해선 학교가 규칙으로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전북학생인권조례만이 “교복을 입는 학교의 여학생은 치마와 바지에 대한 선택권을 가진다”(제12조 2항)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센터는 여학생에 바지 교복 선택권을 보장하면 △성역할 고정관념 해소 △겨울철 건강관리 용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봤다. 학교는 “성역할 고정관념에 따른 불합리한 분리과 구분을 지양해, 성평등 인식을 확대하고 성별에 관계없이 존엄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북학생인권조례는 “교복을 입는 학교의 여학생은 치마와 바지에 대한 선택권을 가진다”(제12조 2항)라고 규정하고 있다. ⓒ전라북도학생인권조례 본문 캡처
전북학생인권조례는 “교복을 입는 학교의 여학생은 치마와 바지에 대한 선택권을 가진다”(제12조 2항)라고 규정하고 있다. ⓒ전라북도학생인권조례 본문 캡처

영국은 아예 ‘젠더 중립적 교복’ 도입

“교복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표현 가능한 학교 돼야”

한국 교육계가 수십년째 여학생의 치마·바지 교복 선택권 문제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동안, 해외 선진국들은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한 중학교는 최근 학생들이 바지·치마 등 5가지 교복 중 원하는 복장을 고를 수 있게 했다. 남학생도 원한다면 치마를 입을 수 있도록 학교가 보장한다. 영국도 지난해 80여개 공립학교에 ‘젠더 중립적 교복규정’을 도입했다. 아예 교복에서 젠더를 지우겠다는 것이다. “학생의 선택권은 물론, 성소수자 학생과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고민하는 모든 학생을 위한 조처”다. 

목소희 서울시교육청 성인권정책전문관은 “지금 한국은 교육 현장의 젠더 이슈를 의제화할 사회적 기반을 만들어가는 단계”라고 말했다. “최근 여성 이슈가 떠오르면서 학생들의 권리의식도 높아졌다. 학교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학교운영에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더는 늦추면 안 된다는 것이 교육청의 방침”이다. 관련 통계·조사 등도 올해부터 실시해 정책 수립 기반을 만들 계획이다. “학생들은 ‘왜 우린 안 돼?’라고 묻기 시작했어요. 앞으로는 교복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어야겠지요. 교육 현장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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