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적 프로그램·단순일용직에 집중

운영비 현실화등 실효성있는 지원을

정부가 지원하고 여성단체가 위탁 운영하는 ‘일하는 여성의 집(이하 일여집)’에 전면적인 수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여성 전문 직업교육기관을 표방하는 일여집이 현실성 없는 국고보조금으로 인한 재정난, 획일적인 직업 프로그램, 간병인·파출부 등 단순 일용직에 집중된 취업경향 등의 문제점을 공통적으로 안고 있어 설립 목적과는 달리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일여집 총괄 업무가 여성부로 이관되는 이번 기회에 새틀을 짜 명실상부한 여성인력 개발기관이 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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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여집은 여성의 직업생활과 가정생활과의 양립을 지원하기 위해 노동부가 남녀고용평등법에 근거, 1993년 여성단체에 위탁 운영하는 방식으로 설립했다. 서울, 부산, 광주 등 3개소가 시범적으로 문을 연 이래 현재 전국에 46개소가 가동 중이고, 올해에도 경기도 시흥시, 안산시, 전남 여수시 등 7곳이 더 개소할 예정이다. 서울에도 각 구별로 16개소가 있다.

일여집은 설립시 정부로부터 받은 7억∼10억 규모의 시설비로 교육장을 임대한다. 여기에 운영비 일부를 지원 받는데, 작년의 경우 시설당 연간 8500만원, 올해는 9500만원씩 지급 받는다. 이는 전체 운영비의 30%에 해당하는 규모. 나머지 경비는 자체부담금과 수강비 등으로 충당한다. 현재 IMF 직후부터 각 일여집이 마련한 직업 프로그램에 추가로 여성가장훈련·실업자재취업훈련·고용촉진훈련 등 3개 프로그램이 실시되고 있는데, 훈련비와 교통비를 포함한 훈련보조수당 등은 전액 노동부가 부담한다. 이 업무는 여성부로 이관되지 않고 노동부가 계속 관할한다.

직원들 인건비 주기도 빠듯

일여집을 통해 직업훈련을 받은 여성은 2000년 현재 총 9만4233명. 취업률도 68.4%에 이른다. 수치상으로는 매우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취업 직종을 살펴보면 간병인, 텔레마케터, 간병인, 출장요리 등 단순일용직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일여집의 프로그램이 이같은 고유업종에 몰려 있고 획일적이라는 지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되었다. 그러나 일여집 운영자들은 이런 지적에 볼멘 소리를 낸다. “일여집 이용자가 대부분 40∼60대 여성인데, 그런 여성들이 웹디자인 같은 첨단기술을 소화하기도 어렵거니와 설사 배웠다 해도 써주는 곳도 없다”는 것이다. 또 현재 수준의 운영비로는 고급 강사는커녕 운영조차 어려운 실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정부가 일여집에 지원하는 운영비는 연간 8500만원이다. 이것을 12등분하면 700만원 정도밖에 안된다. 이것으로 500만∼600만원에 이르는 건물 관리비 제하고 나면 직원들 인건비도 빠듯하다. 정부는 자체부담금이나 훈련비로 충당하라지만 여성단체가 무슨 돈이 있나.” 전국 일하는여성의집 중앙협의회 한명희 회장(구로 일여집 관장)의 얘기다. 운영비 부족으로 인한 문제는 훈련 강사는 물론 일여집 인력의 질적 수준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 회장은 덧붙인다.

“왜 만들어놓고 방치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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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부지역 한 일여집 실무자는 “일여집 실무자 급여수준이 보통 한달에 80만원 선이고 관장 연봉도 1500만원을 조금 넘는다. 일여집 자체가 좋은 직장이 아니다. 그러니 이직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강사도 대개 시간당 1만5000원∼2만원인데, 이런 형편에 강사의 질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 토로한다.

운영비 부족으로 인한 문제는 직종 개발을 담당할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새로운 직종을 개발하기보다는 다른 일여집 프로그램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 전체 일여집의 프로그램이 비슷비슷해지는 결과를 가져올 뿐 아니라 값싼 강사를 써 강의의 질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한다는 얘기다. 결국 비싼 임대료를 물고 운영되는 일여집이 단순 일용직을 배출하는 기관 이상의 역할을 못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서울시가 운영하는 여성발전센터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여성회관 등 유사기관은 재정이 안정적이어서 무료 직업훈련과정이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여집은 경쟁력이 떨어진다. 가령 서울시 서부여성발전센터는 100억에 이르는 건축비가 전액 국고로 투자됐고, 연간 10억 이상의 운영비도 전액 서울시 예산으로 지원받고 있다. 전국에 분포한 90여개 여성회관도 지자체로부터 10억∼15억원을 지원받아 운영되고 있다. 여기서 운영되는 프로그램은 거의 무료다. 더욱이 지역마다 취업훈련을 원하는 수요는 한정돼 있어 일여집이 이들 유사기관과 경쟁하려면 불가피하게 출혈을 무릅쓰고 수강료를 낮출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임대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일여집의 경우 제한된 지원금에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려달라고 요구하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형편이 이러하니 컴퓨터 등 시설에 대한 투자는 기대하기 어렵다. 새롭게 부상하는 IT 관련업종을 시도하고 싶어도 장비가 안따라 준다. 예산이 없어 홍보도 직원들이 거리에 나가 전단을 뿌린다. 이 때문에 일여집은 이구동성으로 정부가 운영비의 50%는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삿짐 싸기 바빠 시설투자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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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이후 일여집이 갑자기 늘었다. 그 전에는 한 해 서너 개가 새로 문을 여는 정도였는데 작년 한 해만도 10여 개가 생겨났다. 왜 만들어놓고 방치하는지 모르겠다. 이대로 두면 틀림없이 얼마 안가 문닫는 곳도 생길 것이다.”

한편 작년부터 노동부는 일여집 기관평가를 통해 운영비를 차등 지원했다. 평가방식은 훈련공간, 유·무료 훈련과정 직종 수와 참가자 수, 훈련 후 취업률, 놀이방 등 19개 평가지표를 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방식에 문제가 많다고 실무자들은 입을 모은다. 기관별 보고에 의존한 평가인데다 과정에 대한 평가가 없고 지역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 평가시스템을 분석한 어수봉 교수(한국기술교육대학교)는 각 지표별로 평균 또는 중간 점수의 차이가 커서 사실상 유료 훈련참가자와 놀이방 등에 가중치가 높고 운영실적이나 순수취업자, 자체부담금 등은 상대적으로 비율이 낮아 특정 평가지표가 종합 점수를 좌우하게 되는 위험이 크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런 평가에 의해 운영비가 차등 지원되는 까닭에 일여집들은 행여 불이익을 당할까 취업 정보 등을 공유하지 않는다. 같은 직종끼리 조합 형태로 모으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경우에도 평가 때문에 기피한다.

일여집 운영주체들은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시설의 안정성 확보라고 이야기한다. 현재처럼 임대 형식을 취할 경우 정착이 어렵고 전세금 인상을 요구할 경우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강북의 한 일여집 관장은 “직업훈련기관이 계약기간이 끝날 때마다 이사다닌다면 누가 신뢰하겠는가. 또 시설투자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하고 반문한다.

일여집 사업체계 및 운영 개선방안을 연구한 한국기술교육대학 연구팀은 일여집이 지역 여성의 직업능력개발을 위한 센터로 전환하는 방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특화되고 비교우위가 있는 일부 교육훈련프로그램을 계속적으로 담당하되 다른 기관이 경쟁력이 앞선 프로그램에 대해선 안내, 상담, 지도의 역할을 하라는 얘기다.

20여년 간 여성직업훈련기관을 운영해온 변도윤 봉천사회복지관장(전 노원 일여집 관장)은 현재와 같은 불합리한 평가에 의한 차등지원이 아니라 우리 나라 일여집이 설립 당시 모델로 삼은 일본의 경우를 참고하여 사업계획을 세밀히 검토한 후 프로젝트별로 운영비를 지원하는 방식을 제안하며 “일여집을 국가경쟁력을 제고할 인적자원 확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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