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교파티’ 소모임 명칭 문제로 비난받고

학내 여성혐오 폭로 자보는 ‘테러’ 당하고

페미니즘 단체라는 이유로 강연 허가 취소에

‘여성주의’ 명칭 부적절하다며 단체 인준 거부까지

대학생 10명 중 4명 “페미니즘 활동이 대학 생활에 부정적 영향 끼쳐”

 

‘페미니즘 리부트’의 시대다. 그 정점에 대학가가 있다. 학내 성폭력·성차별을 고발하고 이를 지지하는 목소리들이 매일같이 터져 나온다. 반성폭력 운동만이 아니다. 대학 내 소모임·학회, 여학생협의회, 총여학생회 등 단체들은 새학기를 맞아 다양한 성평등 캠페인에 나섰다. ‘낙태죄 폐지’부터 ‘여성혐오 없는 강의실 만들기’ ‘외모 지적하지 않기’ 운동까지, 지금 대학에선 다채로운 페미니즘 논의가 만개하고 있다. 

이를 아니꼬운 시선으로 지켜보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대부분 남성이며, 그들에게 페미니즘은 “그럴싸하게 포장한 여성우월주의”다.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엔 ‘안티 페미니즘’ 글이 넘쳐난다. “요즘 페미니스트들이 늘어서 학교 다닐 맛이 안 납니다.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들고, 뭐든 꼬투리를 잡아서 여성혐오로 몰아가고.... 자신들이야말로 남성혐오론자, 역차별론자들 아닌가요?”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의 집단 정신병” “왜 자꾸 성(性) 대결로 가죠? 분란 조장, 분탕질 없인 여성운동 못 하나요?” “페미니즘이 사라져야 한국이 삽니다!” 

단지 일부의 시각이 아니다. 대학생 10명 중 4명은 실제로 페미니즘에 ‘거부 반응’을 보였다. 여성신문이 지난 3월 1일~15일까지 서울 거주 4년제 대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40%가 “페미니즘 활동이 대학 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답했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39%),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11%) 등 학내 페미니즘 활동에 호의적인 이들도 많았지만,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라는 답변이 5%에 달했다. 

그 이유로는 페미니즘 활동이 “역차별을 조장”(68%)하거나, “여성들의 피해의식만을 강조”(18%)하거나, “내부 분란을 유발”(10%)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 “침소봉대” 등 의견도 나왔다.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편견은 만연한 성차별에 대한 무지와 반발심에서 비롯된다”고 페미니스트들은 입을 모았다. “많은 남학생들이 페미니스트를 적대시하죠. ‘헤테로 남성인 너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깨닫고 반성하라’는 페미니즘의 메시지에 대한 반감, 학내 여성혐오·성폭력 문제가 공론화되는 데 대한 두려움, 남성으로 살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여성혐오 때문에 비난받는 데 대한 당황스러움.... 이게 다 섞여 있다고 봐요.” 홍익대에서 페미니스트 소모임을 운영하는 김미리(26) 씨의 말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페미니즘에 낙인을 찍는 일이 일상이 됐다”고 고려대 재학생 김명진(25) 씨는 말했다. 페미니스트로 활동하거나,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남성혐오자’ ‘분탕종자’로 찍혀 학내에서 따돌림과 인신공격을 당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시작된 고려대 ‘난파 사태’도 그렇다. 고려대 지리교육과 여성주의 소모임 ‘난교파티(난파)’는 탄생하자마자 와해됐고, 난파 회원들은 ‘폭력 가해자’ ‘남성혐오자’로 낙인찍혔다. 발단은 한 졸업생의 소모임 명칭 변경 요구였다. “난교파티라는 이름은 과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게 이유였다. 난파는 “‘난교’는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사회적 편견에 대해 논의하고, 오늘날 남성중심 사회에서 성해방을 지향하기 위한” 작명이라고 반박했다. 페이스북에서 시작된 공개 논쟁은 점차 확산됐고, 학과장은 학내 양성평등센터에 난파를 가해 혐의로 신고했다. ‘해당 졸업생과 학과가 외부의 악의적인 공격에 노출되도록 방기’했다는 혐의였다. 

난파 회원들은 반발했다. “우리는 과내 구성원에 대한 어떠한 비방과 조롱도 하지 않았다. 학과는 피해 및 가해 사실에 대한 정확한 검토와 사건 규정 없이 난파를 가해자로 규정하고, 실체가 불분명한 피해에 대해 사과 및 해명을 요구했다.” 여전히 그들은 ‘가해자’다. 이번 학기엔 졸업 필수 요건 중 하나인 답사 수업 수강도 금지 당했다. ‘가해자와 피해자 간 분리 원칙’에 따른 조처다. “지금 회원들은 수업에 들어가는 것조차 큰 두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는 자살을 시도했다”고 난파 측은 밝혔다. 

 

고려대 지리교육과 여성주의 소모임 ‘난교파티(난파)’ 사태와 관련해, 난파를 지지하는 학생들은 지난 3월 8일과 9일 고려대 학내에 대자보를 붙였다.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고려대 지리교육과 여성주의 소모임 ‘난교파티(난파)’ 사태와 관련해, 난파를 지지하는 학생들은 지난 3월 8일과 9일 고려대 학내에 대자보를 붙였다.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지난 3월 9일,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페미니즘
 소모임 참페미가 학생회실에 부착한 페미니즘 자보가 훼손됐다.
지난 3월 9일,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페미니즘 소모임 '참페미'가 학생회실에 부착한 페미니즘 자보가 훼손됐다. ⓒ참페미 제공

지난 9일 중앙대에선 페미니스트들의 자보가 누군가에 의해 갈가리 찢어졌다. 정치국제학과 여성주의모임 ‘참페미’가 학생회실에 부착한 게시물로, 학생들이 겪은 여성혐오 발언을 모아 기록했다. 나흘 만에 해당 학과 학생으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몰래 게시물을 훼손하고, 먹다 남은 과자를 그 위로 흩뿌렸다. 참페미는 “이는 명백한 테러”로 간주했다. “지금 우리는 ‘여성혐오가 있다’고 말하는 목소리조차 혐오의 대상이 된 상황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서강대는 페미니스트 단체의 강연 허가를 취소해 논란이 됐다. 페미니스트 단체 ‘불꽃페미액션’은 한국여성재단의 지원으로 이달 초부터 서강대에서 ‘페미들의 성교육’을 진행하려 했다. 『이기적 섹스』의 저자인 은하선 씨가 성과 섹슈얼리티 등에 관해 강의할 계획이었다. 지난 10일 서강대 측은 갑작스레 강의실 사용을 불허 통보했다. 학교 측은 “학부형들이 ‘가톨릭이 건학이념인 학교에서 자유성관계, 피임 만능주의, 낙태합법화를 조장하는 단체의 교육장을 마련해서는 안 된다’고 항의했으며, 학교 본부도 이에 많은 부분 동의한다”고 밝혔다. 불꽃페미액션과 서강대 내 페미니스트들은 “대학이 건학이념을 핑계로 성차별주의와 가부장제에 공모”한다며 항의하고 있다.

‘여성주의’라는 명칭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학생 자치기구가 공식 인준에 실패하기도 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여성주의위원회’는 과 내 여성주의 담론 활성화와 성평등한 학과 공동체 조성을 위해 만들어진 특별위원회다. 수개월 간 준비 과정을 거쳐, 공식 단체로 인정받고자 지난 3일 과 학생총회에서 투표를 치렀다. 결과는 부결이었다. 해당 학과에선 ‘여성주의’는 “성평등의 개념을 포함하지 못하는 편향된 사상”이며, “거부감과 오해의 소지를 줄 가능성이 있”으니 명칭을 변경하라는 요구가 높았다고 한다. 

 

‘평등한 대학을 위한 펭귄프로젝트’는 지난 3월 13일 #여성의_목소리는_찢어도_사라지지_않습니다 :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여성주의모임 참페미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며 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평등한 대학을 위한 펭귄프로젝트’는 지난 3월 13일 '#여성의_목소리는_찢어도_사라지지_않습니다 :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여성주의모임 참페미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며' 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펭귄프로젝트

“‘여성주의’라는 이름이 종종 불러일으키는 오해와는 달리, 여성주의는 여성의 권익만을 위한 학문이 아닙니다.”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는 21일 이 사안 관련 입장문에서 강조했다. “‘여성’ 젠더로 인한 구조적 악습을 깨려는 것은 궁극적으로 모든 젠더에 대한 차별 타파로 이어집니다. 억압받는 여학생의 권위를 신장시켜 사회 전반을 향한 변화를 도모해 성평등을 이루는 것이 총여학생회, 그리고 ’여성주의‘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노골적인 협박과 압박 시도가 늘어날수록, 페미니스트들은 드넓은 연대로 힘을 모으고 있다. ‘평등한 대학을 위한 펭귄프로젝트’와 11개 대학 내 페미니즘·인문사회 관련 단체는 지난 13일 중앙대 ‘참페미’ 자보 테러 사건에 부쳐 이런 글을 발표했다. “우리는 우리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사람들의 시도가 많아질수록, 누가 이 공동체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지, 누가 이 공동체의 ‘상식’을 결정하고 있는지를 더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우리의 말들이 이러한 잘못된 ‘상식’과 편중된 언어를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존재하지 않는 목소리로 치부되었던 사람들의 목소리로서 굳건한 불평등의 연대를 깨려 했던 시도들에 우리는 언제나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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