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스토리] ‘유리천장’ 뚫으려면 튀어라 그리고 뭉쳐라
[W스토리] ‘유리천장’ 뚫으려면 튀어라 그리고 뭉쳐라
  • 이하나 기자
  • 승인 2017.03.20 19:49
  • 수정 2017-03-27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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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스토리-송정희 한양대 소프트웨어융합대학 특훈교수

엔지니어·교수·공직자·대기업 임원 등

산·학·연 두루 거친 IT 업계 롤모델

삼성서 여성유니폼 거부한 일화 유명

‘송정희가 얼마나 버티나’ 내기도

남성 중심 조직서 살아남으려면

남 돕는 오지랍과 블러핑 필요

 

송정희 한양대 소프트웨어융합대학 특훈교수는 유리천장을 뚫기 위한 비법 가운데 하나로 “여성성을 잃지 말고 ‘자매애(시스터십)’로 뭉치라”고 조언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송정희 한양대 소프트웨어융합대학 특훈교수는 유리천장을 뚫기 위한 비법 가운데 하나로 “여성성을 잃지 말고 ‘자매애(시스터십)’로 뭉치라”고 조언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왜 여자만 유니폼을 입어야 하죠?”

1989년 삼성의 미래 전략을 연구하는 삼성종합기술원에 선임연구원으로 첫 발을 내딘 여성 공학박사 송정희의 손엔 유니폼이 쥐어졌다. 남성 박사들은 작업복을 입었지만 팀장급인 여성 박사는 고졸 여직원과 같은 스커트 유니폼을 입어야 했다. 당시 그를 두고 ‘얼마나 버티나 보자’며 내기를 하는 남성 직원들도 있었다. 시기 섞인 조롱에도 아랑곳없이 그는 2년 뒤 삼성전자 전략기획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본격적인 유니폼 투쟁을 시작했다. 전략기획실 남자 직원들은 모두 정장 차림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유니폼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업무 능력을 검증받은 직원의 타당한 요구에 회사도 결국 두 손을 들었고, 그는 다음 날부터 다른 직원과 마찬가지로 정장을 입고 출근할 수 있었다.

 

송정희 한양대 소프트웨어융합대학 특훈교수가 당시 삼성전자에서 이뤄낸 유니폼 투쟁은 남성중심적인 조직에서 여성이 홀로 이뤄낸 작은 성과다. ‘튀어서 좋을 것 없다’는 분위기 속에서 그가 부합리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건 “불공평하다”는 어찌보면 당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저는 단 한 번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일을 하는 게 좋았어요.” 그의 말 속에서 이름 앞에 ‘최초’ ‘홍일점’이라는 수식어를 달 수 있었던 까닭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송 교수는 정보기술(IT) 분야에서 대표적인 롤모델로 꼽힌다. 그도 그럴 것이 전자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으로 다양한 조직과 직업을 거치며 실력으로 최고위직까지 오른 이력 때문이다.

경기여고와 서울대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는 당시 서울대 전자공학과의 유일한 여학생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문과였던 그는 처음엔 미술대학을 지망했다. 하지만 재수를 선택하면서 이과로 전과한 케이스다. “전자공학을 전공하면 나중에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한 선택이었다. 당시 공과대학 신입생 가운데 여학생은 건축과 1명을 포함해 단 두명이었다. 공학관 건물엔 여자 화장실조차 없어 기존 남자화장실 문 앞에 ‘여자화장실’이라고 써붙이고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송 교수는 공부가 좋았단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석박사를 마친 그는 서울대 최초의 여성 공학박사로 알려져 있다. 박사학위를 받으면 교수가 되는 게 당연한 절차처럼 여겨졌지만 그는 학교 대신 기업을 직장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공학기술을 응용해서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기여한 제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요. 그런데 막상 기업에 가보니 근무 환경이 생각보다 더 열악했어요. 여자 박사를 위하 인사직도 없었고, 월급에서도 남녀차이가 있었고요. 그런 차별을 뛰어 넘기 위해 모든 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하게 됐죠. 회사 내에서도 다양한 업무를 경험한 덕분에 다른 기관에서도 적응하는 게 비교적 쉬웠던 것 같아요.”

한국에 돌아온 그는 삼성종합기술원 전자기기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입사해 10년을 일했다.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부장이던 1999년 그는 사표를 제출했다. 그 이후에도 송 교수는 서강대 조교수로, 벤처기업 창업자로, 정부 부처의 정책자문관으로, KT 부사장으로 수차례 일터를 옮기고 직업을 바꿨다. 익숙하고 안정적인 조직을 뛰쳐나오는 것은 무모한 모험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안락한 온실을 벗어나 정글 같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두렵진 않았을까.

“저도 회사를 나온 직후엔 쉽지 않았죠. 완전히 환경이 바뀌다보니 적응하는 데 시간도 걸리고요. 하지만 나오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진 않았어요. ‘더 나은 것이 있다, 찾을 수 있다,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제가 다양한 경험을 하고 경력을 쌓는데 밑거름이 됐죠.”

 

송정희 한양대 소프트웨어융합대학 특훈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송정희 한양대 소프트웨어융합대학 특훈교수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송 교수는 이날 나일론천으로 만든 검정색 가방을 어깨에 매고 나타났다. 다른 이의 시선을 신경쓰기보다는 현재 가장 적합하고 실용적인 선택을 중시하는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안정적인 조직의 문을 제 발로 나가는 일도 주변의 시선보다는 자신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기에 낼 수 있었던 용기처럼 여겨졌다. 그는 다양한 조직에서의 경험 덕에 다양한 입장에서 생각하고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도 얻었다고 했다. 특히 그는 후배 여성들에겐 더 없이 좋은 선배이자 ‘큰언니’ 같은 존재다. 일과 육아를 병행한 워킹맘 선배이자 ‘유리천장’을 먼저 뚫은 여성 리더로서 늘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저는 결혼을 늦게 해 후배 여성들이 겪는 경력단절의 위험이나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 같은 문제를 덜 겪은 편이에요. 그래도 곁에서 후배들을 지켜봤고,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장을 지내면서 여성공학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아요. 한국의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은 출산과 육아를 하는 30~34세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보이는 ‘M자’ 곡선을 그려요. 그런데 여성공학인들은 출산과 육아로 일을 그만두면 다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L자’ 형태를 보여요. 기술이 워낙 빨리 바뀌기 때문에 한 번 일을 놓으면 따라잡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필요한 게 잡시프트(일의 이동)이에요. 경력단절되지 않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잖아요. 그럴 땐 기존에 자신의 분야를 고집하기 보다는 새로운 수요가 있는 분야에 도전하는 거죠. 복귀를 준비하면서 여성들은 관련 분야 교육 훈련을 받는 것이 낫죠.”

여성의 경력단절과 함께 견고한 유리천장은 여성 직장인이 겪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다. 올해 30대 그룹 임원 승진인사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2.4%에 불과하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의 집계 결과다. 세계로 나가면 우리가 처한 현실은 더욱 도드라진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가 8일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를 보면, 한국은 29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다. 100점 만점에 고작 25점에 불과하다. 직장 내 여성 차별이 세계에서 가장 심하다는 얘기다.

송 교수는 남성중심적 조직에서 유리천장을 뚫기 위한 비법으로 5가지를 조언했다.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오히려 튀어라” “여성성을 잃지 말고 ‘자매애(시스터십)’로 뭉쳐라” “팀원의 일엔 가끔 오지랍을 부려 도와라” “늘 겸손하기보단 ‘블러핑(속임수)’도 사용해라”.

“과거엔 여자는 남자보다 더 악착같이 해야 유리천장을 뚫을 수 있었어요. ‘여자는 감정적이다’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포커페이스를 유지했고요. 남자보다 열심히 일하고 남자처럼 행동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요즘은 그럴 필요 없어요. 오히려 남들보다 튀는 것이 나아요. 그러면서도 여자 동료들끼리 시스터십으로 뭉쳐야 해요. 여자의 힘은 여자에요. 가끔은 남을 돕는 오지랍도 발동하면 팀워크에 도움이 되고요. 여자들은 특히 ‘블러핑’(포커에서 약한패를 들고 강한 패를 들고 있는 것처럼 상대방을 속이는 행위)이 약해요. 회사를 나가면 갈 데가 없다는 인식보단 ‘내게는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뉘앙스를 풍길 줄도 알아야죠. 그래야 회사도 긴장하니까요.”

 

송정희 한양대 소프트웨어융합대학 특훈교수

1958년생. 경기여고를 나와 1981년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학교 전기컴퓨터공학과 석사를,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전기컴퓨터공학 박사를 마쳤다. 1989년 삼성종합기술원 선임연구원으로 입사하고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부장을 지내고 10년 만에 사표를 냈다. 이후 서강대학교 미디어공학과 조교수, 텔리젠 대표이사, 옛 정보통신부 IT정책자문관, 서울시 정보화기획단 단장으로 일했다. 2011년부터 2년간 KT 부사장으로 플랫폼&이노베이션(P&I)부문을 이끌었고 한국클라우드산업협회장, 한국여성공학기술인협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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