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부성권 확대와 돌봄의 사회화 절실

의사결정기구 여성 참여는 민주주의의 척도

“양성평등한 노조 지도부 구성에 힘 쏟겠다”

 

김주영 신임 한국노총 위원장은 “올해 처음으로 한국노총 지도부에 여성 상임부위원장제를 만들었다”며 “여성 관련 사업에 예산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주영 신임 한국노총 위원장은 “올해 처음으로 한국노총 지도부에 여성 상임부위원장제를 만들었다”며 “여성 관련 사업에 예산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임기 중 여성위원회를 활성화시켜 남성중심 노동운동문화를 바꿀 것입니다. 올해 처음으로 한국노총 지도부에 여성 상임부위원장(최미영 순천향대 천안병원 노조 위원장)제를 만들었어요. 여성 관련 사업에 예산도 적극 지원하고요.”

3·8세계여성의날 109주년을 맞은 지난 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동조합총연맹에서 만난 김주영(56) 위원장은 양성평등한 노조 운영을 다짐하며 이같이 말했다. 전력노동자인 김 위원장은 1987년 전력노조 경북지부 기획부장을 맡으면서 노조 활동을 시작해 30년간 노동운동에 투신해왔다. 전국전력노동조합 4선,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3선 위원장 출신으로 지난 1월 한국노총 정기선거인대회에서 60.2%의 지지율로 한국노총 위원장에 당선됐다.

성별임금격차 해소에 노조 역할 중요

샤란 버로 국제노동조합총연맹 사무총장은 “의사결정기구의 여성 참여는 곧 민주주의의 척도”라며 “조합원을 충분히 대표하려면 여성이 단체 교섭이나 회의 기구 등 실질적인 노조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도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임기 3년 동안 노조 지도부를 양성평등하게 구성해 더 많은 여성들이 조합원, 활동가, 지도자로 노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는 것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여성노동계가 3․8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3시 스톱’ 시위를 벌였다. 남성 임금이 100일 때 여성은 64에 불과하니 오후 3시에 조기퇴근해야 남자와 임금이 같아진다는 의미인데.

“성별임금격차는 주로 여성들이 일하는 대형마트 같은 사업장에서 많이 일어난다.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은 비정규직 채용이 많아 임금 격차가 갈수록 벌어진다. 육아로 생긴 경력단절이 주요 요인 중 하나다. 국가가 법제도를 만들어 노동의 가치를 동일하게 평가하고 동일하게 대우해야 한다. 특히 노조의 역할이 중요하다.”

-여성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데.

“남성 정규직의 임금이 100일 때 여성 비정규직 임금은 36이다. 그런데 여성노동자의 40%가 비정규직이다. 남성 임금근로자의 비정규직(25.5%)보다 훨씬 높다. 상당수가 비정규직이라 조직화도 힘들고, 대표성도 낮다.”

김 위원장은 “신자유주의 공세로 비정규직 고용이 기업 트렌드가 됐다”며 혀를 찼다. 싼 인건비는 더욱 싸게, 해고도 더 쉬워졌다. 사람을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풍토가 생겼다는 것이다. “사용사유제한을 명확히 해서 불가피한 경우를 빼곤 정규직 일자리로 바뀔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선 노조가 사내에서 차별받는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업별 노조 체계에선 쉽지 않다. 비정규직 여성을 노조에 가입시켜 보호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전력노조 위원장 시절 한전에서 계약직 여성들을 정규직화한 경험을 들려줬다. 2010년 한전에 1년 단위로 계약직이던 여성 850명을 노조에 가입시켰고 이후 7급 체계이던 한전에 8급을 만들고 정규직의 67%에 불과했던 기본급 임금도 95%까지 올렸다. 정산 보조 등 보조 업무를 하다 지금은 각자 고유 업무가 있다. 김 위원장은 “호칭을 만들고 승진할 수 있도록 사다리도 놔줬다. 10년 걸려서 완성이 됐다”며 “계약직 여성 동지들을 정규직으로 만드는데 노조를 이용한 셈”이라며 웃었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신자유주의 공세로 비정규직 고용이 기업 트렌드가 됐다”며 “사용사유제한을 명확히 해서 불가피한 경우를 빼곤 정규직 일자리로 바뀔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정규직 여성을 노조에 가입시켜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신자유주의 공세로 비정규직 고용이 기업 트렌드가 됐다”며 “사용사유제한을 명확히 해서 불가피한 경우를 빼곤 정규직 일자리로 바뀔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정규직 여성을 노조에 가입시켜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당 대선 후보에 성평등·모성보호 정책 요구

그는 2010년 3월 세계여성의날을 기념해 열린 한국노총 여성노동자대회에서 남녀고용평등에 공헌한 활동가에게 주어지는 평등상을 수상했다. 비정규직 직군인 한전 콜센터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노조 조합원으로 조직화했을 뿐 아니라 한전 노조에 여성위원회를 만들고, 직장어린이집 설치 등 일·생활 균형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는 “아웃소싱된 콜센터 노조가 와해된 후 제가 노조를 만들었다. 2년에 한 차례씩 최저가 낙찰을 받다보니 목이 왔다 갔다 하고 임금도 떨어진 상태더라”며 “원청인 한전과 교섭해서 인건비가 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매년 임금이 정부 가이드라인만큼은 올라갈 수 있도록 틀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19대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 후보들에게 ‘남녀임금격차 해소·성차별 철폐’ ‘여성고용 확대·여성일자리 질 개선’ ‘모성보호 강화·남성의 육아참여권 보장 강화’를 담은 성평등·모성보호 정책을 요구한 바 있다.

-재임 중 이루고픈 여성 관련 과제가 있다면.

“여성위원회 활성화에 힘을 쏟겠다. 사실 여성들이 노조 지도자로 전면에 나서는 건 많이 꺼려하는 것 같다. 노조위원장을 맡으면 가정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처음부터 포기하더라. 하지만 노조 지도자로 진출해 여성의 권리를 찾아나가야 한다. 오늘(3월 8일) 금융노조에 여성위원회가 생겼다. 앞으로 여성들이 노조에 대거 참여해 보조자 입장이 아니라 주요 위치에 올라설 수 있도록 방향을 잡고 설계할 것이다. 여성의 리더십 역량을 인정하고 중요시하는 것은 노동운동을 강화할 수 있는 투자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19대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 후보들에게 ‘남녀임금격차 해소·성차별 철폐’ ‘여성고용 확대·여성일자리 질 개선’ ‘모성보호 강화·남성의 육아참여권 보장 강화’를 담은 성평등 정책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뒤편에 ‘100만 조합원 총투표 정권교체! 사회개혁!’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19대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 후보들에게 ‘남녀임금격차 해소·성차별 철폐’ ‘여성고용 확대·여성일자리 질 개선’ ‘모성보호 강화·남성의 육아참여권 보장 강화’를 담은 성평등 정책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뒤편에 ‘100만 조합원 총투표 정권교체! 사회개혁!’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노조 내 여성 할당을 어떻게 시행 중인가.

“2018년까지 여성조직 5% 확대, 의사결정기구 30% 이상 여성할당이 목표인 국제노총의 ‘COUNT US IN’ 캠페인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다. 여성이 전체 조직에서 30%가 안 된다. 자동차는 여성 조합원이 거의 없다. 항운, 해상도 마찬가지다. 노조 지도자가 늘지 못하니 한계가 있더라. 우선 선거인단과 대의원 여성 30% 할당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

-많은 여성들이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후 6시 퇴근이 아니라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셈이라고 말한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가면 여성에겐 또 다시 새로운 일이 시작된다. 워킹맘이 가장 고생하는 문제가 육아다. 여성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그게 미흡하다면 기업이 책임감을 갖고 해결해야 한다. 일·가정 양립이 안된 상태에서 여성노동자는 ‘일도 하고 가정도 돌봐라’는 이중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여성·노동·보육정책을 완전히 뜯어 고치지 않고서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도,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도,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도 없다. 여성문제가 아니라 남성의 부성권 확대와 돌봄의 사회화로 접근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맞벌이를 한 우리 부부 역시 장모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장모님이 결혼 후 집에서 같이 살면서 네 살 터울의 아들 둘을 키워줬다. 노조일에 바빠 나 역시 성장기에 애들을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다”며 개인적 경험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일‧가정 양립 문제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바꿔야 해법도 생긴다”며 “여성만을 대상으로 정책을 설계해서는 여성이 겪고 있는 차별과 격차를 줄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