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사저 복귀 메시지는

파면 불복, 국민 향한 도전

 

“법의 도리는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롭다”

 

박 전 대통령, 이정미 퇴임 연설

음미하고 지금이라도 사죄해야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로 들어서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박근혜 전 대통령이 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저로 들어서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전원 일치로 파면당했다. 많은 국민은 그가 청와대를 떠나면서 헌재 결정에 승복하고 국민에게 사죄하며, 국민 통합을 호소할 줄 알았다.

그러나 기대는 허무하게 무너졌다. 박 전 대통령은 헌재의 파면 결정 이후 별도의 입장 표명 없이 깊은 침묵을 지켜오다 사저로 돌아가 짧은 메시지를 발표했다.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메시지는 사실상 헌재 판결에 대한 불복 선언이다. 동시에 국민에 대한 도전이다. 박 전 대통령은 “사익을 추구한 적이 없다”면서 헌재 판결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헌재의 탄핵 인용의 핵심 이유는 박 전 대통령이 사익을 추구해서가 아니다. 비선실세 최순실이 사익을 추구하는 데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런 권한 남용을 재임 기간 지속적으로 감행했고, 헌법을 수호할 의지가 없기 때문에 파면한 것이다.

헌재의 전원일치 판결은 박 전 대통령의 헌법 위배 행위가 명명백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대목에서 별안간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글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정을 잘못 운영해서 파면당한 대통령이 억울하다고 우기면서 불복 투쟁하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여전히 공주적 사고에 갇혀 파면당하고도 반성하지 않고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밝은 미소까지 짓는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이 우리를 또한 슬프게 한다.

박 전 대통령이 불복 선언을 통해 친박 표심을 비롯한 보수층을 결집해 대선전에 개입하겠다는 의도, 탄핵정국 이후 폐족으로 전락했던 친박계가 정무, 법률, 공보, 수행 등으로 분야를 나눠 박 전 대통령을 지원하기 위해 조직을 만들겠다는 것, 석고대죄를 해도 시원찮을 강성 친박 인사가 대선에 출마한 것, 자유한국당이 도로친박당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 이 모든 것은 우리를 더없이 슬프게 한다.

한국당은 이미 대통령을 파면한 헌재 판결에 승복하겠다는 것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이런 맥락에서 인명진 비대위원장이 “국민 화합을 저해하는 언행을 하면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친박계 핵심 인사들을 겨냥한 경고성 발언을 한 것은 당연하다.

박 전 대통령에게 묻는다. 당신이 끝까지 밝히려는 진실은 무엇인가? 최순실이 잘못한 것이지,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나는 돈 한 푼 챙기지 않았고 평생을 조국을 위해 살아왔다는 것을 밝히고 싶은 것인가. 그렇다면 왜 당신이 수족처럼 부렸던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과 정호성 전 비서관이 특검과 법정에서 모든 국정농단 사건을 대통령이 지시했다고 일관되게 증언했는가.

고 노무현 대통령은 헌재가 수도이전에 대해 관습헌법 논리를 들이대며 위헌 결정을 내리자 2004년 10월 26일 국무회의에서 “국회의 헌법상 권능이 손상됐고 정치지도자와 정치권 전체가 신뢰에 타격을 받았다. 앞으로 국회의 입법권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무력화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헌정 질서의 혼란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전 대통령은 10월 27일 국회 연설에서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헌법에 대해 도발하고 체제를 부정한다면 나라는 근본부터 흔들리고 말 것”이라고 비난했다. 상황이 바뀌었다고 박 전 대통령이 일구이언하는 것이 국민이 실망을 넘어 분노로 치닫게 하는 요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두 명의 여성을 만난다. 헌법과 국민에게 불복한 박근혜와 오직 헌법과 법리에 따라 차분하게 탄핵 심판을 이끌었던 이정미다. 역사가 이 두 여성을 어떻게 평가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 전 헌재 재판관은 퇴임하면서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롭다”는 명언을 남겼다.

참으로 울림이 있는 말이다. 역사적 심판은 끝났다. 박 전 대통령도 더 이상 추한 모습을 보이지 말고 이 말의 뜻을 깊이 음미해보길 바란다. 박 전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사죄하고 승복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도 분노와 슬픔을 접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탄핵은 짧고 미래는 길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