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가수로 컴백하는 아이유

‘챗-셔’ 둘러싼 논란 복기해보니

 

한국형 롤리타로 부상한 아이유

재능보다 우연에 의한 성공?

아이돌과 여성 섹슈얼리티

대중은 왜 쌤통심리에 빠졌나

 

소녀들의 젊음, 건강함, 화려함은 자유가 아니라 의무다. 사진은 가수 아이유. ⓒ뉴시스·여성신문
소녀들의 젊음, 건강함, 화려함은 자유가 아니라 의무다. 사진은 가수 아이유. ⓒ뉴시스·여성신문

올해 4월 아이유가 가수로 컴백한다. 2015년 10월 미니앨범 ‘CHAT-SHIRE(챗-셔)’를 둘러싼 논란 이후 1년 7개월여 만이다.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어떤 사건 사고도 하루가 지나면 ‘과거사’가 되어버리는 한국 사회에서, 특히 논란의 빠른 유통이 업계 유지의 생명인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벌어진 2015년 10월의 일은 거의 역사 이전의 일처럼 느껴진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논란이 그렇듯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 남아 있다.

예컨대 올해 2월에 열린 “‘반동의 시대’와 ‘성전쟁’”이라는 학술대회와 뒤이은 페이스북 논쟁은 한국 걸 아이돌의 롤리타 이미지 전략을 아동의 성 주체화 가능성으로 읽자는 제안과 ‘페도필리아’(소아성애증)를 부추길 뿐이라는 논박에 집중됐는데, 이런 식의 대립적 논의만이 아이유 ‘CHAT-SHIRE(챗-셔)’ 논란을 읽는 유일한 여성주의적 방식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학자 김은실은 2005년 ‘지구화 시대 한국 사회 성문화와 성 연구 방법’이라는 대담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고유하게 존재하는 영역처럼 보이지만, 다른 영역들과 매개돼 있는 복잡한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디어상의 소녀들과 그녀들의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논란을 제대로 돌파하려면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 2015년 당시 ‘CHAT-SHIRE(챗-셔)’를 둘러싼 논란을 굳이 복기하려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소녀들의 시대, 여성혐오의 시대

2015년과 2016년, 우리는 새롭게 강화된 ‘소녀들의 시대’를 맞았다. 물론 대중문화의 정경을 가득 채우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의 등장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었다. 지금은 90년대 복고 문화 콘텐츠에 종종 등장하는 S.E.S와 핑클이 20여 년 전 데뷔한 이래, 걸 아이돌은 한국 미디어 정경의 가장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2007년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의 등장은 이를 한층 확장했다.

그러던 흐름이 2015년과 2016년에 걸쳐 미디어상 소녀들을 둘러싼 논란으로 재등장했다. 아이유 미니앨범 ‘CHAT-SHIRE(챗-셔)’를 둘러싼 논란, f(X) 전 멤버 설리의 연애와 자기 재현에 대한 왈가왈부, 트와이스 멤버 쯔위의 대만기 파동, AOA 멤버 설현과 지민의 안중근 관련 발언과 사과 그리고 걸그룹 결성 서바이벌 리얼리티쇼 ‘프로듀스 101’을 통한 I.O.I의 결성과 활동 그리고 해체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 사실 ‘소녀들의 시대’는 ‘소녀들의 수난시대’이기도 하다. 소녀들은 도처에서 젊고, 건강하고, 유명세를 즐기는 화려한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그 모습은 해방의 결과가 아니라 규범에 의한 것이다. 다시 말해 그녀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젊음, 건강함, 화려함은 자유가 아니라 의무다.

이와 관련해 ‘소녀들의 시대’가 ‘미소지니(여성혐오) 시대’와 겹친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2005년 ‘개똥녀’, 2006년 ‘된장녀’라는 호명이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서 통용되기 시작할 무렵,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의 화려한 데뷔가 잇따랐고, 2010년 ‘김치녀’라는 호명과 2011년 극우 혐오사이트 ‘일베’가 수면 위로 떠오를 즈음 missA와 A-pink를 비롯해 20여 개가 넘는 걸그룹이 등장했다.

‘국민 여동생’ 아이유가 등장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2010년 그녀는 만 18세의 나이로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이라는 가사로 유명한 ‘좋은날’을 성공시키면서 화려하게 데뷔한다. 당시 이 노래를 둘러싼 표면적인 관심은 가사와 이 부분을 세 단계에 걸쳐 높은 고음으로 처리할 수 있는 가창력에 집중됐지만 더 큰 화제를 낳은 것은 뮤직비디오였다.

이 뮤직비디오에서 아이유는 어려보이는 얼굴과 몸매로 성적 이미지를 소화하면서 한국형 롤리타로 부상한다. 2008년 ‘실력파 솔로 여가수’의 이미지로 데뷔한 첫 번째 앨범이 철저히 흥행에 실패한 후, 여타의 걸그룹이 채택한 ‘순결하면서도 과잉성애화된 소녀’라는 모순적인 이미지에 탁월한 보컬리스트로서의 실력을 중첩시켜 얻은 성과였다. 2011년 아이유는 2집 앨범 ‘Last Fantasy’를 내놓으며 ‘성적 (금기) 대상으로서의 소녀’ 이미지를 완전히 굳히게 된다.

 

앨범 ‘CHAT-SHIRE(챗-셔)’ 표지.
앨범 ‘CHAT-SHIRE(챗-셔)’ 표지.

‘CHAT-SHIRE(챗-셔)’를 둘러싼 말말말

그렇지만 아이유는 이 앨범 이후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녀는 내로라하는 작곡가와 프로듀서들과의 협업 그리고 싱어송라이터로 작사, 작곡, 연주를 소화해내는 것으로 음악에 대한 재능과 자의식을 증명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니 흥미롭게도 2집 앨범은 문자 그대로 ‘마지막 환상’을 제공한 셈이 됐다.

논란이 된 미니앨범 ‘CHAT-SHIRE(챗-셔)’는 아이유 자신이 프로듀싱하고 수록곡 7곡의 가사를 모두 썼다는 사실로 화제가 됐다가 2015년 11월 4일 수록곡 중 한 곡인 ‘Zeze’의 모티브가 된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출판한 동녘출판사에서 공식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노래 가사와 앨범 재킷 이미지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면서 본격적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이 사태를 둘러싼 말들을 입장별로 분류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 우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옹호 차원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다. 한국 사회에 부족한 다양성에의 관용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발휘되지 않았음을 개탄하는 이 입장에서는 ‘CHAT-SHIRE(챗-셔)’ 논란을 국정교과서 사태와 결부시켜 이해하는 시각이 종종 발견됐다.

둘째, ‘Zeze’는 페도필리아 코드로 표현된 노래이며, 이는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동녘출판사가 트위터에서 “학대로 인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다섯 살 제제를 성적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부분”이라고 표현한 문구는 곧, 다음 아고라에서 벌어진 “아이유 ‘제제’ 음원 폐기를 요청합니다” 청원운동에서 ‘페도필리아’라는 용어로 번역됐다.

셋째, ‘표현의 자유’에 대한 옹호와 더불어 이 노래를 아이유 자신의 롤리타 이미지와 겹쳐 읽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러한 시각은 그간 아이유의 행보와 그녀 자신이 프로듀싱한 앨범 ‘CHAT-SHIRE(챗-셔)’ 그리고 직접 작사한 곡이라는 맥락에서 이 노래를 ‘소녀의 성적 성장’ 서사로 해석한다.

그렇지만 미디어상의 소녀들을 둘러싼 섹슈얼리티는 그 자체로 고유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들의 성적 퍼포먼스와 이미지는 미디어 산업 내에서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생산된다. 따라서 이러한 시스템에서 이들이 대중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지가 이 사태 해석의 새롭고도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될 필요가 있다.

 

트와이스 ⓒJYP엔터테인먼트
트와이스 ⓒJYP엔터테인먼트

성적 가해자가 된 ‘로린이’?

오늘날 한국 대중문화를 지배하는 아이돌이 상품 그 자체라는 언명은 그리 새롭지 않다. 그렇지만 이 언명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분석과 토론이 필요하다. 마르크스가 노동자는 노동력 상품의 판매자라고 했을 때, 노동력은 노동자의 노동 능력에 한정된 것이었다. 그/녀는 계약에 의해 정해진 시간에 자신의 노동 능력을 양도해 상품을 생산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그러나 상품 자체가 된 아이돌에게는 노래하고 춤추는 가수의 노동 능력 뿐 아니라 일상, 이미지, 인간관계 나아가 인격성까지 팔 수 있는 요소로 통합할 것이 기대된다. 그들에게는 정해진 노동 시간도, 인격과 분리된 노동 능력의 양도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 이들의 제작 원리는 상품 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인 ‘차별성’(‘고유성’이 아니라)에 들어맞는다. 특정 아이돌의 특징은 고유한 어떤 것이라기보다 다른 아이돌에 대한 차별적인 참조로 분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에 따르면 누구나 아이돌이 될 수 있다. 가수의 고유한 재능이 없어도 다른 아이돌과의 차별적 이미지 획득을 통해 상품 가치 획득을 노려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아이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이돌의 성공은 ‘시장성에 따른 교환 가치의 실현’이다. 다시 말해, 누구나 아이돌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누구나 성공한 아이돌이 될 수는 없다.

동시에 이런 이유로 아이돌은 언제나 재능과 실력을 의심받는데, 그들의 성공이 본질적인 자질에서 기인한다고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사실은 아이돌이 대중문화를 장악하는 시기가 여성 섹슈얼리티의 상품화가 심화돼가는 시기와 정확하게 겹친다는 것이다. 김은실은 1998년 ‘대중문화와 성적 주체로서의 여성의 재현’이라는 논문에서 당시 화제작 ‘너에게 나를 보낸다’ 분석을 통해 결혼을 기준으로 한 성별화된 성적 이중규범의 힘이 약해져가는 것 자체가 여성 섹슈얼리티의 ‘해방’을 의미하지는 않음을 보여줬다. 이제 여성들이 자신들의 성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방식은 ‘자유롭게 자원화하라’는 새로운 규범적 명령 속에서 이뤄진다.

한국 사회에서 걸 아이돌은 이 두 가지 상황이 결합돼 작동하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들은 존재 자체로 유명세를 얻고, 돈도 버는, 말 그대로 우리 시대의 우상으로 자리한다. 아이유의 성공 또한 대중에게 아이돌 산업 내에서 ‘아이돌 아티스트’라는 차별화된 상품이자 ‘여동생 아이돌’이라는 여성 섹슈얼리티 상품으로 거둔 성공으로 간주된다. 그 어느 것도 본질적인 재능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우연에 의한 운으로 여겨지기에 좋은 조건을 갖춘 것이다. 이러한 토양에서 배양된 대중 감정은 결국 ‘순수한 소녀’의 이미지와 배치되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민감한 반응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페도필리아’라는 오명으로 이어졌다.

‘CHAT-SHIRE(챗-셔)’를 둘러싼 논란에서 평론가나 지식인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가장 큰 대중의 반응이 ‘그동안 롤리타 이미지로 돈을 벌고 유명해진 어린 여가수가 아동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면서까지 더 돈을 벌고 유명해지려고 한 무리수에서 벌인 사건’이었는데, 여기에서 아이돌과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해 뒤얽힌 쌤통심리를 읽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아래는 이를 잘 드러내는 다음 아고라의 음원 폐기 청원문 일부이다.

아이유님이 의도를 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삽화로 인해 노래 속 제제 또한 소설과 같은 5세 아동이 되었고, 어린 제제의 망사스타킹과 핀업걸 포즈는 명백한 소아성애(페도필리아) 코드입니다.··· 제제를 향해 아이유님이 교활, 더러운, 악마라고 하는 말은 제제의 아버지가 제제를 학대할 때 하던 말이고 실제로 페도필리아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잡혔을 때 아이를 향해 하는 말들이 영악하다, 더럽다, 나를 유혹했다 이런 말들입니다.··· 영향력 있는 대중가수가 의도치 않게 해서는 안 될 일을 해버렸는데 이렇게 반쪽짜리 해명을 하고 음원을 계속 파는 건 결국 아이유란 이름으로 페도필리아 코드를 상업적으로 계속 이용하는 겁니다.···

아이유 일부 팬들에게선 롤리타와 페도필리아를 구분못하고 너도나도 롤리타 하는데 아이유도 하는 게 뭐가 어때, 심지어는 영화 롤리타와 레옹을 들먹이며 남들은 예술이라고 하는 페도필리아 코드를 우리 아이유가 하니까 욕하는 거 아니냐 뭐 하면 어떻냐 하는 아찔한 반응까지 나옵니다. 롤리타와 레옹은 아동에 대한 성적 욕망을 분출하는 작품이 아닙니다.···(데칼코마니킴, 2015년 11월 6일, “아이유 ‘제제’ 음원 폐기를 요청합니다”

여기에서 롤리타와 제제는 ‘아동에 대한 성적 욕망의 분출 여부’라는 기준에 의해 분리된다. 그렇다면 이때 ‘아동’은 결국 ‘남아’만을 가리킨다. 결국 이는 “롤리타와 같은 성적 대상의 이미지로 유명세를 누리는 대중가수인 것은 괜찮지만, 남아를 성적 대상으로 재현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큰 문제는 이를 통해 ‘음원을 계속 파는’ 등 돈을 버는 것이다. 더 노골적인 댓글들에서 ‘돈에 눈이 멀었다’와 같은 표현이 반복되는 것은 ‘국민 여동생’이자 ‘아이돌 아티스트’인 아이유의 성공이 어떠한 속박 하에서 가능한 것인 지를 드러낸다.

물론 진지한 입장에서 개진된 의견도 없지 않다. 아래 인용문을 살펴보자.

소아성애적 표현을 접한 성인들이 소아성애자가 될까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표현이 만연한 사회는 이미 피해를 입은, 혹은 입을지도 모르는 소아들의 혼란과 자책을 가중시키기 때문에, 반면 소아성범죄자와 그 옹호자들의 입지에는 편향적으로 힘을 실어주기 때문에 하지 말라는 거다. 한국이 여성에게서 구하는 성적 흥분은 늘 여성의 미성숙함에 한 발을 걸쳐 두는 듯하다. 어린 아이들에게서 섹스어필을 탐닉하고 요구하면서 성인 여성에게는 아이 같은 순종을 요구한다. 여자 아이에서 성인 여성으로 살아온 나는, 나에게 가해지는 후자의 폭력에는 이제 성인으로서 저항할 수 있다. 그러나 전자의 폭력에 대해, 나는 여성으로서의 아픔과 성인으로서의 죄책을 항상 함께 느낀다.

여성인 이상 높은 확률로 전자의 폭력을 겪으며 자랐을 테고, 후자의 폭력에도 적극적으로 저항하기보다 타협하여 살아가는, 나와 동갑내기인 한 여성 가수가 대단한 악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자기 파괴적인 생존전략 역시 그것이 구조에 부역한다는 이유만으로 질타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녀가 후자의 폭력에 타협하는 방식으로서 전자의 ‘가해’에 편승하는 것에 나는 지극히 분노한다. 성인인 그녀가 자신보다 약한 아이들의 성을 판매하는 것이 피해자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나는 생각지 않는다.(한지은, 2015년 11월 9일, "우리의 발언은 기울어진 저울의 한 편에 필연적으로 무게를 실어주게 된다" http://ppss.kr/archives/60602)

여기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각종 아동성폭력과 학대 그리고 온라인상 ‘로린이(롤리타+어린이의 합성어)’ 이미지의 폭력에 10년 이상 노출돼 시달려온 여성 디지털 네이티브들이 걸 아이돌의 롤리타 이미지에 대해 갖는 복잡한 문제의식이다.

그런데 이는 디지털 논의가 흔히 그러하듯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빠르게 증폭되면서 쌤통심리 정서를 정당화하는 논리의 한 축이 됐다. 이렇게 해서 걸 아이돌이 자리하고 있는 문화산업 그리고 ‘순결하면서도 성애화된’ 소녀를 욕망하는 한국 대중문화의 남성중심성에 대한 문제의식은 사라진 채 ‘롤리타로 성공한 후 남아까지 성적 대상으로 삼아 더 큰 성공을 노리는’ ‘로리유’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아이오아이(I.O.I) ⓒ뉴시스·여성신문
아이오아이(I.O.I) ⓒ뉴시스·여성신문

미디어 산업, 걸 아이돌 육체의 궤적 그리고 대중욕망

이처럼 아이유의 ‘CHAT-SHIRE(챗-셔)’ 논란은 한국 걸 아이돌의 모순적인 위치를 드러낸다. 그녀들 중 일부는 유명세와 부(富)와는 다소간 거리가 있는 소녀와 아동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상품화해 그것들을 소유하게 되고, 이를 통해 문화산업 내에서 일정 정도 권력을 갖게 됐다. 아이유의 ‘CHAT-SHIRE(챗-셔)’는 그렇게 갖게 된 권력으로 그간 스스로 쌓아온 이미지를 패러디하고 주석을 달면서 팬들과 일종의 간텍스트적 게임(intertextual game)을 벌이고 있는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아이유는 한편으론 한국 사회가 규정하는 ‘순결하면서도 과잉성애화된’ 소녀의 성적 이미지를 가지고 노는 ‘주체적인 여성 예술가’로 평가받지만 또 한편으로는 페도필리아를 부추겨 성공할 수 있었던 ‘약아빠진 어린 여자’로 간주된다.

나아가 이 논란은 현재 한국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모순적인 규범을 폭로한다. 한국의 남성중심적 신자유주의는 여성들에게 상징적으로는 성평등을 주장하면서 구조적으로는 육체를 통한 정체성과 성공만을 ‘선택지’랍시고 쥐어준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이 경험하는 문화적 압력은 스스로의 육체를 학대, 착취, 절멸시키는 것으로 이어진다. 여성들의 살인적이라고 할 만한 다이어트와 성형 실천, 젊은 여성들의 높은 자살률은 이를 방증한다.

그러니 성적 육체를 통해 성공한 걸 아이돌의 추락은 남녀대중 모두에게 언제든 은밀히 환영받는다. 다른 아이돌 상품과의 차별화와 남성중심적 성적 욕망에 기대어 ‘우연히’ 성공한 그녀들의 굴욕을 기뻐하는 대중의 심리에는 정의 실현의 욕구마저 뒤틀린 형태로 뒤얽혀 있다. 그간 대중문화에 대한 여성 팬들의 소비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해온 여성주의 문화연구로서는 다소 난감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걸 아이돌의 성적 육체는 상품 생산에 포섭된 이미지 소비를 통해 고통 없는 몰두와 분노 없는 적의 사이를 왕복하는 대중, 그리고 이들을 포함하는 작금의 문화산업을 살펴보기에 모자람 없는 궤적이다. 이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급진적 성정치가 종종 기존질서에 포획된다는 사실에 맞닥뜨릴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는 남성중심적 신자유주의를 지탱하는 우아한 폭력과 잔인한 환상을 남김없이 드러낼 것이다. 

필자 김신현경씨는 현재 독일 베를린자유대 동아시아대학원 박사후연구원으로 있다. 여성주의 연구모임 FICT 멤버. 공저 『섹슈얼리티 강의, 두 번째 이야기』,『일상의 여성학』, 공역『성적 차이, 민주주의에 도전하다』가 있다. 최근에는 미디어 경제와 노동, 우리 시대 사랑과 연애의 변동, 여성주의 문화연구의 급진적 재구성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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