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수호가 최고의 덕목

국민대저항 촛불시위는

대통령제 폐해가 원인

개헌 로드맵 제시하고

선거제도 개혁 나설 때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을 내린 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 승리, 탄핵축하’ 촛불문화제에서 시민들이 탄핵인용을 축하하며 환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을 내린 1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 승리, 탄핵축하’ 촛불문화제에서 시민들이 탄핵인용을 축하하며 환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820년대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세우고 지키기 위해 힘든 투쟁을 해 왔다. 200년 가까이 된 민주주의 발전 역사 속에서 헌정 질서를 한 번도 깨지 않고 지금까지 민주주의를 구가해온 나라는 있을까? 세계 200여 이상의 국가 중 영국, 미국, 스웨덴, 이렇게 세 나라만 그런 예를 보여준다.

전쟁, 학살, 인권유린, 기아를 피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자유를 찾아 나선 정치 난민들이 가장 선망하는 서유럽국가들도 뼈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헌정 중단과 주권 상실의 뼈아픈 경험이다. 프랑스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7월 혁명, 2월 혁명, 1870년 독일과의 전쟁 패배 이후 파리콤뮨과 학살, 2차대전 침략에 의한 헌법 중단을 경험했다. 독일은 1차대전, 바이마르공화국, 2차대전을 겪으며 외세와 내분으로 헌법을 수호하지 못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높은 삶의 질, 행복 등으로 우리가 부러워하는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노르웨이, 오스트리아는 2차대전 때 나치에 점령당해 고귀한 헌법을 수호하지 못하고 주권까지 상실한 아픈 경험이 있다. 고도 경제성장, 복지, 인권, 사회통합, 국내 치안이 아무리 잘되어 있어도 외침을 막아낼 국방력이 없으면 국가는 우리 국민의 고귀한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며 주권적 지위는 상실되고 헌법은 중단되고 만다.

영국, 미국, 스웨덴이 헌법을 수호하며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로 그리고 스웨덴은 복지국가로 선망의 대상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다양한 요소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들 나라에만 존재했던 세 가지 요소 덕에 가능했다. 통치자의 막강한 힘을 견제할 수 있었던 의회, 정책으로 탄생한 뿌리 깊은 정당, 제도 내 권력기관 간의 분립 인정이 그것이다. 역사의 고비 때마다 권력 독주를 견제한 의회, 행정부와 입법부의 충돌을 헌법적 절차와 법치로 풀어낸 사법부, 사회가 분열되고 정치가 작동하지 않을 때 타협과 합의를 이끌어낸 정당들이 있었기에 이들 국가는 대내외의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헌정 중단 한번 없이 민주주의의 선도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세가지만 잘 작동되면 민주주의는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것일까? 미국의 노예해방 문제로 인한 내전, 영국의 산업혁명과 보통선거제도 도입 때의 계급 갈등과 대립 그리고 스웨덴에서 국방개혁, 보통선거권 도입을 둘러싸고 나라가 반으로 쪼개졌을 때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지도자들의 국가 이익 중심의 통치력은 국가를 하나로 묶어주는 단단한 볏집 역할을 해 준다. 아더 웨슬리, 로버트 필, 윌워트 글래드스톤 등 1800년대 영국 지도자들과 아브라함 링컨, 체스터 아더, 테오도어 루스벨트 등 미국 대통령, 좌우의 반목과 대립을 꾸준한 대화와 협치로 풀어낸 페르 알빈한손, 타게 에르란데르 등 스웨덴 총리들이 국가위기 시 발휘한 통합의 리더십은 최순실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 선고 후의 대한민국에 지금 무엇이 필요한 지 곱씹게 한다.

여기에 대의적 리더십의 의미를 되짚어봐야 한다. 이겼지만 졌다고 이야기할 수 있고, 졌지만 인정하고 국가의 대의를 내세운 정치인은 국민을 통합시키고 척박한 민주주의 토양을 바꾸는 거름 역할을 한다. 거름은 썩어 없어지지만 토양 양분을 배양해 좋은 결실을 맺게 하는 성장촉진제 역할을 한다. 1824년 대통령선거에서 유권자 투표와 선거인단투표까지도 승리했던 앤드류 잭슨 후보는 선거 부패와 의회 결탁의 희생자였다. 그러나 그는 “헌법적 절차에 따른 선거결과였기에 승복한다”고 말했다. 그의 헌법 수호 정신과 국민통합 리더십은 미합중국이 건국 이래 민주주의 발전을 이루는 최대 분수령이 됐다. 또 4년 후 선거에서 정치 기득권과의 투쟁에서 승리해 민주당을 설립하고 국가 변혁을 주도한 정당민주주의 제도가 정착될 수 있었던 주춧돌을 깔아준 역사적 사례다.

지금 우리는 국가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핵미사일 개발의 완성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북한의 핵 위협과 형제까지 살해하는 예측불허의 독재자, 고고도 미사일 배치에 따른 중국의 비이성적 보복과 경제 위축,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우선정책과 예측불허의 언행, 일본 극우의 재무장, 유럽을 휩쓸고 있는 극우정당 확산, 푸틴의 러시아제국 재건설의 꿈은 동시다발적으로 우리의 미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게 두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일제에 36년 동안 주권을 빼앗겼다가 되찾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 후세가 자유민주주의라는 틀 속에서 오롯한 가정의 행복,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자신의 소박한 꿈과 소망을 펼칠 수 있는 온전국가를 존속시켜야 할 의무를 우리 모두 짊어지고 있다.

국가지도자들은 이제 국민 앞에 약속해야 한다. 우선 헌정 수호를 최고 지상주의로 천명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결정 승복을 이야기하기 전에 탄핵 기각 시 혁명이나 국민궐기 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던 후보자들, 정치인들이 국민 앞에 사과하고 헌법을 지키겠다고 선언해야 한다. 이것 없이는 설사 헌법재판소 판결에 승복을 해도 반쪽짜리밖에 되지 못한다.

정치불신 국민대저항으로 시작된 촛불시위는 대통령제의 폐해가 원인이라는 것에 모두 동의한다. 개헌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해줘야 한다. 동시에 국가를 쪼개고 나누는 선거제도 개혁은 반드시 손봐야 한다. 이것 없이는 두 달 후 선출되는 대통령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정치작동 불능의 가장 큰 원인인 비효율적 국회의 기득권 내려놓기는 국가개혁 로드맵에 함께 포함돼야 한다. 이 기회에 완전하고, 입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효율적 권력구조의 청산이라는 정치적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의 약자·‘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이란 뜻)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의 틀 속에서 고귀한 헌법을 지키고 국가를 방위하며 국민 통합과 행복이 구가되는 온전국가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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