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연예인은 성추문 겪으면

조기복귀는커녕 활동 어려운데

남자는 자숙과 반성 없이 복귀

우리 사회의 이중규범 돌아볼때

 

마사지 업소에서 30대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고소당한 배우 엄태웅이 지난해 9월 경기 성남 분당경찰서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불법 성매매 혐의로 벌금 100만원에 약식 기소된 그는 자숙 6개월 만에 이주형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 ‘포크레인’으로 복귀한다. ⓒ뉴시스·여성신문
마사지 업소에서 30대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고소당한 배우 엄태웅이 지난해 9월 경기 성남 분당경찰서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불법 성매매 혐의로 벌금 100만원에 약식 기소된 그는 자숙 6개월 만에 이주형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 ‘포크레인’으로 복귀한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해에는 유난히 유명 남자연예인들의 성폭력 혐의와 관련된 보도가 많았다. 부드러운 남편, 자상한 아빠로 이미지를 구축해온 연예인 A는 마사지사를 강간했다는 혐의로, 한국과 아시아권을 넘어 남미에서까지 각광받는 아이돌그룹 멤버인 한류스타 B는 다수의 피해자에 대해 화장실에서 강간한 혐의로, 케이블TV 드라마에서 잘생긴 외모와 훈훈한 연기로 사랑받고 있는 탤런트 C는 소개받은 여성을 찾아가 강간했다는 혐의로 전파를 탔다.

이들 중 누군가는 성매매이기는 하지만 성폭력은 아니라는 판결을 받았고, 누군가는 피해자 일부가 고소 전에 돈을 요구했기 때문에 무고죄와 공갈미수죄로 처벌을 받았고, 또 누군가는 신고한 여성의 변호사가 사임을 하면서 공개적으로 무고라고 떠든 덕분에 신고한 여성이 무고죄로 기소되면서 성폭행 혐의를 벗었다. 그리고 새해가 시작되자 논란의 주인공들이 마치 피해자인양 당연스레 복귀 소식이 들려오는 중이다.

한국사회가 남자와 여자의 성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은 특별한 일도,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여자 연예인들의 경우 성매매나 성추문으로 입에 오르내리게 되면 조기복귀는커녕 시간이 한참 지난 후 다시 돌아와 제대로 활동하는 것은 참으로 요원한 일이다. 물의를 일으킨 경우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심지어 자신의 사생활이 폭로된 피해자의 경우조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잘나가는 남자연예인들이 성폭행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는 보도가 전해질 때면 잡지에 따라오는 별책부록처럼 함께 따라다니는 논란이 있다. 소위 “꽃뱀 아니야” 하는 의심의 눈초리다. 이상하게도 내용은 자극적으로 다뤄지지만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의 상처나 그 일로 인해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리고는 이내 가해자가 혹시라도 억울한 상황이 아닌 지에 대한 배려와 피해자에 대한 의심이 회자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피해를 당하고도 신고했다가 거꾸로 ‘꽃뱀’으로 몰리면 어쩌나 두렵고, 함부로 이야기를 했다가 애꿎은 자기 신상만 털리면 어떡하나 걱정된다. 가뜩이나 피해를 당한 입장인데, 가해자로부터 무고죄나 명예훼손죄로 맞고소를 당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피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불안정할수록 빈번하게 등장한다. 부와 명예가 있는 연예계 스타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여성이 유흥업소 종사자거나 호감을 먼저 보였다고 여겨지면 “여자가 뭘 바라고 그러는 거 아니야” “남자가 뭐가 아쉬워서”라는 시선이 주렁주렁 이어진다. 성범죄는 다른 범죄에 비해 객관적 증거가 잘 남지 않는다. 나를 강간하거나 만졌다는 것도 입증하기가 어렵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강제로 당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더 어렵다. 그러다보니, 둘만 있었던 범죄현장에서 서로 원했던 일이다, 아니다를 두고 다투게 된다. 그리고는 강제로 했다는 것을 밝힐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사건이 증거불충분으로 흐지부지되거나 아주 가끔씩은 피해자에게 무고가 아니라면 강제로 했다는 증거를 대라는 적반하장의 상황도 생긴다.

성폭력으로 물의를 일으킨 연예계 스타들이 법원에서 성폭력으로서 유죄를 받지 않았다거나 그들을 고소한 여성 중 일부가 무고와 공갈을 했다고 해서 그들이 한 행동이 잘못이 아닐까? 일례로 성매매는 벌금부터 실형까지 가능한 범죄다. 강제성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해도, 자신이 당한 일이 성폭력이었다고 토로한 피해자가 여럿이 나온 논란은 어떤가. 고소인 중 한명이 돈을 요구했거나 돈 때문에 신고했다고 정말 아무런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반듯한 이미지로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그 기대와 동떨어진 사생활로 물의를 빚은 것 역시 도의적인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그런데 이들이 추문을 일으키고 대중 앞에서 자취를 감춘 그 잠깐 사이, 누구도 반성을 하거나 자숙을 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저 들려온 소식은 이들이 상대 여성들을 무고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자신들은 성폭행 범죄 혐의만큼은 유죄를 받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성폭행 범죄의 혐의를 벗었거나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해도, 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그 행동으로 상처준 이들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그 상처는 이들을 아끼고 사랑했던 대중도 받았고 실은 이들로부터의 피해를 주장한 이들도 받았다. 대체 이들을 이렇게 복귀시키는 것은 누구인가. 기획사만 탓할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성과 계급의식을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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