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눈길·어폴로지·토니 에드만·아뉴스 데이

국내외 여성감독 영화, 소재·이야기 다채로워

3월, 풀릴 듯 풀리지 않는 날씨다. 봄바람을 맞고 싶지만 꽃샘추위가 가시질 않는다. 긴 겨울, 얼었던 마음을 영화로 녹여보는 건 어떨까. 소재부터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매력을 선사하는 여성감독 영화가 기다리고 있다.

추리본능 자극, 심리스릴러 ‘해빙’

 

영화 ‘해빙’ 스틸컷. 의사 승훈 역의 배우 조진웅. ⓒ앤드크레딧
영화 ‘해빙’ 스틸컷. 의사 승훈 역의 배우 조진웅. ⓒ앤드크레딧

 

영화 ‘해빙’ 스틸컷. 정 노인 역의 배우 신구. ⓒ앤드크레딧
영화 ‘해빙’ 스틸컷. 정 노인 역의 배우 신구. ⓒ앤드크레딧

먼저, 이수연 감독의 ‘해빙’이다. 치밀한 스토리와 탄탄한 짜임새, 배우들의 열연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심리스릴러라는 장르적 재미는 ‘추리극 마니아’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병원 도산 후 이혼한 의사 승훈(조진웅)은 수도권 외곽으로 이사를 간다. 한 때 미제연쇄살인사건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던 곳엔 치매아버지 정 노인(신구)을 모시고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성근(김대명)이 살고 있다. 성근의 건물 원룸에 세들어 사는 승훈은 어느 날 정 노인에게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팔다리는 한남대교에, 몸통은 동호대교에, 머리는 아직 냉장고 안에….” 수면내시경 중 뭔가에 홀린 듯 내뱉은 말은 승훈을 순식간에 오싹한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다. 정 노인에게서 ‘토막 살인’ 고백을 들은 순간, 그는 수면 아래 잠겼던 비밀과 마주한다. 정 부자에 의심을 품은 이후 돌이킬 수 없는 늪에 빠지고 마는 승훈. 그리고 한동안 조용했던 도시에는 다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영화는 말한다. “아무도 믿지 마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의심의 끈을 절대 놓지 말라.” 얼음이 녹자 드러나는 살인의 비밀이 궁금하다면, ‘해빙’이다. ‘4인용 식탁’으로 알려진 이수연 감독이 14년 만에 내놓은 신작. 3월 상영중. 출연: 조진웅, 신구, 김대명, 이청아

‘위안부’ 이야기 담아낸 ‘눈길’·‘어폴로지’

 

영화 ‘눈길’ 스틸컷. 종분 역의 배우 김향기. ⓒ워너비펀
영화 ‘눈길’ 스틸컷. 종분 역의 배우 김향기. ⓒ워너비펀

 

영화 ‘눈길’ 스틸컷. 영애 역의 배우 김새론. ⓒ워너비펀
영화 ‘눈길’ 스틸컷. 영애 역의 배우 김새론. ⓒ워너비펀

 

영화 ‘눈길’ 스틸컷. ⓒ워너비펀
영화 ‘눈길’ 스틸컷. ⓒ워너비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아픈 역사를 조명한 ‘눈길’이 3월 상영 중이다.

1944년 일제강점기 말, 같은 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전혀 다른 운명을 타고난 두 소녀가 있다. 가난하지만 씩씩한 종분(김향기)과 부잣집 막내에 공부까지 잘하는 영애(김새론)다. 영화는 두 소녀가 일본군에 끌려가 겪게 되는 참혹한 현실을 그렸다. 맑고 서정적인 눈망울로 관객을 사로잡는 배우 김향기와 섬세함과 강인한 매력을 지닌 김새론의 호흡이 돋보인다.

이나정 감독은 “끔찍한 폭력의 순간을 ‘영화적 스펙터클’로 이용하지 않으려 주의를 기울였다”며 “폭력으로 아픔을 겪은 분들이 계시고, ‘위안부’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시점에서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 이 감독은 일본군 ‘위안부’에 관련된 소품과 의상, 사건까지 과장 없이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힘썼다. “영화적인 연출을 더하지 않아도 당시 상황들이 충분히 비극적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눈길’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아픔을 관객과 함께 느끼고 위로하고자 만들어졌다. “그 끔찍한 상황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주변에 나의 아픔을 알아주는 사람들,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서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는 류보라 작가의 말에서 알 수 있듯, ‘눈길’은 위로와 공감의 힘을 이야기한다. 출연: 김영옥, 김향기, 김새론, 조수향

 

영화 ‘어폴로지’ 스틸컷.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와 길원옥 할머니. ⓒ영화사 그램
영화 ‘어폴로지’ 스틸컷.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와 길원옥 할머니. ⓒ영화사 그램

 

영화 ‘어폴로지’ 스틸컷. ⓒ영화사 그램
영화 ‘어폴로지’ 스틸컷. ⓒ영화사 그램

 

영화 ‘어폴로지’ 스틸컷. 필리핀의 아델라 할머니. ⓒ영화사 그램
영화 ‘어폴로지’ 스틸컷. 필리핀의 아델라 할머니. ⓒ영화사 그램

‘눈길’이 ‘위안부’ 피해자의 참혹했던 현실을 영화로 그려냈다면, ‘어폴로지’는 실제 피해 할머니들의 삶을 바로 옆에서 조명했다. 한국의 길원옥 할머니를 필두로 중국의 차오 할머니, 필리핀의 아델라 할머니의 삶을 담아냈다. 6년간 할머니들의 인생 여정을 그렸다.

길 할머니는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를 요구하며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고 있고, 차오 할머니와 아델라 할머니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비밀을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 인생의 마지막 고개를 넘으며 날로 쇠약해지는 건강에 하루하루가 힘겹지만, 그 속에서 할머니들의 신념과 의지는 확고함으로 빛난다.

캐나다 감독 티파니 슝은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선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한다. 세 할머니의 아픔만을 담지 않고 그들의 ‘오늘’을 다양한 시선으로 생생하게 담아냈다. 피해를 구체적으로 부각하기보다 피해 이후 할머니들의 회복력과 극복 의지를 담아내 가슴 찡한 울림을 전한다. 오는 16일 개봉. 출연: 길원옥, 차오, 아델라 할머니

티격태격 부녀 간 사랑과 감동-‘토니 에드만’

 

영화 ‘토니 에드만’ 스틸컷. 아버지 빈프리트(왼쪽)와 딸 이네스. ⓒ모비
영화 ‘토니 에드만’ 스틸컷. 아버지 빈프리트(왼쪽)와 딸 이네스. ⓒ모비

 

영화 ‘토니 에드만’ 스틸컷. ⓒ모비
영화 ‘토니 에드만’ 스틸컷. ⓒ모비

 

영화 ‘토니 에드만’ 스틸컷. ⓒ모비
영화 ‘토니 에드만’ 스틸컷. ⓒ모비

어떤 이가 그랬던가. “가족이란 누가 안 본다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주인공 이네스(산드라 휠러)는 “그 중에서도 나의 아버지는 더 그렇다”고 생각한다. 농담에 장난은 기본, 분장까지 서슴지 않는 괴짜 아버지 빈프리트(페테르 시모니슈에크)는 커리어 우먼으로 잘 살고 있는 딸을 느닷없이 찾아들어 일상에 균열을 낸다.

독일 영화 ‘토니 에드만’은 유머와 장난이 일상인 아버지와 워커홀릭인 딸이 오랜만에 만나 함께 살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아냈다. 딸과 아버지의 관계를 섬세하고 통찰력 있게 그려내 공감과 감동을 선사한다.

오랫동안 키우던 강아지 빌리가 죽고 적적한 마음을 달랠 길 없는 빈프리트는 해외 출장 가 있는 딸 이네스를 깜짝 방문한다. 아버지는 일밖에 모르는 이네스가 안타깝다. 관계가 소원해진 것도 아쉬운 빈프리트는 변장을 하고 이네스에게 다가가기로 결심한다.

마렌 아데 감독은 영화를 통해 실제 장난기 가득한 자신의 아버지와 본인의 이야기를 영화로 그려내고자 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의미, 변화하는 유럽사회와 현대화의 의미를 담았다. 16일 개봉. 출연: 산드라 휠러, 페테르 시모니슈에크

임신한 수녀들의 감동실화-‘아뉴스 데이’

 

영화 ‘아뉴스 데이’ 스틸컷. ⓒ영화사 찬란
영화 ‘아뉴스 데이’ 스틸컷. ⓒ영화사 찬란

 

영화 ‘아뉴스 데이’ 스틸컷. ⓒ영화사 찬란
영화 ‘아뉴스 데이’ 스틸컷. ⓒ영화사 찬란

 

영화 ‘아뉴스 데이’ 스틸컷. ⓒ영화사 찬란
영화 ‘아뉴스 데이’ 스틸컷. ⓒ영화사 찬란

“주님의 양이라 믿는 저희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죠?” 1945년 폴란드, 임신한 일곱 명의 수녀들에게 찾아온 기적 같은 희망을 담은 실화다. 비극적 임신을 한 수녀들은 적십자에서 일하는 프랑스 의사 ‘마틸드’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비밀리에 수녀원을 오가며 진료하던 그녀는 수녀원이 뭔가를 감추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임신한 수녀들과 그를 돕는 프랑스 의사 ‘마틸드’의 감동 서사를 전한다. 실화를 모티브로 탄탄한 각본과 감독 특유의 섬세하고 우아한 연출이 돋보인다.

안느 퐁텐 감독은 최근 해외 매체들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 “프랑스 의사의 노트에서 발견한 수녀들의 이야기에 강한 유대감을 느꼈다. 모성애와 믿음, 모두 다뤄보고 싶었던 주제였기에 주저 없이 선택했다”고 밝혔다.

또 그는 “(영화를 본 관객들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끔찍한 일에도 반드시 희망이 있다는 것을 느끼길 원한다”고 전했다. 감독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아뉴스 데이’는 비극적 사건이 일어나는 세계 속에서도 희망이 있음을 전하며 위로와 희망을 건넨다. 30일 개봉. 출연: 루 드 라쥬, 아가타 부젝, 아가타 쿠레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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