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성폭력대항단체인 ‘DSO(Digital Sexual Crime Out·디지털 성폭력 아웃)'를 이끄는 하예나 대표(활동가)가 2월부터 여성신문 연재를 시작합니다.

하 대표는 2015년 소라넷 고발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활동가 연대를 구축하고 모니터링하면서 공론화를 주도했습니다. 2016년 경찰의 소라넷 폐쇄는 그가 계속해서 싸우고 더 강력하게 외쳐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다가왔습니다. DSO 단체 설립에 나선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하 대표는 연재를 통해 디지털 세상에서 무감각하게 벌어지는 성폭력 실태를 낱낱이 고발할 예정입니다. 코너명 ‘하예나의 로.그.아.웃’에는 디지털공간의 성폭력을 종료·근절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과거 가정폭력이 ‘폭력’으로 인정되지 않았듯이 ‘디지털성폭력’도 폭력으로 인정되기에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상했지만 그 과정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그중 제일 힘든 부분은 경찰과의 마찰이다.

2015년 11월 14일, 대표적인 디지털성범죄 양산소였던 소라넷에 실시간으로 강간 사진이 올라오면서 생중계되고 있었다. 나를 포함해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를 신고했으나 경찰은 움직이지 않았다. 심지어 “범죄 혐의점이 없다며 장난친 것”이라는 말을 하며 웃어넘겼다. 고발자는 순식간에 피해망상을 겪고 있는 예민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우리는 서초경찰서로 찾아갔다. 경찰들은 소라넷이 해외사이트라며 직접적인 채증을 원했으며 우리들은 증거를 위해 밤새 불침번을 서며 초대남으로 위장해야 했다. 한명이라도 위험에서 벗어난다면 마땅히 그리해야 한다고 믿었다.

결국 우리는 가해자의 틱톡 아이디와 00역 앞이라는 대략적인 위치를 알아냈으며 약속한 경찰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다른 경찰서로 인계되었고 3-4차례 반복되었다. 최종적으로 도달한 사이버 경찰대 민원전화에서는 출동은커녕 도리어 함정수사의 관한 질책마저 들어야 했다. 다음날 우리는 그들에게 왜 약속처럼 되지 않았느냐 물었으나 그들이 원한 것은 00모텔 00호수 같은 정확한 위치였다며, 역 앞에서 만나기로 한 것으로는 충분치 않기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분하고 억울했으나 다른 방법은 없기에 또 다시 불침번을 서기 시작했다. 다시 초대남으로 연결이 됐다. 그의 대략적인 위치와 실시간으로 강간을 증명하는 영상까지 목격했다. 그러나 경찰에 말하지 못했다. 경찰이 원하는 증거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팀원들은 자책감과 무력감으로 절망했다.

실시간으로 강간 모의가 일어나는 상황에도 이러했으니, 유출형 성범죄와 같은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경찰은 신고를 받아주지 않는 상황이니, 팀원들은 계속해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해외 사이트 차단 요청을 넣으며 데이터 수집에 집중하다 11월 남성 몸캠 유출의 전담팀이 꾸려져 담당한다는 서초경찰서로 국내 P2P사이트의 디지털 성폭력의 자료를 모아 고발장을 작성해 찾아갔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불편한 얼굴로 본인들의 소관이 아니니 서울 본청으로 가라하였고 서울 본청에서는 피고발자 위치가 있는 경찰서로 가야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또한 유출형 성범죄 중 확실한 성범죄인(폭력이 들어간 강간) 것이 아니면 접수되기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누차 들으며 자료마저 반 이상을 추리고 잘라냈다.

경찰서와 경찰청을 돌고 돌아 금천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또 다시 우리들의 자료를 문제 삼았다. 증거를 캡처했던 그 순간의 확실한 일시가 안보이면 가해자가 발뺌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한명 한명의 고발장을 하나하나 따로 진술해야 될 것이라고 했다. 수사의 책임을 모두 전가하는 듯한 요구에 우리는 침통해져 “경찰은 수사 기관이 아닌 것이냐” 묻자 그들은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피해자가 아니라 고발자일 경우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며, 본인들이 중한 업무가 많으며 얼마나 사건을 많이 맡고 있는지 우리에게 설명했다.

2시간이 넘는 그들의 말에 결국 밤새 모니터링을 한 팀원은 눈물까지 흘리며 분개했다. 팀원들은 그길로 들어가 12시간 내내 자리에 붙박혀 수백 개의 링크를 그들이 원하는 대로 다시 구성해 제출했다.

결국 경찰에서 최종적으로 돌아온 결론은 이것이다. 너무 많은 양을 받아 줄 수 없다. 그리고 ‘성기’가 드러나는 영상이어야 한다는 것. 그 말은 ‘음란물법’에 위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화장실 몰래카메라도 ‘성기’가 드러나지 않으면 고발할 수 없다.

모니터링 팀이 밤을 새워가며 고발하고 싶었던 피해자들의 고통과 가해자들의 악행은, 수사할 가치가 없는 골치 덩어리이자 종이 쪼가리가 되어 버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가해자가 피해자들을 지옥으로 밀어 넣으며 고작 ‘음란물’로 소비하듯 말이다.

그들은 음란물이 아니다. 우리는 음란물이 아니다. 언제까지 인터넷상에서 여성들이 음란물로서 소비돼야 하는가. 하지만 그들이 정한 ‘음란물’이 아니면 보호받을 수 없는 지경이라니. 우습다.

* 외부기고문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