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여성예술인연대 AWA의 유재인·전유진 작가, 김린 여성디자이너정책모임 ‘WOO’ 대표, 김소마 ‘푸시텔’ 활동가, 신희주 여성문화예술연합 공동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왼쪽부터)여성예술인연대 AWA의 유재인·전유진 작가, 김린 여성디자이너정책모임 ‘WOO’ 대표, 김소마 ‘푸시텔’ 활동가, 신희주 여성문화예술연합 공동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문화예술연합 간담회 ②

문화예술계 내 위계를 이용한 성차별·성폭력 만연

고발하려면 커리어를 걸어야 하는 현실

피해자에 침묵 강요하는 악순환 낳아

김소마 : 분야를 넘어서 성폭력의 패턴이 있다. 작업 이야기로 시작해 은근슬쩍 성희롱·성폭력을 시도한다. 

유재인 : 대부분 피해자가 학생이고, 가해자는 선생 등 위계성이 명백한 경우가 굉장히 많다. 

전유진 :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은 구조적 문제다. 피해자가 대상화되는 것도, 위계를 이용하는 성폭력이라는 점도, 대응 방식도, 피해자가 말하지 못하는 이유도 다 비슷비슷하다. 이 위계는 비가시적이다. 시각예술계도 권력 구조가 분명 존재하지만, 이를 드러내고 가해자를 제대로 징계할 수 없는 분위기다. 

김소마 : 무용·연극계가 조용하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특유의 도제 시스템 때문에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 같다. 가해자를 특정하기보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윗사람에게 찍혀 퇴출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신희주 : 영화 촬영 쪽도 도제 시스템이라서 비슷한 문제가 있다. 기술 파트, 조명이나 촬영팀 여성들이 심각한 강간 위협을 받고 있다고 들었는데 고발하는 사람이 없다. 감독 중에서도 이런 문제를 제기한 여성은 한 명뿐이었다. 

전유진 : 본인이 쌓아올린 것들을 버릴 용기 없이는 고발을 할 수 없는 환경이다. 이 분야에서 교수직 등 권위를 갖고 활동하는 분들이 나서야 하는데, 굉장히 오래 걸릴 것 같다. 이 문제를 언제까지 몇몇이서 끌어가야 할까. 몇몇의 힘만으로 바꿀 수는 있을까. 걱정이다.

신희주 :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 사망 이후 한국의 문화예술인들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여성 문화예술인은 빈곤은 물론 성폭력의 위험에도 노출됐고, 대응 자원도 부족하다. 벼랑 끝에 선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다들 동질감을 갖고 있는 문제다.

전유진 : 영역만이 아니라 세대를 초월한 문제다. 10년, 20년째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신희주 :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 포럼 때, 60대 초반의 여성분이 ‘내가 20대 때 연극을 하려다가 성폭행을 당할 뻔하고 손 뗐는데, 아직도 이런 일이 있다니 깜짝 놀랐다’고 하시더라.

김소마 : 관련법도 없고 처벌도 힘드니까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위로 올라갈수록 여성이 너무 없어서 더 그렇다. 저희 학교만 봐도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더 많은데 교수 6명 중 2명만이 여성이다. 영상 쪽은 아예 교수진 중 여성이 없다. 문화예술계 전반이 다 그렇다. 롤 모델도, 이런 문제를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여성으로서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신희주 여성문화예술연합 공동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신희주 여성문화예술연합 공동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유재인 여성예술인연대 ‘AWA’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유재인 여성예술인연대 ‘AWA’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전유진 여성예술인연대 ‘AWA’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전유진 여성예술인연대 ‘AWA’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성폭력 사건, 개별 대응보다 입법·제도의 변화에 주력하자 

최근 아래로부터의 개혁 요구 이어져

빠른 변화 위해선 남성 리더도 설득해야

유재인 : ‘난 네 편이야, 같이 욕해줄게’ 말고는 개인적으로 피해자를 도울 방법이 없다. 무력감을 느꼈다. 권력을 쥔 사람들이 구조를 바꾸어야 하는데, 그 분들은 의지가 없는 듯하다. 피해를 당한 적도 없고, 당할 거라는 생각조차 않는 것 같았다. 다른 세계의 사람들 같았다.

김소마 : 압박을 해도 (기득권자) 본인들이 해결 의지가 없다. 학교 내에서도 성폭력 고발 아카이빙이 이어지고, 학생들이 대자보를 쓰고 언론 인터뷰를 하겠다며 교수나 학교 관계자들을 압박했다. 그래도 ‘미안하다’ ‘법은 의회에서 만듭니다’ 라며 무책임하게 넘어가더라. 

학내에서 문제를 일으켜 해임된 강사가 있다. 그 강사가 (피해를 고발한) 학생에게 연락해서 ‘파일이 돌아다니는데 어떡할 거냐, 네 생각대로 일이 끝날 게 아니다’ 라며 협박하더라. 심지어 그 학생이 교환학생을 간 학교 교수와의 친분까지 과시하면서 압박하고.

전유진 : 기득권자들의 카르텔은 촘촘하다. 그들이 이 문제 해결에 나설 이유가 없고, 그들이 움직일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다. 결국 학생들이,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고 바꾸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나설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알리고 항의하기 위한 퍼포먼스 등 예술적인 활동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려면 결국 정책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 당장 피해자 보호를 위한 기구나 정책도 없으니까. 

김린 : ‘교활한 타협전략’이 필요하다. WOO가 만들어지기 전 ‘업계 종사자들에게 묻습니다’ 라는 성명서가 나왔다. 업계의 남성 리더를 겨냥한 글이었다. 급진적인 페미니즘의 입장에선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남성 리더에게 묻는가? 하지만 그분들과의 신뢰관계를 활용한 연대가 필요하다. 이 판에서 사라지지 않고, 결국 우리와 동시대에 활동할 분들이다.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말이지만 그분들과 같이 가야 한다. 실제로 그런 분들이 WOO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 디자인 관련 잡지에서 새해부터는 contributor를 남녀동수로 하겠다고 했다. 기분은 나쁘지만, 남성들이 나서면 굉장히 쉽게 바뀌더라.(웃음)  

신희주 : 타협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그런 의미에서 피해자에게도 여러 선택지가 주어져야 한다고 본다. 모 영화감독이 여성 스탭을 성추행해 영화노조가 신고한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는 결국 합의금을 받고 사건을 정리했다더라. 끝까지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합의하고 자신의 안위나 커리어에 집중하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 결국 정책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다.

유재인 : 피해자가 다시 돌아와 활동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려면, 가해자가 ‘권력’을 갖지 못하게 해야 한다. 가해자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예술인들에게 돈이나 기회를 제공할 권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계속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피해자는 ‘분란을 일으킨 사람’으로 낙인 찍혀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구조와 정책을 바꿔야 한다. 우리가 문체부와 간담회를 열고 일차적으로 정책을 제시한 게 첫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얼마나 받아들여지느냐가 문제다. 체감할 수 있는 정책적인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

▶ ① 문화예술계라는 ‘기울어진 운동장’, 이젠 바로잡자

▶ ③ 성차별·성폭력 없는 예술활동, 정부가 보장하라

▶ ④ 연대하되, ‘개인기’에 의지하지 않기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