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온라인 페미니스트 ⑥

[인터뷰] 페미니스트 게이머 연합 ‘전국디바협회’

게임 내 만연한 젠더 차별·폭력에 맞서는 개인들

박근혜 퇴진 시위부터 페미니즘 문화제까지 다양한 활동 펼쳐

“여성도 게임하기 좋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더 연대·행동할 것”

 

 

김지영 전국디바협회 대표 ⓒ이세아 기자
김지영 전국디바협회 대표 ⓒ이세아 기자

이제 게이머 10명 중 4명이 여성인 시대, 게임을 소수의 오타쿠나 남성의 전유물로 여기는 사람은 없다. 게임은 지금 가장 미래지향적이고 대중친화적인 뉴미디어 콘텐츠로 꼽힌다. 그러나 게임 세상은 현실 못지않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여자가 무슨 게임을...’이란 편견은 여전하고, 단지 게임을 하기 위해 광범위한 성적 대상화와 성폭력, 조롱을 겪는 여성도 많다. 지난해 여성 게이머 ‘게구리’ 선수의 부정행위 의혹, 게임 내 만연한 성차별·성폭력 고발 운동(관련기사▶ ‘이뻐요?’ ‘신음 들려줘’...여성 게이머가 겪는 일들)이 드러낸 현실이다. 

분노를 넘어 “여자도 게임하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인기 온라인FPS게임 ‘오버워치’ 속 한국 여성 캐릭터, ‘디바(D.Va)’를 마스코트로 삼았다. 디바의 본명은 ‘송하나’. 프로게이머 세계 챔피언으로, 국군 특수부대에 합류해 자신의 특기를 발휘해 최첨단 로봇을 조종하며 괴수와 싸우는 캐릭터다.

 

온라인FPS게임 ‘오버워치’ 속 한국 여성 캐릭터, ‘디바(D.Va)’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온라인FPS게임 ‘오버워치’ 속 한국 여성 캐릭터, ‘디바(D.Va)’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만약 미래의 한국이 지금 같은 성차별적인 국가라면, 디바 같은 사람의 등장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사람이 등장할 수 있는 성평등한 2060년을 만들기 위해 지금 노력합시다.” “Feminism for future female(미래의 여성을 위한 페미니즘)!” 한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게이머 연합, ‘전국디바협회’는 그렇게 탄생했다. 

전디협의 첫 공식 활동은 지난해 11월 26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시위 참가였다. 이후로도 다양한 단체와 연대하며 온·오프라인에서 페미니즘의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에 반대해 지난달 21일 열린 ‘세계여성공동행진 서울’에 이어, 다음 달 4일엔 페미니즘 문화제 ‘페미답게 쭉쭉간다’를 여러 페미니즘 단체들과 공동 주최한다. 격주로 페미니즘 독서 모임도 연다. 오는 8월엔 여성 전용(젠더퀴어 포함) 오버워치 게임대회, ‘여자 나가신다’도 개최할 예정이다. 현재 온라인으로 참가 신청을 받고 있으며 다음 달 예선전을 연다.  

 

지난해 12월 10일 종로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제5차 페미존집회현장. 전국디바협회 등 여러 참가 단체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지난해 12월 10일 종로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제5차 페미존집회현장. 전국디바협회 등 여러 참가 단체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진주원 여성신문 기자

 

지난 1월 21일 강남역 일대에서 열린 ‘세계여성공동행진 서울’. ⓒ이정실 사진기자
지난 1월 21일 강남역 일대에서 열린 ‘세계여성공동행진 서울’. ⓒ이정실 사진기자

국제 사회도 이들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오버워치를 만든 미국의 대형 게임기업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공개적으로 이들을 격려했다. 지난 22일 오버워치의 비주얼 디렉터는 전디협을 언급하며, “우리가 게임을 통해 전하고자 한 ‘고정관념에 도전하라’는 가치를 (전디협이) 실천하고 있다. 놀랍고 대단하다”고 말했다(관련기사▶ 오버워치 디자이너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한국 페미니스트들 놀랍고 대단”). 블리자드의 긍정적인 피드백 이후 관심과 지지, 후원도 퍽 늘었다고 했다. 

“미국에선 ‘게이머게이트’ 사건, 한국에선 페미니즘 티셔츠 한 장 때문에 게임 성우가 교체되는 사건이 있었죠. 전디협에서 행사를 기획해도,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단체라서 지원이 어렵다’ ‘불편하다’는 이유로 좌절되는 일이 있었고, 페미니즘 가치를 중요시한다는 이유로 많은 온라인 공격을 받아 지쳐 있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페미니즘 가치가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 형성에 도움이 되고, 그걸 기업이 이용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돼 기쁩니다. 한국 게임업계와 게임 커뮤니티의 상황들과 비교하면 서글퍼지기도 하고요.” (전디협 멤버 ‘챦’ 님)

“누군가는 ‘찻잔 속의 태풍’이라 폄하하지만, 페미니즘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게임계도 응답할 때”라고 이들은 강조했다. “저는 좋아하는 게임으로 페미니즘을 접했고, 그래서 페미니즘에 대한 두려움과 선입견 대신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차별적 언행에 대해 제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고, 여성 비하 발언에 대응하는 법도 알게 됐죠.”(멤버 ‘뺍새’ 님) “게임 못하는 사람들이 꼭 여자가 어쩌니저쩌니 하면서 게임 분위기를 망치더라고요. 우리의 움직임으로 인해 여성 리그도 계속 이어지고, ‘성별을 떠나 모니터 안에선 그저 동료일 뿐이다’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어요.”(멤버 박정근 님)

 

2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북카페 두잉에서 열린 전디협 시즌1 쫑파티 현장. 유료 행사로 50여 명이 참가해 게임과 일상 속 성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세아 기자
2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북카페 두잉에서 열린 전디협 시즌1 쫑파티 현장. 유료 행사로 50여 명이 참가해 게임과 일상 속 성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세아 기자

26일부로 1기 활동을 마무리한 전디협은 다음 달부터 2기 회원들을 모집한다. “더 단단한 모임을 만들”되, “재미와 유연성을 잃지 않으며 더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게 목표”다.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전디협이 여기까지 온 것은 많은 페미들과 연대했고, 서로 용기와 힘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라고 이들은 강조했다. “우리는 더 연대하고 행동하고 쟁취해낼 겁니다. 메갈리아보다 큰 꿈을 꾸는 신생 페미니스트 단체는 너무나도 많답니다! 메갈이냐? 아니. 전디협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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