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온 졸업시즌…출구없는 여대생 취업

졸업 시즌이 다가왔다. 노동부는 작년 10월∼12월까지 대졸여성 취업설명회, 구인·구직 만남의 날과 대졸여성 취업 지원전담창구를 운영한 결과 대졸여성 7308명을 신규로 취업시켰다고 발표했다. 이는 은행 통폐합, 기업 구조조정 등으로 신규 사원 채용이 급감한 사정을 감안할 때 큰 성과라는 분석도 있지만, 전체 대졸 취업희망 여성 3만3509명 가운데 21.8%에 불과해 여전히 대졸여성의 취업문은 좁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이와 함께 99년 이후 전반적인 취업률 상승과는 별도로 대학 졸업을 앞둔 신규 취업 여성들이 행사 도우미, 텔레마케터, 호텔 룸메이드, 판매직 등 단순 비정규직에 몰려 여성 고용구조를 악화시킨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호황누리는 도우미 양성학원

판매직·텔레마케터도 대거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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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고용정보원 동향분석팀에 따르면 최근 1∼2년 사이 대졸여성이 진출해 있는 분야는 이밖에도 건축·제조관련 단순노무직, 신문·신용카드 등 각종 배달원, 세차원, 주차원, 각종 요금 징수원, 파출부, 이동통신기기 판매를 비롯한 각종 판매직, 각 방송사 모니터요원, 전화교환원 등의 직종이며, 최악의 경우 단란주점 등 유흥업소에서도 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파견업체인 맨파워코리아는 전화상담원을 비롯한 텔레마케터의 경우 80%이상이 4년제 대졸여성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최근 도우미 양성학원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정인모델학원 유지수 원장은 “방학에는 대개 아르바이트를 원하는 재학생 수강생이 많지만, 취업난 때문인지 대학 졸업을 앞둔 여학생들이 부쩍 늘었다”고 전한다. 2개월 과정의 도우미 양성과정에 등록한 30여 명의 수강생 중 50% 이상이 도우미직을 전업으로 삼고자 한다고 유 원장은 덧붙인다.

이에 대해 “도우미를 전문직으로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 도우미를 택하는 대졸 여성 가운데는 취업이 안되는 것을 이유로 꼽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지난 달까지 3년간 나레이터로 활동한 강아무개씨(29)는 “대학 졸업후 취업이 안돼 재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하던 도우미를 택하게 됐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오래 할 생각은 없었지만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사무직보다 급여도 높은 데다 특별히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한 것도 아니어서 계속하게 됐다고 한다.

각종 판매직도 마찬가지다. 백화점은 물론 대형마트, 의류매장, 이동통신기기 판매직에도 대졸 여성들이 많이 진출하고 있다. 애경백화점에서 판매일을 하고 있는 최아무개씨(27)는 “대충 나이 속이고 아예 대학 안다녔다고 얘기한다”고 털어놓는다. 재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때와 달리 졸업 후에는 상대방이 무시할까봐 말할 엄두도 못내겠더라고 최씨는 말한다. 집에도 조그만 사무실에 다닌다고 얼버무린 상태라고.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그런데 노력을 안했다느니 자격증을 따라느니 그런 말을 하면 반감이 생겨요.”

한편 취업이 용이하지 않은 인문계열 전공자가 대부분인 4년제 대학 여학생의 경우 입사 절차가 까다롭지 않아 학습지 교사를 손쉽게 선택하게 된다. 전국학습지노동조합 안성만 팀장은 “대개 2개월에 한번 신규채용을 하는데 채용인원 2000여 명 가운데 80% 이상이 대졸여성”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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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적인 취업난 속에서 대졸여성들이 정규직을 얻지 못하고 도우미나 텔레마케터등 단순 비정규직종에 유입되어 여성노동시장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있다. 사진·민원기 기자 minwk@womennews.co.kr

취업 50% 월급 80만원 미만

대기업 신입사원의 절반수준

중앙고용정보원 박천수 동향분석팀장은 “서울 일류대 출신이나 전문 기술·자격증 소지자가 아닌 나머지 여대생은 거의 대부분 단순 사무직이나 서비스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고, 현장에서는 급여수준이며 제반조건이 고졸 여성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개발원 김태홍 수석연구원은 “여성인력의 비정규직화와 임시 고용 형태는 장기적으로 노동시장 구조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대졸 여성들의 정규직 노동시장 진입 실패는 중간관리자 역할을 담당할 관리직 여성인력을 키울 수 없어 남성중심적 노동시장 구조를 강화하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성과 중심, 노동 유연성을 중시하는 기업 풍토 속에서 이 문제는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일각에서는 “노동시장에 남아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최지희 책임연구원은 “임시직·비정규직이라고 포기하면 경력 관리 측면에서는 더욱 치명적”이라며 고용 사정이 풀릴 때를 기다려 정규직으로 가기 위한 가교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국여성노동조합 김지현 교육선전국장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옮기는 데 성공한 경우는 2% 미만”이라며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대졸여성취업자의 ‘하향취업’ 경향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노동부 산하 고용정보관리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3분기 한국 고용동향’을 보면 대졸 취업 여성의 50.5%가 평균 월 임금 80만원 미만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노동부가 집계한 50대 그룹 평균 신입사원의 연봉 1800만원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를 심화시키며 여성의 빈곤화를 조장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취업설명회·정부지원 인턴제

“지원정책 실효없다” 소리높아

여대생 취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은 취업설명회, 구인·구직 만남의 날, 취업지원 전담창구, 유망직종 책자 발간 외에 정부지원 인턴제 정도다. 정부지원 인턴제의 경우 현재도 시행중인데, 작년의 경우 전체 5만6600명 가운데 56%인 3만1800명의 여대생에 대해 인턴기간 3개월, 채용 후 3개월 동안 기업에 50만원을 지원했다. 전체 대졸여성의 취업률이 증가한 데는 이 인턴제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이는 IMF 이후 한시적으로 마련한 사업이라 경력으로 인정이 안되고 전문성을 살리기 어렵다.

또한 각 지방노동청이나 인력은행에서 취업지원 전담창구는 거의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는 구인을 신청하는 업체와 구직자를 연결해 주고 있지만, 어느 분야에 어느 정도 진출해 있는지는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한 취업 준비생은 “사설 취업정보기관보다 정보가 적고 사후관리가 부실하다”고 꼬집었다.

김지현 교육선전국장은 “정부가 대학 취업정보실과 연계하여 현장에서 요구하는 취업 훈련을 제공하는 등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한국노동시장의 성차별적 고용관행을 감안, 학교 취업정보실은 여성채용정보를 특화하여 신속하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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