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개 시민사회단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선포

 

23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선포를 위한 각계각층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정실 사진기자
23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선포를 위한 각계각층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정실 사진기자

“나중에, 다음에, 아직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묻습니다. 혐오와 폭력이 벌어지는 바로 지금, 이 현실에 대해선 뭐라고 답할 것입니까?”

23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선포를 위한 각계각층 기자회견’이 열렸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 노동권 실현을 위한 공동행동, 이주인권연대,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 280여 개 단체가 참여했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만을 위한 법이 아니라, 모든 사회적 소수자들의 존엄한 삶을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며 “지난 10년간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으면서 혐오는 더욱 조직화되고 정치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차별금지법은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출신지역, 출신학교,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합리적 이유 없이 이루어지는 차별을 구체적으로 금지․예방하고, 불합리한 차별을 겪고 있는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구제를 포함하는 기본법”이다. 적용 범위는 고용, 교육, 의료 등 경제·사회·문화 전 영역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간접 차별, 괴롭힘, 차별 조장 광고도 금지된다. 이전에는 차별 피해 소송 당사자가 차별 사실은 물론 그 부당성까지 입증해야 했지만, 법이 제정되면 차별 불가피성이나 정당성 입증의 책임은 가해자가 져야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노무현 정부의 대선 공약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초안을 작성해 2007년 10월 법무부가 입법 예고했다. 그러나 보수기독교 단체와 재계의 반대에 부딪혀 ‘성적지향’ ‘병력’ 등 항목이 삭제됐다. “누더기 법안”이라는 질타가 쏟아졌다. 2010년 법무부가 다시 입법을 시도했으나 또 무산됐다. 17~19대 국회에서도 같은 일이 되풀이됐다. 반대 압박 탓에 법안을 자진 철회한 의원들도 있었다. 2012년 법무부는 차별금지법안 제정을 사실상 포기했다. 

나라 안팎에선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졌다. 2011년 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와 아동권리위원회, 2012년 8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2012년 UN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UPR) 등 국제사회는 한국 정부에 꾸준히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요청했다. 지난 19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는 한국 사회의 소수자들이 온·오프라인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낙인과 편견이 심각함을 보여줬다. 성소수자의 94.6%, 여성 83.7%, 장애인 79.5%, 이주민 42.1%가 온라인상 혐오표현을 경험했다. 성소수자의 92.6%, 여성의 87.1%, 장애인의 81%는 실제 증오범죄의 대상이 될까 봐 우려한다고 답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유력 대선 후보들이 ‘성소수자를 지지하나 차별금지법은 안 된다’ 등 유보적인 답변을 내놓으면서 차별금지법은 다시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23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선포를 위한 각계각층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정실 사진기자
23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선포를 위한 각계각층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정실 사진기자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단체들은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은 합의의 대상도 표심잡기를 위한 홍보의 대상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또 “한국은 현재 장애인차별 등 일부 차별금지와 관련된 개별법이 존재하지만 구체적인 구제조치가 미흡하고, 인권위 법에 따른 조정․권고만으로는 차별받은 피해자의 효과적인 구제가 어렵다”며 “정부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평등권 실현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수행해야 하고, 인권위는 이를 감시하는 독립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우리는 이 광장의 싸움이 모든 차별받는 사람의 연대의 장이 되기를 염원하며, 반차별을 위한 차별금지법제정의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낼 것”이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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