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고정관념 깨자’며 출시된 새 바비인형 완구 제품, 오히려 성차별 논란
“바비와 니키의 파티 준비를 도우면서 중요한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기술도 배워봐요! 세탁기, 회전식 옷걸이, 장신구 거치대, 해먹, 드레스 디자이너 플랫폼, 신발장을 만들어요!”
젠더 고정관념에 도전장을 내 출시 전부터 주목을 받았던 새 바비인형 완구 제품. 막상 뚜껑이 열리자 오히려 ‘성차별을 조장하는 제품’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문제의 제품은 지난해 9월 영미권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출시 중인 ‘바비 STEM KIT’다. 4~8세의 소녀들이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 과학·공학에 자연스레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STEM 분야는 남성의 영역’이란 편견을 깨겠다는 의도다.
비판의 초점은, 왜 놀이의 영역이 ‘세탁기’ ‘옷장’ ‘신발장’ 등 전형적인 여성의 가사노동 영역에만 머물렀느냐는 것이다. “세탁기는 20세기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다. 그러나 ‘여성용 기계’는 아니다.” 성평등한 장난감을 위한 영국 소비자단체 ‘Let Toys Be Toys’의 조 조어스 대변인은 지난달 24일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지를 통해 이렇게 꼬집었다(바로가기).
“이 제품은 (성차별) 문제를 다루는 한편, 소년들에게 ‘너희는 빨래 문제엔 관여하지 않아도 돼’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현실과는 달리, 집안일은 여성의 몫이라는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있어요.” 영국과학협회(British Science Association) 회장인 데임 아덴 도널드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도 비판에 가세했다.
미국 대형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의 상품 페이지에서도 비판적인 구매 후기들을 볼 수 있다(바로가기). “바비의 하이힐이 연구실에 적합한 차림이라고는 믿기 어렵다.” “앞섶을 잠글 수 없는 실험 가운, 짧은 치마를 입은 STEM 전문가?” “STEM과 아무 관련 없는 성차별적인 완구.” 젠더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제품이라면서, 오히려 기존 바비인형의 문제로 지적된 ‘여성스러움’에 대한 편견을 삭제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만연한 성차별에 도전하는 완구 제품들의 등장은 물론 반가운 일이다. 전 세계 각국에선 여성의 STEM 분야 진출을 장려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과 캠페인이 나오고 있지만, ‘STEM 분야는 여성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오래된 편견을 부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성평등 선진국’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 글로벌 컨설팅 기업 ‘액센츄어’가 영국·아일랜드의 대학생·학부모 등 8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바로가기), 32%가 ‘STEM이 남성에게 맞는 커리어나 업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완구 제품이 아이들의 젠더 관념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는 만큼, 더 섬세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당부했다. “아이들 주변을 보세요. 모험을 떠나기엔 적합하지 않은 옷차림의 여자 인형, 가사 노동을 하는 여자 인형....소녀들이 미래를 꿈꾸는 데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건 이런 것들이죠.” 여성 자선단체 ‘걸가이딩(Girlguiding)’의 지적이다. 도널드 교수는 “일단 아이들이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 제한하지 말고, 그냥 자유롭게 놀도록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