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역군 ‘공순이’ 푸대접하더니

노동 존중 안하긴 지금도 매일반

 

왜 여자들 조기퇴근 시위 하냐고?

남녀 월급 같이… 임금격차 없애야

최저임금은 생활임금 수준으로

 

‘여성 노동자들의 큰언니’ 이철순. 여성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에 일생을 투신한 그는 지금도 암담한 노동현장을 보면 마음이 답답하다. 평등한 일터가 되려면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이정실 사진기자
‘여성 노동자들의 큰언니’ 이철순. 여성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에 일생을 투신한 그는 지금도 암담한 노동현장을 보면 마음이 답답하다. 평등한 일터가 되려면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이정실 사진기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는 말을 남긴 채 전태일이 불꽃 속에 스러져갔다는 소식은 스무살 이철순의 삶에 균열을 가져왔다. 그의 발길은 천주교 가톨릭노동청년회로 향했다. 그후 30년. 노동운동가로 투신하던 현장은 떠났지만 3․8세계여성의날 109주년인 올 봄을 맞는 이철순의 마음은 스무살 청년 때와 같다. “노동자는 일하는 예술가다.”

3시 스톱 조기퇴근시위 왜 하냐고

서울 마포구 한국희망재단 사무실에서 이철순(64·상임이사)을 만났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커트머리까지 열혈 운동가 시절이나 예순이 한참 넘은 지금이나 풍모는 그대로다.

“3·8세계여성의날은 노동자들이 죽을 각오로 싸웠던 날이죠. 미국 여성 섬유노동자 1만5000여명이 러트거스 광장에 모여 10시간 노동제와 작업환경 개선, 참정권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어요. 그때 많은 여성들이 소중한 목숨을 내놔야 했지요.”

그가 오랫동안 투신했던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올해 3·8세계여성의날을 맞아 내달 8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3시 스톱(STOP)’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조기퇴근시위’를 벌인다. 우리나라 성별임금격차는 36.6%다. 하루 노동시간 8시간 기준으로 계산하면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오후 3시부터는 무급으로 일한다는 의미다. 이철순은 “이는 정부와 기업을 향한 선전포고”라면서 “월급을 덜 받으니 일을 덜 하겠다는 의미 아니냐. 남자와 여자의 월급은 똑같아야 한다. 그게 우리 사회의 진보”라고 강조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현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 일하는여성아카데미 이사장 등을 지낸 그는 홍콩 아시아여성위원회(CAW) 집행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우리 여성 노동운동의 지평을 넓혔고 국제그린피스, 아시아노동자료센터 등 국제연대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여성 노동자들의 큰언니’다. 여성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에 일생을 투신한 그는 지금도 암담한 노동현장을 보며 “마음이 답답하다”고 했다.

“19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은 ‘공순이’로 불렸어요. 공부하고 싶은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공장에서 일했던 여성들을 위해 야학도 만들었죠. 그때의 ‘공순이’들이 실은 우리 경제를 일으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산업 역군이었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긴 매일반이죠.”

 

화장기 없는 얼굴에 커트머리까지 열혈 운동가 시절이나 예순이 넘은 지금이나 이철순의 풍모는 그대로다. 그의 삶터인 한국희망재단에서. ⓒ이정실 사진기자
화장기 없는 얼굴에 커트머리까지 열혈 운동가 시절이나 예순이 넘은 지금이나 이철순의 풍모는 그대로다. 그의 삶터인 한국희망재단에서. ⓒ이정실 사진기자

가부장제 문화가 낳은 저임금

이철순은 지금도 그 시절 ‘공순이’들을 만나면 마치 도돌이표처럼 40년 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의 처지에 마음이 쓰리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투입된 게 거의 여성 노동자들이었어요. 주로 10대 노동자들이 들어갔는데 여성을 투입한 이유 중 하나가 저임금 때문이었죠. 그 배경에 가부장제 문화가 있어요. 그다음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선 석유화학공업과 종합제철을 최우선 육성산업으로 선정했어요. 중공업은 다 남성을 투입했죠. 중학교만 겨우 졸업한 가난한 농부의 딸들이 방직공장, 섬유공장에 몰려갔고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든 후 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 지금 가 있는 곳은 식당이나 호텔 청소부, 가사관리 등 돌봄노동이죠.”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노동현장에 나온 여성들은 저임금 단순노동자로 끊임없이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고 있다. 이철순은 “이 친구들을 만나면 화도 나고, 속상하다. 평생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할까 생각하면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여성임금’인 최저임금이 생활임금이 되지 않는 한 곤궁한 노동자들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들의 일터가 일하기 좋은 직군이 돼야 하는데…. 10년, 20년이 흘러도 최저임금이에요. 최저임금이 생활임금인 1만원으로 오르지 않으면 삶이 나아지지 않는 거죠.”

여성 생산 가능 인구(15~64세) 대비 고용률은 2000년 50%에서 2015년 55.7%로 늘었지만 75%인 남성과는 20%가량 차이난다.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임금은 남성 임금의 64% 수준이다. 고용률 격차나 임금 격차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노동시장 불평등을 나타내는 주요 지표인 저임금 근로자 발생 비율도 2015년 22%로 미국과 함께 가장 높다. 남성은 11.5%인데 비해 여성은 37%에 달했다. 여성 노동자 3명 중에 1명 이상이 저임금 노동자라는 의미다.

“지금은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상황이 복잡해졌어요. 소사장제니 뭐니 두면서 기업들은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가서 돈 벌려는 생각밖에 하지 않으니까요. 소사장이 되면 노동자의 혜택을 못 받는 거죠. 직업군도 더 많아졌고요.”

경제가 위기를 맞으면 여성 노동자들은 가장 먼저 실업 위기로 내몰린다. 97년 IMF 외환위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철순의 타임머신이 그때로 돌아갔다. “하루에 작은 기업들이 수천 곳씩 문을 닫았으면서 하루아침에 중년의 여성 노동자들이 다 쫓겨났죠. 그런데 갈 데가 없는 거예요. 산업이 없어지니 자기가 지닌 기술이 이전될 수 없는 거죠. 직업상담 소개소처럼 우리도 급히 여성실업대책본부를 만들었어요. 여성 실업자군 조사를 하다보니 16%가 여성 가장이더군요.” 이들을 훈련시켜 가사노동에 파견했고 단일 직업군이 되면서 가사관리사협회가 생겼다.

가사노동자 근로기준법상 보호를

이철순은 “가사노동자들은 권리를 보호받지 못한 채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고 있다”며 “육아, 간병 등 가사일을 통해 임금을 받는 가사노동자도 근로기준법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사노동자는 미리 업무 내용을 사용자와 합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갑작스런 업무 취소나 임금 체불로 곤혹을 치르는 게 현실이다. 우리 사회가 빠르게 고령화되면서 가사노동이 중요해졌는데도 여전히 저평가되면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도, 법의 보호를 받지도 못하고 있다.

IMF 당시 여성노동자가 근무하다 대규모로 사라진 일자리에는 임시, 일용, 시간제, 파견, 용역 등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고용돼 경기침체나 위기 때마다 여전히 위험을 흡수하는 안전판이 되고 있다. 2007년 금융위기 때도 사라진 일자리의 75%가 여성 일자리다. 구조조정 민낯을 들여다보면 성차별은 어디보다 일터에서 심하다.

IMF 위기 때는 ‘여자라서’ ‘맞벌이 부부 중 아내’를 공공연하게 정조준해서 정리해고했다면 법적 요건이 강화된 지금은 교묘하게 여성 노동자를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임신, 출산을 이유로 해고 압력을 가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여성노동자 대다수가 비정규직이고, 성별임금격차도 매년 커지고 있다. 이철순은 “남성들은 비정규직이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며 팔짱을 끼곤 하는데 처음에 여성으로부터 시작된 비정규직에 자연스레 남성이 편입되기 마련”이라며 노동의 질 개선을 거듭 강조했다. 

 

이철순은 “남성들은 비정규직이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며 팔짱을 끼곤 하는데 처음에 여성으로부터 시작된 비정규직에 자연스레 남성이 편입되기 마련”이라며 노동의 질 개선을 거듭 강조했다. ⓒ이정실 사진기자
이철순은 “남성들은 비정규직이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며 팔짱을 끼곤 하는데 처음에 여성으로부터 시작된 비정규직에 자연스레 남성이 편입되기 마련”이라며 노동의 질 개선을 거듭 강조했다. ⓒ이정실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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