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논단]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거주하는 한 워킹맘이 출근 전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기위해 아파트를 나서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거주하는 한 워킹맘이 출근 전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기위해 아파트를 나서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우리 사회에서 ‘엄마’와 ‘직장인’의 삶은 진짜 양립이 불가능한가.

1970년대에 제작된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는 당시 미국사회의 가치가 자녀양육과 가사노동 등에서 남성, 여성 그리고 한 가정에 얼마나 부정적 영향을 미쳤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허나 오래된 이 영화가 지금도 진부하지 않고 설득력을 갖는 것은 여전히 같은 이슈와 가치구조의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실로 돌아와 보자. 지난달 세 아이의 엄마였던 30대 중반 공무원은 일요일 새벽 출근했다가 아무도 없는 청사에서 쓰러져 생을 마감해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줬다. 육아휴직 후 복귀해 밀린 업무 탓에 과로에 시달린 그녀의 죽음은 양육과 전문가로서의 일을 포기할 수 없는 일하는 여성의 딜레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비단 이런 비극적인 사례를 보지 않더라도 한국여성의 경력단절, 남녀의 가사노동시간 격차, 저출산과 가족해체 등은 이 사회가 남성, 여성 모두에게 얼마나 양립하기 힘든 가치를 요구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와 가정에는 여전히 남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뿌리 깊은 신뢰가 남아 있다. 이런 의식은 직장에서 더욱 심하게 발현돼 ‘유리천장’을 형성한다. 기업은 유연근로제, 모성보호 제도를 남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닌 여성만을 위한 우대제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2016 OECD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근로자의 노동시간은 연평균 211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길다. OECD 국가 가운데 연평균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에 비해 연간 한달 이상 더 많이 일하는 장시간근로 국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2015년 기준 한국 남성들이 집에서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하루 단 6분에 불과해 현실적으로 아빠의 돌봄 참여는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이는 정시에 퇴근하는 직장 비율은 25%에 불과하고, 75%의 직장에서는 야근으로 저녁식사 시간 후에야 귀가하는 경우가 많으며, 중소기업의 정시퇴근은 더욱 어려운 현실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하는 사회·제도·문화적 환경을 만들지 않는 한 풀기 어려운 숙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해결 방안은 없을까. 대표적인 사례가 마더센터에서 기능을 확장해 운영하고 있는 독일의 패밀리센터다. 부모와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 모든 지역주민에게 개방된 ‘가족카페’ 운영이 핵심 기능이다. 일반적으로 센터 차원에서 개별 프로그램을 만들어 정부에 승인을 요청하고, 지역 내 다른 가족센터와 정기 모임을 통해 유사한 프로그램을 만들어가고 있다. 자녀가 있는 부모가 공동육아를 지원하고 도움받을뿐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지역사회 내 돌봄 문화를 조성해가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예를 토대로 지역사회 그리고 이웃과 함께 공유하는 한국형 패밀리센터를 제안하고 싶다. 그런데 패밀리센터 운영을 위해선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자녀양육을 지원하고 가족친화적 사회를 조성해 나갈 수 있는 자녀양육에 대한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 패밀리센터의 확산은 양질의 보육서비스, 노인돌봄서비스, 재고용 프로그램 등으로 새로운 가족문화와 사업 창출, 취업 기회를 성공적으로 만들게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이제 우리 사회와 국가는 가족이 함께 하는 일상의 조화와 균형을 찾아 살아갈 수 있도록 현실적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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