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퇴계인문관에서 ‘반동의 시대와 성전쟁’ 워크숍이 열렸다. ⓒ이세아 기자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퇴계인문관에서 ‘반동의 시대와 성전쟁’ 워크숍이 열렸다. ⓒ이세아 기자

“이제야 여성들의 말이 도처에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대중의 결집력과 연대의 표시를 넘어, ‘함께 계속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모색할 때입니다.”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퇴계인문관에서 ‘반동의 시대와 성전쟁’ 워크숍이 열렸다. 성균관대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단(CORE)이 주최하고,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INAKOS)와 성균관대 비교문화연구소가 주관했다. 현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학계와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250여 명이 참석해 강의실을 가득 메웠다.  

발제자들은 최근 페미니즘 이슈의 흐름을 분석하고 그간의 성과와 한계를 논의했다. “2015년부터 터져 나온 ‘새로운 페미니스트’들과 이들이 주도한 운동이 한국 페미니즘 역사에서 하나의 분기점을 이뤘다”고 조아라 성균관대 비교문화 연구자(박사과정)는 분석했다. 2030 젊은 여성들이 주축이 돼 시작한 ‘미러링’은 남성들의 여성혐오적 발화를 그대로 되돌려 줌으로써 그 폭력성과 차별의 구조를 드러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페미니즘 봉기’가 이어졌다. 온라인에선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를 필두로 한 다양한 해시태그 운동이, 도심 한복판에선 여성혐오 반대 시위, ‘낙태죄’ 폐지 운동 등이 열렸다. 페미니즘 도서가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명단에 오르고, 여성단체 기부·후원 운동도 벌어지면서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는 말까지 나왔다. 

문화연구자 오혜진 (성균관대 국문학 (박사과정)씨는 “현재 부상한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은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아 자기표현에 골몰해 온 세대다. 이들은 기울어진 판에서 무한경쟁과 자기계발이 지속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아가 민주주의를 위한 적극적인 실천에 나서는 등 변혁에의 열망을 동시에 체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편, 페미니즘 담론이 최근 한국 사회의 보수화 흐름과 맞물리면서, 도리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억압하고 이분법적 젠더 관념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최근 설리와 아이유 등 여성 연예인을 둘러싼 논란도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손희정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은 주장했다. 설리는 미소녀 컨셉으로 유명한 ‘로타’ 작가와의 작업 사진, ‘노브라’ 셀카, 휘핑크림을 입에 짜 넣는 영상 등을 그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려 ‘로리타 콤플렉스’ ‘외설적이다’ 등 비난을 받았다. 아이유는 2015년 발표한 ‘CHAT-SHIRE’ 앨범 표지와, 수록곡 ‘제제’ 가사에서 아이를 성적으로 대상화했다는 논란(바로가기▶ 아이유는 당신들의 롤리타인 적이 없었다)에 휘말렸다. 

이들이 던진 메시지는 “나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소녀가 아니다”라고 손 연구원은 해석했다. 대중은 어린 여성을 순결하고 수동적인 ‘국민 여동생’으로 대상화해 소비하다가, 여성들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적극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섹슈얼리티에 대해 직접 말하기 시작하자 당황하고 분노했다. “문제는 이 사회가 에로티시즘을 상상하는 방식이 배타적으로 이성애중심적이며, 동시에 여성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남성들의 폭력적인 욕망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한국 사회의 성보수화 경향은 물론,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퀴어 배제·혐오주의, ‘헤테로 남성은 결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는 식의 성본질주의적 주장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나왔다. 손 연구원은 “페미니즘이 사회의 전반적인 우경화와 성보수화에 기여하는 교조주의적 금욕주의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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