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뚜르’ 6년간 편집 매달린 임정하 감독

다큐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개봉

1년이면 될 줄 알았는데 배급사들 냉정...오기 생겨

“생각만 해도 구토 올라와 편집기에 보자기 덮어”

개봉할 돈없어 시민 500여명 후원, 펀딩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임정하 감독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임정하 감독 ⓒ이정실 사진기자

임정하 감독이 암으로 사망한 20대 청년을 촬영한 영상을 다큐영화로 제작해달라는 제의를 받은 건 6년 전이었다. ‘음란서생’ ‘추격자’ ‘GP506’ 등 극영화만 제작해왔고 영화사 북극곰을 경영하면서 사극액션영화를 준비하던 그는 어이가 없었다. 생각이 바뀐 건 모니터 속 청년의 첫인상 때문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캐릭터였어요. 오랜 항암 치료와 수술 끝에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데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건장하고 장난기 가득한 인상이 참 좋았어요.” 그렇게 임 감독은 청년의 꿈을 담은 영화 ‘뚜르’의 세 번째 감독이 됐다.

임정하·전일우·박형준 감독이 참여한 저예산 다큐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이 지난 1일 전국 225개 극장에서 개봉했다. ‘1년이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참여했지만 개봉까지 꼬박 6년이 걸렸다. 주인공 이윤혁씨가 세상을 떠난지는 7년 만이다. 이윤혁은 희귀암 말기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았으나 다시 악화됐다. 영화는 그 시점부터 시작한다. 병원에서는 당장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는 주변인들의 만류에도 치료 대신 프랑스행을 택했다. 세계적인 자전거 대회 ‘뚜르드프랑스’ 코스 3500km, 21코스를 49일간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완주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 항암 치료를 받았으나 세상을 떠났다.

6일 만나본 임정하 감독은 영화 속 이윤혁씨와 묘하게 닮아 있었다. 모두가 말렸던 자기와의 싸움에서 버텨낸 사람들이다. 이윤혁은 모든 사람이 ‘미쳤다’며 말렸지만 우여곡절 끝에 출국을 감행했고 한여름 땡볕을 등에 업은 채 자전거를 타고 피레네산맥, 알프스산맥 등을 올랐다.

“이제 그만하라 했지만...”

임 감독이 편집 작업 중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이제 그만하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말리던 사람들도 6년이라는 세월이 될 거라고 예상했을까. 애초에 ‘뚜르’를 기획하고 윤혁을 촬영했던 이는 전일우 감독이었다. 전 감독은 이윤혁이 프랑스행을 준비하는 단계부터 프랑스 라이딩을 동행하고 귀국 후 사망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했다. 그러나 주인공의 죽음 이후 전 감독은 작업을 진행하지 못했고 박형준 감독을 거쳐 결국 임정하 감독의 손에 닿게 됐다.

임 감독은 시한부 선고에도 좌절하지 않고 꿈에 도전한 이윤혁씨의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희망을 줄 것이라 확신했다. 혼자 편집을 하기 위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편집 프로그램부터 배웠다. 맨땅에 헤딩하듯 작업을 시작해 1000시간이 넘는 촬영분을 돌려보며 2시간 분량으로 압축해가는 싸움을 했다. 그렇게 1년 간 작업한 편집본을 들고 배급사를 찾아갔지만 정작 냉정한 반응이 돌아왔다. “왜 주인공이 이걸 하는지 모르겠다”, “뭘 말하려는지 모르겠다”, “이런 걸 왜 만드냐”며 가차없이 고개 돌렸다.

 

오기가 생겨 다시 편집을 시작했지만 고비는 수없이 왔다. 계획 없이 시작한 ‘뚜르’ 작업이 기약 없이 길어지면서 북극곰 영화사에서 함께 극영화를 준비하던 작가들, 감독들과 사이가 멀어지면서 하나 둘 그의 곁을 떠나갔다. “그들이 이 작품을 하찮게 보더라구요. 나조차도 혼란스러워졌죠. 아무리 밤을 새워 편집을 해도 확 바뀌는 게 아니니 남들이 보기엔 다 똑같은 거예요. 내가 뭐하고 있는 건지 나조차도 모르겠더라구요. 그러면서 동시에 윤혁이에게 더욱 더 감정이입이 됐던 것 같아요.”

원본 영상 속 어느 장면에서는 윤혁이 수십 킬로미터를 달리는 내내 같은 풍경이 등장한다. 임 감독은 윤혁이 카메라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무리 페달을 밟고 또 밟아도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제자리인 것 같다. 환각 상태인 것처럼 기분이 이상하다, 목표점도 안보이고 이 땅에서 누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프랑스까지 와서 뭘 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고.

“나 역시도 정말이지, 이제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어요. 체력도, 정신력도 바닥났고요. 촬영분을 다시 봐야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구토가 올라올 정도였죠. 이거하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편집기 위에 보자기를 덮고 겨울 내내 쉬었어요. 편집용 컴퓨터 작동 소리만 들어도 속이 울렁거렸어요.”

컴퓨터를 껐지만 그의 가슴 속에서 이윤혁은 인적 드문 알프스 산맥을 오르며 자전거에서 내리지 못한 채 꾸역꾸역 페달을 돌리고 있었다. 가파른 오르막에서는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넘어지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페달을 밟는다. 끝이 없는 길을 가는 자신을 따라오는 동료들을 보며 멈출 수 없다고 했지만 윤혁은 자기와의 싸움을 해나간 것이다. 누구도 아픈 그가 라이딩을 중단하는 것을 뭐라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임 감독은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하자... 윤혁 역시 그런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힘들다... 자전거에서 내리고 싶다, 그만 하고 싶다. 그렇지만... 조금만 더 하자! 그때 나는 윤혁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죠.“

 

다큐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내 정체성대로

임 감독은 그 시기 편집을 놓고 다큐 영화들을 보다가 두 가지를 알게 됐다. 극영화를 만드는 자신의 정체성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첫 다큐 연출을 하면서 다큐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진솔해야 하고, 사실 그대로, 시간 순서대로 가야 한다는 것 등이다.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하기로 했다. ‘누가 뭐라 하든 상관없다, 나는 내가 해오던 극적인 구성, 극적 구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트리트먼트(시놉시스 다음 단계) 작성부터 다시 시작했다. “또 하나 알게 됐죠. 다큐에 제가 너무 많은 얘기를 담으려고 했다는 걸요. 다큐 역시 관객들에게 주고 싶은 것과 별개로, 뭘 얘기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선택하고 정리해야 한다는 걸 생각하게 됐어요.”

시민들 후원 없었으면 개봉 못해

뚜르는 후원과 펀딩이 없었으면 시작도 끝도 불가능한 영화였다. 이윤혁의 프랑스 라이딩도 죽을 뻔한 경험을 했던 후원자가 대가 없는 지원에 나서서 가능했고, 영화 개봉에도 전국 각지의 시민들이 후원했다. 3년 6개월 간의 편집 후 개봉에 필요한 자금이 없어 모금과 펀딩을 받았고 1차로 428명의 후원자들이 1000만원을, 2차는 91명이 증권형크라우드펀딩으로 6850만원을 투자했다.

임 감독은 권지원 리틀빅픽쳐스 대표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뚜르’가 영화제에서 상도 받았지만 배급사를 찾지 못해 위기감이 컸던 순간 권 대표와 인연이 닿았다.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영화를 키우자고 했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준비 과정에서 사업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되면 투자를 줄이는 경우도 흔한데 권 대표는 그렇지 않았다고.

개봉 후 독립영화 치고는 관객이 많은 편이지만 임 감독은 기대했던 것보다 적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래도 영화를 통해 꼭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관객이 알아줘서 힘이 난다고.

“영화를 봤다는 관객의 글을 블로그에서 읽었어요. 평소 블로그에 올리는 글들이 대부분 우울하고 힘들다는 내용이었는데, 영화 후기에다가는 ‘나도 좀 힘을 내야겠다, 희망을 갖자’고 쓴 거예요. 순간 울컥했어요. 희망을 갖는다는 말이 평소엔 화석어같이 느껴졌는데 이 관객이 그 메시지를 그 말을 하니 와닿더라구요. 제가 이 영화를 만들었던 이유가 바로 그거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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