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혼슈 인구 400명의 작은 산촌

지속적이고 평화로운 공존의 삶

 

전통 자원 기반으로 공동체 연대

마을주민들 거미줄같이 연결돼

 

일본 혼슈의 남서쪽 시마네현 오모리마을에서 열린 지속가능발전교육(ESD)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온 전문가들이 토론 후 환하게 웃고 있다. ⓒ박은경
일본 혼슈의 남서쪽 시마네현 오모리마을에서 열린 지속가능발전교육(ESD)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온 전문가들이 토론 후 환하게 웃고 있다. ⓒ박은경

작년 5월 파리 유네스코본부에서 열린 지속가능발전교육(ESD) GAP(전지구적 행동프로그램) 회의에 갔을 때 일본의 한 작은 마을에서 ESD 회의가 열릴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반년 후 일본 혼슈의 서해안 작디작은 마을 오모리에서 ESD 국제 심포지움이 열렸다.

ESD는 인류의 미래

ESD는 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인간사회의 가장 획기적인 회의로 기록될 ‘유엔지속가능발전회의 (UNCSD)’ 이후 교육자들도 경제 중심의 인간사회 발달사를 점검하고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을 찾는 작업인 지속가능발전(SD)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교육이 인간 사회의 가치와 행동을 바꿀 수 있는 첩경이라는 신념과 물질 중심의 사회를 지속가능발전사회로 이끌기 위한 책임의식으로 ESD 전문가들의 노력이 시작됐다.

인간사회의 풍요롭고 편안한 생활만을 추구하는 발달이 아니고 환경을 보존하면서 사회‧경제적 평등도 중시하는 총체적인 균형잡힌 발전을 지속가능발전이라고 정의했다. 리우데자네이루 회의 10년, 20년 후 회의를 2002년, 2012년 유엔을 중심으로 연이어 열면서 새로운 지속가능발전 전략을 나누고 좋은 사례를 나누며 전 지구적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15년 9월 드디어 지속가능발전목표(SDG) 17개항을 2030년까지 성취하자는 대합의를 유엔 회원국 중심으로 채택했다. 이는 2000∼2015년 노력을 기울였던 새천년발전목표(MDG)의 후발 사업을 전개하는 대장정이다.

유엔 중심의 ESD 프로그램은 지속가능발전 10년(DESD)과 GAP을 운영하는 유네스코본부 사업과 ESD를 지역중심의 실행을 중시하는 유엔대학의 지역전문가센터(RCE)가 주 사업이다. ESD 교육의 실질적인 탐구와 인간사회의 삶에서 지속적이고 평화로운 공존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가치와 기술을 찾는 작업이 전 지구적으로 15년 이상 이어져 왔다.

유네스코 본부는 이제 더욱 지속가능하고 사람들 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ESD의 미래’를 찾는 심포지엄 시리즈를 계획했다. 그 첫 회의가 지난해 11월 8∼9일 일본 오모리마을에서 열렸다. 혼슈의 남서쪽 시마네현에 위치한 오모리(大森町)는 1923년 이 지역의 명성 높던 이와미 은광산이 폐쇄되면서 경제 동력이 없어진 마을주민들이 점차 떠나 폐촌으로 전락했다.

 

제과 마이스터 하다까(마이크 든 사람)씨가 나카무라 브레이스 후계자인 나카무라 2세, 동경대 출신 미우라씨 등과 함께 오모리마을의 일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박은경
제과 마이스터 하다까(마이크 든 사람)씨가 나카무라 브레이스 후계자인 나카무라 2세, 동경대 출신 미우라씨 등과 함께 오모리마을의 일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박은경

광산 폐쇄 후 폐촌… 다시 부활

그러나 이 지역 출신 마쓰바씨 부부가 35년 전 귀향하면서 기울인 노력으로 오모리마을은 다시 살아났다. 인구 400명의 작고 아기자기한 산촌인 오모리마을은 전통기술과 재료로 만든 옛 목축 건물의 보존과 전통음식, 전통염색으로 만드는 의복과 공예품 등으로 2007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마쓰바씨 부부가 운영하는 이와미 은광생활문화연구소는 쓰러진 가옥을 재건하고, 의복을 짓고, 음식과 다른 물품을 생산하는 과정에 이 마을에 남아 있는 전통적인 자원과 방식만을 사용하고 있다.

군겐도(群言堂)라는 상표로 전국의 25개 상점을 갖고 있는 이 회사는 전통과 현대 시장의 연결 속에서 마을 전통을 살리고, 그 전통을 일본 전역에 전파하면서 선진국 일본의 소비시장에서 역할을 해내고 있다. 봉건사회 역사가 있는 일본은 확실히 지역의 사회경제적 역할이 크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모리에는 또 하나의 기업이 있다. ‘나카무라 브레이스’라는 의족, 의수 장애자 보철, 보조기구 회사다. 나카무라씨는 20대에 미국으로 가서 고학으로 배운 기술로 이 오모리 지역에 작은 공장을 열었다. 장애인들을 위한 섬세하고 정교한 작업으로 연구, 개발한 노력으로 세계 수준의 보철기구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유방암 환자 가슴 보존술을 선도하는 나카무라 브레이스는 이 작은 마을에 둥지를 틀고 장애인들을 돕기 위한 연구소와 함께 놀라운 기술로 유럽에 지점을 둔 작지만 세계적인 작은 기업으로 성장했다.

오모리에는 외부에서 이주해온 젊은이들이 있다. 도쿄대 외교학과 출신인 루이 미우라씨는 마쓰바 소장이 도쿄대에서 오모리 마을을 소개하는 연설을 듣고, 외교관이 될 꿈을 접고 오모리에 합류했다. 독일의 제과 마이스터인 히다카씨 부부는 도쿄 제과점을 닫고 오모리에 작은 빵집을 열어 이 지역 농산물로 맛있는 빵을 이 지역민들과 나누며 행복을 만들어 가고 있다. 프랑스 국립교향악단의 바이올린 주자인 수미코 하마씨는 같은 악단 플루트 주자인 프랑스인 남편과 함께 파리에서 일하지 않는 시간에 이 마을에 와서 머물고 있다. 몇 해 전 주택까지 구입한 이 부부는 동료 음악가들을 초대해 여름에 음악 세미나도 하고, 연주회도 한다.

오모리에는 과거 은행 건물을 개조해 재건한 100명 정도 들어가는 오페라 극장이 있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작은 오페라좌 같은데 이 극장은 나카무라 브레이스 회사가 기부했다. 심포지엄 둘째 날 이곳에서 외부에서 오모리로 이주한 10여 명의 젊은이들의 소견을 듣는 시간이 있었다. 루이 미우라군은 자신의 아버지가 외교관이라서 다녔던 남아프리카공화국 학교에 다닐 때 두엄을 만들어 밭에 뿌리던 추억을 이곳에서 실현할 수 있고 주말에는 바다낚시를 하면서 무척 행복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말레이시아 출신으로 일본인과 결혼해 이 마을에 정착한 작가를 비롯해 모두 오모리에서 자신들의 삶을 진지하게 전해줬다. ESD 전문가들인 우리들은 이들의 행복한 삶의 표현에 함께 숙연해졌다.

오모리는 동해를 끼고 반대편 일본 해안가 근처에 위치해 있다. 김포-하네다-이주모 비행장-오모리마을까지 하루종일 걸렸다. 나카무라 베이스에서 내준 차편이 없어 시골 버스로 갔다면 아마 한밤중에 도착했을 것 같다. 30시간 걸려서 온 볼리비아 친구에 비하면 운좋게 짧은 거리였다. 이틀 동안 전 세계에서 모인 ESD 전문가 12명은 마을사람들과 자유롭고 긴밀한 대화를 나누고 일상생활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오모리의 매력에 빠졌다. 카메룬, 네덜란드, 미국, 싱가포르, 한국, 인도, 일본, 호주, 콜롬비아, 볼리비아 등 10개국에서 온 경제, 정보기술, 사회학, 건축학, 미디어, 청소년, 인류학 분야 전공자들인 이들은 지속가능성이라는 공통언어로 오모리 마을사람들의 의복, 음식, 마루, 지붕, 색깔, 얼굴에 흠뻑 취해갔다.

작은 길과 가게, 집, 곳곳에 아름답게 장식한 꽃 화분, 마을 산 속에서 걷고, 만나고, 대화하면서 그들의 자존감에 놀라고, 상호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공존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 오모리마을 사람들의 지역 사랑과 자부심을 보면서 이 마을에 매일매일 시간 속에 녹아 있는 평화를 실감했다. 

 

남편과 함께 이와미 은광생활문화연구소를 운영하는 토미 마쓰바씨가 군겐도 제품들의 전통염색, 의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은경
남편과 함께 이와미 은광생활문화연구소를 운영하는 토미 마쓰바씨가 군겐도 제품들의 전통염색, 의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은경

자연·사람 속 공존의 가치 배우다

“산이 좋고, 초록색, 나무, 동물, 비가 오는 것도 좋아요.”

오모리에 사는 게 왜 좋냐고 묻는 우리의 질문에 저학년 학생이 똑바로 서서 한 대답이다. 16명 학생이 전부인 이 학교는 10명의 교사와 함께 고구마도 캐고, 꽃도 심고, 뒷산을 헤매면서 소리도 지르고 노래하며, 서로서로 엉키는 공동체 의식이 가득해 보였다. 그들은 학교에서만 만나는 급우가 아니고, 일상생활 모든 영역에서 부모, 아저씨, 선생님들로 엮이는 다각적인 사회적 관계를 바탕으로 살고 있다. 이러한 관계는 이들을 어려서부터 상호 의사소통하는 능력을 키우면서 도시 학교의 한 반에서 경쟁하는 어린이보다 삶에 대한 폭넓은 경험을 하고 있었다. 자연과 사람 속에 어우러진 학습 활동은 오모리 어린이들에게 매일매일 공존의 가치를 심어준 것이다.

이와미 은광생활연구소, 나카무라 브레이스, 오모리초등학교 등을 집중 탐사하며 이와미 은광생활연구소 주요 담당자의 부인이 초등학교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고, 나카무라 브레이스의 뉴질랜드 출신 국제 담당 직원조차 유창한 일본말로 일본인 특유의 공손함과 겸손함을 터득한 오모리 마을민으로 동화돼 있음을 확인했다. 이들은 직장 밖 일상생활에서 오모리 공동체의 다각적인 연대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었다. 학부모만이 아니라 학교교육 자체가 오모리 마을과 다각적으로 연결되고 있었던 것이다. 오모리의 편안하고 평화로운 삶을 위해 모두가 연계돼 있었다. 400명의 마을민이 거미줄같이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행복해 보였다.

필자는 통영에서 지난 12년간 ESD를 심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아시아 태평양 25개국의 ESD 중심지로, 유네스코 본부의 ESD GAP 파트너로 통영의 지역성-문화, 역사, 자연-을 지역민에게 알리려고 애써 왔다. 이순신 장군이 400여 년 전에 가르친 나전칠기, 소목장, 자개제품, 누비 등 12공방의 위력을 통영의 어린 학생들에게 전하고 통영 지역을 통한 자존감을 길러주려고 노력해 온 필자에게 오모리의 지역적 자부심과 경영을 통한 오모리 마을민들의 자존감에 큰 부러움과 함께 감동이 밀려왔다.

한국에도 지역 전통문화를 터득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동체가 이곳저곳 형성돼 갈 곳, 일할 곳이 없는 젊은이들이 자존감을 갖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다양한 삶의 가치가 중요해진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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