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성폭력대항단체인 ‘DSO(Digital Sexual Crime Out·디지털 성폭력 아웃)'를 이끄는 하예나 대표(활동가)가 여성신문 연재를 시작합니다.

하 대표는 2015년 소라넷 고발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활동가 연대를 구축하고 모니터링하면서 공론화를 주도했습니다. 2016년 경찰의 소라넷 폐쇄는 그가 계속해서 싸우고 더 강력하게 외쳐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다가왔습니다. DSO 단체 설립에 나선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하 대표는 연재를 통해 디지털 세상에서 무감각하게 벌어지는 성폭력 실태를 낱낱이 고발할 예정입니다. 코너명 ‘하예나의 로.그.아.웃’에는 디지털공간의 성폭력을 종료·근절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사이트 화면 캡처. 노출 장면을 최대한 모자이크 했다. ⓒDSO
디지털 성범죄 사이트 화면 캡처. 노출 장면을 최대한 모자이크 했다. ⓒDSO

“‘국산 야동’이 왜 디지털 성범죄냐?” 반 디지털성폭력 활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인 것 같다. 남성의 자위행위 권리를 앗아가는 것, 이는 여성부가족부의 음모이자, 성적 자유 결정권의 탄압이란다. 왜 ‘국산 야동’을 보는 것이 범죄인지 그걸 계속 입증해 달라고 한다. 그걸 입증할 때까지는 쭉 볼 꺼라나 뭐라나 (참나).

공영 방송에서조차 ‘야동’이라는 말을 흔하게 들을 수 있다. 연예인들도 자신이 야동을 봤다고 자연스럽게 말한다. 다들 ‘나는 순수해서 그런 건 몰라~’라고 농담하지만, 결국은 야동을 본다는 것이 은연 중 표현되기도 한다. 남성의 경우 오히려 보지 않는다고 답하면 이상한 사람이 될 정도다. 물론 그들이 디지털 성범죄 영상을 보는지, 정말 순수한 야동을 보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국은 야동, 즉 포르노의 제작·유통·배포가 불법인 나라다. 포르노 저작권의 등록도 불가하니 애초에 합법적인 출연료를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출연자들이 소득을 얻는다면 법적 처벌까지 가능하다(여기서 말하는 것은 성기가 드러나는 노 모자이크 영상을 말하는 것으로, 애로 영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야동’만 검색하더라도 너무나도 쉽게 속칭 ‘국산야동+노모(노모자이크)’라는 제목의 게시물과 영상들을 찾을 수 있다. 날씨보다 많이 검색되는 키워드가 야동임을 감안하면 찾는 이도 참 많다. 수십 개의 사이트에서 하루에도 수십 개의 한국인이 나오는 영상이 업로드된다. 그것들은 다시 빠르게 재확산된다. 그렇다면 이 국산 야동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우선 출연자를 찾는 게 가능할까? 지금 우리나라에서 출연자의 신원이 노출된다는 말은 직장, 학교, 사회에서 내쫓기며 지속적인 언어 성폭력을 당하고 끝내 사회적인 매장을 당한다는 의미다. 심지어 음란물 제작죄로 검거되기도 한다. 이 모두가 출연자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다.

화면 뒤에 얼굴 없이 숨어 있는 유포자들은 다르다. 해당 영상들은 법망을 피해 불법유포하고 있는 유포자(유포형 가해자)들과 그들에게 플랫폼을 마련해주는 사이트들에게 커다란 이득을 가져다준다. 광고비를 벌어들이는 해외사이트, 최근 논란이 된 ‘꿀밤넷’의 운영자도 연간 수십억원대의 이득을 취했다. 한 P2P 사이트에서도 6개월간 7억6000만원을 벌어들였다. P2P사이트의 업로더들도 월 200만원 정도의 소득을 얻는다고 한다. 막대한 돈 앞에서 피해자의 입장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인터넷에 퍼진 범죄의 산물은 그저 이들에게 돈을 벌어다주는 금덩어리처럼 보일 것이다.

이를 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성범죄 사이트에서 퍼져 나왔다고 하는 “이사람 자살했답니다 글 내려주세요”라는 유행어는 해당 영상이 유포되는 것이 가해행위임을 알고 있기에 가능한, 지독히 악의적인 말장난이다. 그러면서도 그 영상을 보는 것을 ‘권리’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자유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있는 것임을 잊고 있는 건 아닐까?

 

구글에서 19 영상을 검색한 결과
구글에서 '19 영상'을 검색한 결과 ⓒDSO

특히 모니터링을 하며 마주치는 ‘강간야동’이라고 불리는 영상은 실제 강간 영상인지 연출인지 알 길이 없다. ‘자위’ 영상도 마찬가지로 그들이 스스로 영상을 찍었다지만, 과연 유포에는 동의했는가? 그런데도 그들이 피해자임을 입증이 돼야 멈출 것이라고?

물론 우리는 우선적으로 그들이 피해를 입지 않았는지부터 조사해야 할 일이다. 그것이 밝혀지지 않은 이상 그들은 출연자가 아니라 ‘피해자’라고 우리는 정의한다. 특히 신원이 드러나 있다면 이는 피해자임이 좀 더 명확하다. 이들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사회는 이들에게 가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그렇다.

이러한 내 의견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을 때 달리는 댓글은 늘 경악스럽다. 어떤 수준이냐 하면 ‘디지털 성범죄가 사라지면 ‘김치년’들이 기고만장해 질 것이다’라는 수준이다. 성범죄 영상물을 시청으로 소비하면서도 자신들이 정의를 행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댓글들이 한둘이 아니라 더 기함할 따름이다.

‘디지털 성범죄’를 올리는 사이트의 운영자가 검거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 영상물들의 상당수가 디지털 성범죄에 속하는 영상인데도 그 영상들은 ‘음란물’이라 불리며 범죄라는 심각성이 축소됐다. 사람들은 음란물을 마음껏 누리게 해준 사이트 운영자를 ‘영웅’이었다고 말하기도, 자신들의 자유를 잃었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오는 변명도 우습다. 성적인 욕구는 본능이기 때문에 이를 충족시켜야만 한다는 말. 글쎄. 성적인 욕구가 본능이라고는 하지만, 당신의 성적 욕구 때문에 누군가가 착취를 당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치면 폭력도 인간의 본능이며 식욕도 우리의 본능이다. 하지만 우리는 공동체를 위해 절도와 폭력을 제도적으로, 암묵적으로도 금하고 있다. 누군가가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마음대로 음식을 훔쳤다고 치자. 우리 사회는 그 사람이 본능이라는 변명을 늘어놓을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다만 디지털 성범죄자만이 예외가 된다. 쾌락보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를 앞에 두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 하예나의 로.그.아.웃은 매주 화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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