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고 매혹적인 자우림의 김윤아

삐삐밴드 이윤정의 개성과 카리스마

옥상달빛, 요조 등 여성 뮤지션 두각

 

남성 뮤지션 놀이터인 전자음악부터

일렉트로 팝까지 다양한 장르에 도전

 

자우림 김윤아 ⓒ뉴시스‧여성신문
자우림 김윤아 ⓒ뉴시스‧여성신문

여성과 뮤지션, 뮤지션과 여성.

따로 존재할 때에는 서로 별다른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 이 두 단어는 모종의 이유로 어깨를 나란히 할 때 갑작스레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남성 뮤지션의 손에 줄곧 좌우돼온 대중음악사 속 어딘가 일상적이지 않은 존재로 박제돼온 여성 뮤지션들의 지난한 역사와 실례를 굳이 진열할 필요가 있을까. 모두 주지하다시피, 여성 뮤지션이 젠더 구분을 벗어나 자신만의 개성과 음악성으로 스스로 주목 받은 경우는 예전에도 지금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윤정과 김윤아, 찬란한 빛

그 희미한 빛이 한국 땅에서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반 즈음부터였다. 성숙하지 못한 사회풍조 탓에 여성과 문화의 접합이 아직은 시기상조라 여겼던 80년대를 지나 한국 대중문화의 황금기라 불리던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몇몇 기억나는 보컬리스트들을 제외하면 여성 뮤지션이 젠더를 벗어나 자신만의 개성과 음악성으로 주목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90년대 중반은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아슬아슬 이어져온 그 희미한 빛 사이로 음악계 내부와 외부에서 기다렸다는 듯 지원군이 쏟아진 시기였다.

TV 모니터 속에서는 삐삐밴드 이윤정이 강기영과 박현준이라는 불세출의 아티스트를 양쪽에 거느리고는 듣도 보도 못한 태도와 메시지로 ‘문화혁명’을 외쳤고, 혜성처럼 등장한 밴드 자우림의 김윤아가 당당하고 매혹적인 태도로 대중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서울의 서편, 홍익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인디’라는 단어가 조금씩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기실 90년대 중·후반 홍대를 이야기하면서 이 두 여성 뮤지션의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개인의 영달 너머 그룹의 색깔마저 규정짓는 뛰어난 개성에서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까지 무엇 하나 부족할 게 없었던 이들의 활약은 이전까지 업계에서 자행돼온 다각도의 대상화로 단단하게 다져진 유리벽을 종으로, 횡으로 깨부숴 나갔다. 스스로 곡을 쓰는 것은 물론 자신을 연출하고 표현하는데 아무런 주저가 없었던 이들은 이후 체리필터, 러브홀릭, 더더 등 여성 보컬리스트를 앞세운 모던록 밴드들의 득세는 물론 네스티요나, 무키무키만만수 등 마니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시대의 아이콘에게까지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인물들이었다.

이런 깊은 속사정의 한가운데, 홍대와 좀 더 가깝게 살을 붙이고 활약해 온 이들의 이름이 있다. 이윤정과 김윤아가 주체적인 여성 뮤지션의 가능성에 레드카펫을 깔아준 인물이라면, 허클베리핀과 3호선 버터플라이의 남상아나 스웨터의 이아립은 실제로 여성 인디 뮤지션이 얼마나 꾸준히 활동을 해 나갈 수 있느냐에 대한 바로미터였다. 물론 이들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무브먼트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홍대 인디의 태동에서 지금까지 밴드, 솔로, 일인 레이블 운영 등 각자의 방법으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꾸준히 펼쳐나가고 있는 두 사람만의 존재감은 2000년대 인디에서 배출된 다채로운 여성 뮤지션들의 근간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곱고 힘있게 퍼져나간 그 기운 덕분이었을까, 인디신은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좋은 여성 뮤지션을 배출했다. 디어 클라우드 나인, 라이너스의 담요 연진, 브로콜리 너마저 계피 같은 독보적 개성과 감성을 겸비한 이들이 속속 등장했고, 2000년대에 들어서며 시대마저 이들의 편에 섰다. 그 가운데 주류 음악의 대항마를 끝없이 찾아 헤매던 섬세한 소비자들 사이 모던록과 소프트 팝이 대세를 이루며 해당 장르에 강점을 지닌 여성 뮤지션들이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호재 중의 호재였다. 누구보다 앞서 인기를 이끈 건 예민한 감수성의 어쿠스틱 듀오와 포근한 보컬을 강조한 싱어송라이터 군이었다. 꾸준히 데뷔하며 인기를 모은 옥상달빛, 루사이트 토끼, 랄라스윗, 제이래빗, 스웨덴세탁소, 볼빨간 사춘기 같은 2인조 여성 그룹들의 음악은 그 자체로 특정 장르로 분류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탄탄한 마니아층을 확보하며 인디 속 자신들만의 자리를 넉넉히 확보했다.

한편 루시아, 요조, 타루 등 주류 음악과는 다른 각도로 다듬어진 색다른 목소리에 쏟아지는 찬사도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지속적으로 발표하며 성장시켜 나가는 것은 물론 까마득한 선배 아티스트에서 아이돌 그룹 멤버까지 아무런 성역도 경계도 없는 협업을 이어나가며 대중음악계에 쉼없이 새 숨을 불어 넣은 장본인이었다.

 

싱어송라이터 최고은 ⓒ소닉아일랜즈 제공
싱어송라이터 최고은 ⓒ소닉아일랜즈 제공

 

허클베리핀, 3호선 버터플라이 남상아. ⓒ이정실 사진기자
허클베리핀, 3호선 버터플라이 남상아. ⓒ이정실 사진기자

 

오지은 ⓒ뉴시스‧여성신문
오지은 ⓒ뉴시스‧여성신문

여성 싱어송라이터 꾸준한 성장

하지만 무엇보다 꾸준히 성장해 온 건 역시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다. 스스로 음악을 만드는 여성은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통념과 여성이 주도하는 밴드가 쉽게 자리잡기 힘든 배타적인 시장구조가 낳은 결과라는 걸 생각하면 뒷맛이 좀 쓰지만, 그만큼 풍성한 라인업의 면면은 씁쓸한 뒷맛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특히 최근 부쩍 좋은 여성 싱어송라이터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는데, 이는 녹음에서 마스터링, 발매까지 모두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제작과정의 DIY화가 낳은 가장 긍정적인 결과물 가운데 하나다. 이제 막 유행을 타기 시작한 자체제작이나 소셜펀딩이라는 단어가 채 등장하기도 전 그 모든 작업을 혼자 해내며 인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오지은을 필두로 수많은 여성 뮤지션들이 어느 때보다 쉽고 편하게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이렇듯 눈부신 기술의 발전은 콘텐츠 자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건 한국 포크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만들어가고 있는 여성 뮤지션들의 이름이다. 최고은이나 김사월처럼 기존 어법의 충실한 계승 위에 색다른 팬 층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이들은 물론 각각 2016년 가장 주목할 만한 앨범을 내놓은 이민휘나 이랑처럼 포크를 베이스로 음악과 시대를 향한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는 이들의 활약도 이어지고 있다.

메인스트림과 인디의 경계선 역시 여성 뮤지션들이 가장 큰 활약을 보이고 있는 파트다. 야광토끼나 프롬처럼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타고난 여성성을 긍정하는 소리를 들려주는 이들은 물론 선우정아나 우효 등 인디와 대중의 경계에서 자신들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이들의 이름도 꾸준히 대중과 평단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금껏 남성 뮤지션들의 놀이터로 금녀의 영역처럼 여겨지던 전자음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하임, 아슬, 씨피카와 에이퍼즈, 바버렛츠, 트램폴린처럼 퓨전재즈에서 일렉트로 팝을 아우르며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하고 있는 전 멤버가 여성으로 구성된 밴드들도 놓치기 아쉽다. 이야기를 늘어놓다 보니 새삼 느껴진다. 그 어느 때보다 자주 ‘여성’이 우리 삶의 화두에 오르는 지금, 우리가 음악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 역시 바로 그 ‘여성’이 아닐까. 

 

볼빨간 사춘기 ⓒ뉴시스‧여성신문
볼빨간 사춘기 ⓒ뉴시스‧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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