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모 6인이 말하는 ‘우리 이야기’

“우린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엄마 아빠”

“남편에게 기대어 살려고 했던 내가 부끄러워져” 

미혼모 “아이 덕분에 삶의 지평과 사고의 깊이 달라졌다”

한부모 선배로서 도움될 얘기 나누고 싶어

“내가 행복해야 아이에게 좋은 모습 보일 수 있어”

 

여성신문이 1월 14일 ‘대한민국에서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을 주제로 마련한 좌담회를 마친 후 한부모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박은주, 김미진, 오진방, 임은정, 길인아씨. 윤자영씨는 사진 촬영에 불참했다. ⓒ이정실 사진기자
여성신문이 1월 14일 ‘대한민국에서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을 주제로 마련한 좌담회를 마친 후 한부모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박은주, 김미진, 오진방, 임은정, 길인아씨. 윤자영씨는 사진 촬영에 불참했다. ⓒ이정실 사진기자

“상처를 뚫고 일어났다기 보다는 무뎌졌다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가정 내 부모는 두 명일 수도 있고 한 명일 수도 있다. 한부모가 짊어진 삶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두 부모가 짊어져야 하는 경제 능력과 자녀 양육이라는 과업을 혼자서 감당하고 있으니 그 무게는 단순 비교해도 두 배 쯤 될 것이다. 거기에 그 무언가 결핍된 동정의 대상이거나 문제가 있다는 차별적 시선까지 한부모를 짓누른다. 그래도 그들은 씩씩하다. 한부모이기에 그만큼 삶의 무게를 버티고 견디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지난 1월 14일 한부모 6인이 모였다. 여성신문이 마련한 작은 좌담회다. 참석자는 김미진(47, 아들·5), 임은정(35, 딸·4), 오진방씨(49, 큰딸·23, 작은딸·19), 박은주(51, 아들·25), 윤자영(34, 아들·10), 길인아(53, 큰아들·19, 작은아들·17)다. 한부모에 대한 편견에도 이들이 공개적인 자리에 나선 것은 사회를 향해 꼭 해줄 이야기가 있어서다. 

 ‘대한민국에서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것’을 주제로 한 좌담회에서 이들은 혼자 벌면서 자녀도 돌보고 노부모를 부양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며 여러 면에서 훨씬 힘든 입장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들의 관심사는 대신 타인에게 의존하는 삶이 아닌, 크고 작은 과업을 스스로 극복해내는 힘을 기르기 위해 더 치열하게 사는 것이다. 또 상대적 행복이 아닌 내면으로부터의 만족감과 평화를 찾기 위해 더 많이 사색한다. 또 소수자의 입장에 놓여 어려움을 겪다보니 다른 소수자들이 보이고 그들과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좌담회 대화 내용을 지면으로 옮긴다.

#‘나 혼자 한다’ 남편에게 기대 살려고 했던 내가 부끄러워져

박은주=이혼해 혼자살면서 난감한 상황 중 하나가 상대방이 남자를 대할 때와 여자인 나에게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걸 느낄 때다. 최근 집주인과 재계약 얘기를 했다. 항상 집주인 부부 중 아내와 통화해 왔는데, 하루는 곤란한 얘기를 할 상황이 되니 그의 남편이 아내의 휴대폰으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쪽은 내가 남편이 없는 걸 안다. 나도 힘세고 욕 잘하는 남편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그러나 남편 유무의 문제 아니라 인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남편이 없으니 내가 내 나름의 방법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오진방=맞다. 자동차 사고가 났는데 상대 운전자가 여자였다. 차에서 내린 그 사람과 얘기를 나누려고 하는데, 곧바로 남편한테 전화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하나부터 열까지 지시받더라. 내 나이 오십이 되고 보니 남편의 힘에 기대 살려고 했던 게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동안 남자에게 얼마나 기대려고 했던가, 남편뿐만 아니라 아빠, 오빠, 남동생 등 다양하다. 저는 요즘 다 큰 딸들과 대화하면서 혼자 살아도 괜찮다는 말도 하게 되더라. 20년간 내편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자식도 떠나보낼 시기가 됐다. 누구나 혼자의 삶을 잘 살아야지 타인과의 관계도 좋아진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박은주=남편과 살았으면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런 생각을 하기 어렵지 않을까. 혼자 헤쳐나가면서 어떻게 성별 대결 상황을 극복하고 단련돼야 하는지 생각을 더 깊게 하고 혼자 맞서기 위해 더 치열하게 고민한다. 지인에게 집주인 남편 얘기를 하면서 빈자리 얘기를 했더니, 남편과의 힘들었던 삶을 까먹어서 그렇다, 있어서 더 괴로운 짐이 되는 남편도 많다고 위로하더라(웃음). 그러면서 지금 내가 행복하다고 깨닫는다. 물론 행복하게 사는 부부도 많지만. 생각이 다양해지고 이해가 넓어진 것 같다.

김미진=내 삶은 미혼모 이전, 이후의 삶으로 딱 나뉜다. 내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렇게 나눈다. 이전의 경력, 어떤 사람이라는 거 다 상관없이 미혼모라는 점으로만 판단하더라. 미혼모가 되고 나니 전혀 새로운 세상이더라. 아들에게 정말 감사한다. 아이가 저를 새로운 인격체로 만들어줬다.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제 삶의 지평과 사고의 깊이가 달라졌다. 원래 유별나다는 소리 듣는 편이었고 인종, 성소수자 다 열려 있다고 생각했는데 미혼모가 되면서 더 다양한 소수자의 문제를 들여다보게 됐고 여성임을 자각하게 됐다. 모든 경계가 무너졌다고 할까. 경제적 상황은 많이 힘들지만 그 문제가 모든 걸 다 없애거나 눈을 가리거나 무너지게 하진 않는다. 매일 아침마다 전투의 욕구를 장전하고 나오게 한다.

임은정=미혼모로 살아보니 사회의 관점, 결혼해야만 아이가 있다는 사회적 편견에 대해 말하고 싶다. 외국에서 공부를 했는데, 대학 졸업 무렵 아버지가 농담삼아 정자은행에서 하버드 졸업생 정자를 받아서 임신하는 것도 괜찮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다. 그런데 막상 아이가 태어나니 10개월까지 얼굴 한번 안보시더라. 어머니는 저한테 동네 사람들이 본다며 유모차 끌고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다. 상처를 안고 살았다. 이제는 상처를 뚫고 일어났다기보다는 무뎌진 것 같다. 다만 아이랑 놀러가거나 하면 사람들이 “둘째는 없어요?”라고 꼭 물어본다. 아이가 있으니 결혼했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어느 직장, 단체에 갈 때면 어느 시점에 커밍아웃을 해야 하나, 늘 고민한다. 딱하다는 동정심 어린 시선이 너무 싫다. 반면 20대 초반 미혼모에게는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편견을 갖는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나의 행복이다. 내가 행복하지 못하면 아이에게 절대 좋은 모습 보일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비중을 많이 둔다. 예를 들어 아이에겐 1년에 신발 한 켤레 사준다. 저는 3개월마다 산다(웃음).

오진방=한부모로서 좋은 점이 있다면 다양성에 눈뜨게 되는 것이다. 남편과 살았으면 정해진 틀 안에서 살았을 텐데 그 경계가 무너지니 다 보인다. 우리가 힘들고 어렵지만 나름대로 뚫고 나가는 힘을 키우고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다. 아이 우윳값, 가스비 걱정, 노후걱정 더 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가 힘드니 더 힘든 사람이 보이고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게 되더라. 힘듦이 무뎌지고, 내가 힘드니 행복을 찾기 위해 더 애를 쓰고 있다는.

윤자영=힘듦이 무뎌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는 요령을 아주 조금 빨리 깨달았다고 생각한다. 혼자 살든 부부로 살든 세상은 살아지는 것이지 내가 특별하고 강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그냥 물 흘러가는대로 평범하게 보통을 삶을 살고 있는데 사회는 다르다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좋은 말로 강한 것이고 나쁜 말로는 팔자사나운 것 아닌가. 난 팔자가 사납든, 강하든 뭐든 간에 그냥 보통의 사람들처럼 성처받고 울고 아파고 기쁜 일에 기뻐하고 감사하고 살고 있다. 다른 점이라면 작은 일에 감사가 넘치는 것. 난 어느누구보다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겪는 이 삶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평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지난 1월 14일 여성신문사 회의실에서 열린 한부모 좌담회 ⓒ이정실 사진기자
지난 1월 14일 여성신문사 회의실에서 열린 한부모 좌담회 ⓒ이정실 사진기자

# 아빠 찾는 아이들...갖지 못한 것을 인정함에 감사

김미진=최근에 아이가 아빠 얘기를 구체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친한 친구의 아빠가 마트에서 일하는데 친구가 ‘아빠’ 외치면서 안기는 모습을 보고 아이가 순간 얼음이 됐다. 우리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다 있는데 젊은 남자를 낯설어 했다. 아이가 어떻게 할지 지켜보는데 “엄마, 나도 아빠 있지?”라고 물어서 “그럼, 아빠 없는 아이가 어딨어?” 라고 대답했다. 아이가 “‘우리는 할아버지도 있고 할머니도 있고 이모도 있는데  친구네 집엔 없네”라고 해서 감동받았다. 큰 산을 하나 넘었다는 생각을 했다. 가지지 못하는 걸 원하는 게 아니라 가지지 않은 걸 확인하고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애들이 다양성을 빨리 받아들인다. 아빠가 없는 게 아니라 같이 안 사는 거라고 말해준다. 장애인, 다문화도 빨리 받아들인다. 열려 있는 것 같다.

임은정=교회에 다니는데 아이가 3살 무렵 젊은 아저씨를 보고는 아빠라고 불렀다. 그 모습에 너무 상처받아 책으로 얼굴 가리고 우니까 저한테 안 오더라. 아빠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지 고민하다가 남자 지인들에게 놀이공원에 아이 데려가서 놀아달라고 부탁했다. 결핍에 대해 자꾸 생각하니까 감사하지 못한 마음이 생겼다.

길인아=아이들이 3년 전부터 나를 등한시하기 시작했다. 아이들 키우면서도 형편상 학교 모임은 못나가고 미안하다. 몸이 아파 일도 못해 자유로운 편인데 갈 곳 없는 상황이 됐다. 남성 한부모를 만날 수 있을까 해서 관련 단체에 문의해봤는데 만나기 어렵더라. 다 여성이다. 소수자 안에서 또 소수자로 역차별도 느낀다. 지금은 인천한부모가족지원센터에서 남성한부모운영팀장을 맡고 있다. 요즘 페미니즘 강의도 듣는다. 여성들만 있으니 남성의 손길도 필요하더라.

# 엄마 차별하는 제도들... 정부가 낙태는 금지하면서 미혼모 지원은 부족

박은주=한부모연합회를 첫 방문했을 때 미혼모가 생각보다 많아서 좋았다. 속으로 ‘우리나라 좋아지겠네’라고 생각했다. 난 이혼했지만 미혼모는 처음부터 자기가 아이를 낳는 문제를 용기있게 스스로 결정한 거니까 말이다. 과거와 달리 여자들이 사회에서 홀로 설 수 있는 영역이 많아지기 때문에 미혼모 선택도 가능해지는 것 같다. 이혼했을 때 호적에 내 아이로 등록할 수 있게 된 게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키워도 동거인이었기 때문에 건강보험도 나눌 수 없었다. 아이는 여자와 상관없었다. 남자의 아기였고 여자는 낳고 시중드는 존재였다.

김미진=아이 이름에 아빠 성을 썼다. 친정아버지가 아이 뿌리를 알려줘야 한다고 우겨서 그랬다. 지금은 후회돼서 내 성으로 바꾸고 싶지만, 호적에 흔적이 남아서 지저분해지니 곤란하다. 양육 미혼모가 늘어난 게 2008년 가족관계등록법이 제정 영향이 큰 것 같다.

윤자영=그러나 여전히 여성에겐 선택권이 없다. 법적으로 낙태 처벌 문제도 그렇고, 가임기여성지도 문제에서 알 수 있듯 정부는 여자를 아이 낳는 기계, 저출산 대안으로만 여기고 있다. 그렇다면 아이를 낳게 했다면 잘 키울 수 있게 뒷받침을 해줘야 할텐데 그것도 아니다.

임은정=다문화가정에 한부모가 많더라. 한국에 대한 동경으로 무작정 한국에 왔다가 도망가거나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한부모가 빠르게 늘고 있다. 봉사활동하면서 찾아간 가정은 아빠가 맹인, 엄마가 베트남 사람인데 아이가 5살 때 엄마가 도망갔다. 오랜만에 만나서 아이에게 피아노 미술 가르쳐줬는데 아이가 안마를 잘 하더라. 너무 안타까웠다.

박은주=한부모가 점점 많아지면 정부도 고민할 것이다. 처음부터 좋은 환경은 없을 것이고 힘든 과정에서 조금씩 바뀌어나갈 것 같다. 엄마로서 살아갈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아져 미혼모, 한부모가 늘어나면 시선도 점차 없어질 것 같다.

오진방=한부모가 자격증 취득과 자녀 교육에 애착이 크다. 사이버대학에 몰리는 게 단적인 예다. 결핍 때문에 채우려고 하는 것인데, 외부에서 이상한 눈으로 보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에겐 긍정도 부정도 아니고 대체제이다. 우리끼리는 인정은 해주면서 지양해야 한다고 얘기할 수 있는 모임이 필요하다. 우리가 왜 글을 써야 하는가. 우리의 관점으로만 볼 수 있는 걸 말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조 모임을 통해서 성찰할 필요는 있다. 자격증 이슈의 경우 그걸 딴다고 해서 더 편한 세상이 오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밑에서 올라가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더라. 터득해야 한다. 우리 글 속에 그런 게 녹아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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