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에 은거한 고려말 충신 원천석이 남긴 유언

한국 상고사 환단고기 [삼성기]하 저자는 원동중이 아닌 원천석

역사를 통한 진정한 문화융성의 의미와 뜻을 되돌아 볼 때

강원도 원주시 치악산 산자락에는 운곡 원천석(元天錫 1330~?)의 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원천석은 조선 태종 이방원의 어릴 적 스승으로, 조선 개국 후 한나라에 두 임금을 모실 수 없다고 치악산으로 들어가 은거했던 고려말의 충신입니다. 태종이 즉위한 뒤로 여러 차례 벼슬을 내리고 직접 치악산으로 찾아갔으나 만나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운곡이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던 것은 고려왕조에 대한 충의였음을 그가 남간 '운곡시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최영 장군을 기리는 것과 우왕, 창왕이 신돈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원천석의 묘지는 조선의 서울 터를 잡아준 무학대사가 잡아주었다고 합니다. 삼대정승이 나서 부귀영화를 누릴 곳을 마다하고 후손을 위해 아래 지점인 '봉효열'에 묻히셨고, 유언에 따라 표석을 세우지도 않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천석 묘 옆에 세겨진 표지말에는 신비한 이야기가 적혀있습니다.

그가 죽음에 임하여 후손들에게 여섯권의 야사를 남기었고 잘 간수하라고 유언하였지만, 후에 증손이 그 내용을 살피다가 국사와 저촉되는 점이 많아 화를 두려워해 불태워버렸다고 합니다.

제가 치악산 원천석 묘를 처음 방문한 때는 오랜 유학 생활을 끝내고 성인이 되어 한국에 돌아와서입니다. 운곡 할아버님의 23세손으로서 저는 항상 묘를 찾을 때 마다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과연 그 책은 불태워 없어졌을까? 할아버님께서 혹시 다른 곳에 숨겨놓으시지는 않으셨을까?

그러던 중 얼마전에 한국 상고사에 대한 환단고기 <삼성기>하* 저자인 ‘원동중’이 원천석이라고 밝혀진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시발인 환인, 환웅, 단군의 이야기를 전하는 책이죠. 세조실록에 ‘안함로’와 더불어 <삼성기>의 저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천석은 진나라의 훌륭한 사관이었던 동호(董狐)를 존경하여 자신의 필명을 동중(董仲)이라고 하였습니다.

운곡 할아버님의 선견지명과 지혜로운 처세술 덕분에 잊혀버릴 수 있었던 역사적 진실이 빛을 보게되었습니다. 한편으론 치악산으로 은거하시고 외로운 삶과 가명을 써가면서 우리 후손에게 전하고자 하신 그 가치는 무엇이였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후손에게 어떻게 그 가치를 전해줄 수 있을까요?

저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운곡 할아버님의 당시에 처한 고통과 갈등의 감정을 소리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그저 바라봐야만 했던 고려의 말세와 새 왕조가 세워졌지만 태종의 스승이면서 벼슬을 마다하고 치악산에 은거하여만 하셨던 그때의 심정을 음악으로 전달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소중한 역사적 진실은 책을 통해 전달되어왔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는 이 밖에도 문화예술을 통해 널리 알릴 수 있습니다. 작가는 그림을 통해, 작곡가는 음악을 통해, 연출자는 오페라와 뮤지컬을 통해, 그리고 영화를 통해서 세상에 알릴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잊혀져 있었던 우리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는 얼마든지 다시 복원시키고 재조명시킬 수 있습니다.

오직 진실만을 기억하고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바로 표현할 수 있는 행위가 ‘문화융성’이 아닐까요?

* 외부기고문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원형준
바이올리니스트 원형준

바이올리니스트 원형준은... 

미국 줄리어드 예비학교를 거쳐 줄리어드 음대와 메니스 음대에서 수학했다. 10세 때 서울시향과 협연을 했다. 홍콩판아시아오케스트라, KBS교향악단, 메서피쿠아 필하모닉, 줄리어드 오케스트라 등과도 협연을 진행했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뉴욕인권네트워크 등 굵직한 국제행사 초청 연주도 가졌다. 영국 옥스포드, 하버드, 시라큐스 대학 등에서 '음악을 통한 한반도 하모니' 특강을 진행했다. 현재는 린덴바움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하버드 대학 Kirkland House 명예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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