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혐의는 ‘무죄’가 아닙니다
무혐의는 ‘무죄’가 아닙니다
  • 강푸름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7.01.16 15:46
  • 수정 2017-01-25 18: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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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성폭력 의혹, 잇따라 ‘무혐의’

‘무혐의=무죄’ 아닌데도 ‘무고’와 연관 시켜

남자 연예인 ‘꽃뱀의 희생자’로 보고

성폭력 피해 호소 여성 ‘꽃뱀’으로 몰아

 

최근 성폭력 사건으로 고소당했던 남성 연예인들이 줄줄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왼쪽부터) 박유천, 이진욱, 정준영씨. ⓒ뉴시스·여성신문
최근 성폭력 사건으로 고소당했던 남성 연예인들이 줄줄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왼쪽부터) 박유천, 이진욱, 정준영씨. ⓒ뉴시스·여성신문
 

남성 연예인들의 성폭력 의혹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개그맨 유상무부터 배우 이민기, 박유천, 이진욱, 정준영, 엄태웅까지…. 이 가운데 가수 정준영을 비롯해 성폭력 사건으로 고소당했던 유상무, 이진욱, 박유천은 줄줄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무혐의가 마치 무죄인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폭력 피해를 호소한 상대 여성이 ‘꽃뱀’으로 취급받는 상황이 반복된다.

지난 15일 정준영은 3개월여 간 자숙을 끝내고 KBS2TV 예능프로그램 ‘1박2일’로 돌아왔다. 정씨는 지난해 9월 여자친구와 성관계 도중 상대의 신체 일부를 촬영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피소돼 조사를 받은 바 있다. 10월 무혐의 처분을 받고 방송계를 떠나 있던 그는 최근 활동 재개를 알렸다. 언론은 일제히 ‘1박2일 막둥이가 돌아왔다!’ ‘무혐의 정준영, 복귀와 함께 시청률 20% 돌파’ 등의 제목으로 정씨의 복귀를 환영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이 불편하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정준영 복귀… 보기 불편한 사람이 아직 많은데. 그 사람 아니면 1박2일 안 되는 건가요?” “여자 연예인들은 그런 사건 있으면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고 복귀 시간도 오래 걸리던데 남자는 참 쉽네요. 아직 얼굴 보기 거북합니다” “온 가족이 같이 보는 프로그램에 복귀는 좀 그렇다” 등의 목소리도 나온다.

연예계뿐만 아니라 정치계에서도 성범죄 무혐의는 빈번히 일어난다. 지난 2015년 심학봉 전 국회의원은 보험설계사 성폭행 혐의를 받았지만 경찰은 ‘혐의 없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지난 2013년 ‘별장 성접대’로 수사를 받았다가 무혐의 처분을 받고, 이어 성폭력 혐의에 대한 고소사건에서도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무혐의처분 결정이 곧 고소인에 대한 무고죄 성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무고죄는 형법 156조에 기재된 범죄로서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를 받게 할 고의와 허위사실 신고라는 요건을 갖춰야 하며, 특히 신고한 사실이 객관적 사실에 반하는 허위사실이라는 요건은 적극적인 증명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사회에서는 무혐의 처분이 곧 고소인에 대한 무고죄 성립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남성을 성폭력으로 고소한 여성은 ‘꽃뱀’으로 몰리게 된다.

 

개그맨 유상무는 지난해 5월 성폭행 미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후 12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뉴시스·여성신문
개그맨 유상무는 지난해 5월 성폭행 미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후 12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뉴시스·여성신문

김재희 변호사(김재희 법률사무소 대표)는 “무혐의에는 두 가지가 있다”며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무혐의와 범죄에 대한 구성 요건 자체가 충족되지 않아서 되는 무혐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무혐의를 ‘피해자에게 무고의 의도가 있었다’는 식으로 보는 시각은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폭력은 주로 사적으로 은밀한 영역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증인과 증거 확보가 어렵고, 수사기관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아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무혐의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폭력 사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혐의 입증이 부족해 무혐의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특히 김 변호사는 “현재 우리나라는 어디까지가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신체부위인지, 어느 정도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인지 사회적 기준이나 법률안이 정립돼있지 않은 상태”라며 “남성중심적인 성 통념은 성폭력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사건 조사 과정에서 피해 여성을 압박하고 움츠러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성폭력 피해 여성들은 수사기관이 가해자의 죄를 입증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고소를 하지만 경찰·검찰의 의심 섞인 눈초리와 압박 수사는 피해자의 몫이 된다.

최희진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장은 “지난 2013년 성범죄 친고죄 폐지로 인해 무고한 사람을 가해자로 만들면 안 된다는 압박이 더 심해져 그런 건지 성범죄 피해 사실에 대한 의심이 강화된 것 같다”면서도 “본래 수사·조사 과정에서 (피해 여성에 대한) 고집스런 의심을 기반으로 한 질문이 많았다”고 밝혔다.

가령 강간이 발생한 경우 피해 여성에게 ‘그 날 이 공간에 아침 몇 시에 있었느냐’라고 물은 뒤 여성이 ‘새벽 몇 시쯤 있었던 것 같다’라고 답하면 ‘몇 시 몇 분에 있었는지 정확히 말하라’며 닦달하듯 집요하게 캐묻는 식이다. 특히 연예인은 유명인이기 때문에 경찰들은 피해 여성이 돈을 노리고 고소를 했다는 의심을 더 강하게 갖는다고 했다.

최 소장은 “성폭력 사건은 중간에 고소를 취하할 수가 없고 사건을 끝내고 싶을 경우 합의를 하게 되는데, 여성이 합의를 하게 되는 경우는 경찰·검찰 조사를 버티기 힘들어서 그런 경우도 있고 가해자가 종용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요즘에는 ‘너 그렇게 나가면 무고죄로 걸어버릴 거야’라는 가해자의 협박 때문에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피해 여성이 합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연예계에서 성폭력 사건으로 고소당한 남성 연예인들이 무고죄로 고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 소장은 피해자들이 그 사건들을 자신의 상황과 비교하면서 ‘내 케이스도 무고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을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연예인들의 성폭력 의혹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경쟁주의적 보도 행태에 대한 지적도 많다. 사건이 터지면 분석 없이 선정적인 제목을 단 단발성 기사만 쏟아내는 경우가 많다. 피소 이유와 논란 지점, 무혐의 처분에 대한 분석을 기사에 담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변호사는 “여러가지 원인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무혐의’ 처분이 내려짐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선 제대로 이야기해주지 않으니 대중들은 여성을 무고와 연관시켜 ‘꽃뱀’으로 몰아간다”면서 “‘여자가 합의금을 노리고 고소했다’는 편견은 남자 연예인을 ‘꽃뱀의 희생자’로 보고, 여자는 ‘꽃뱀’으로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성폭력 피해 생존자가 고소를 주저하는 분위기를 만든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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