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젊은 페미니스트

남자·여자에서 벗어나

유동적 젠더로 세계 관찰

2012년 여성폭력 반대

대규모 시위 이후

인도사회 변화 움직임

 

인도의 1세대 페미니스트 운동가이자 ‘인도타임즈’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던 파멜라 필리포스. ⓒ이정실 사진기자
인도의 1세대 페미니스트 운동가이자 ‘인도타임즈’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던 파멜라 필리포스. ⓒ이정실 사진기자

인도의 1세대 페미니스트 운동가이며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인도타임즈’의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던 파멜라 필리포스가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소장 김은실)가 주관하는 11차 이화글로벌임파워먼트프로그램(1월 8∼22일)에 강사로 참여했다. 그는 인도의 여성운동 역사와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젊은 페미니스트들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다.

“70년대 중후반에 주류신문들은 여성들의 이슈가 너무 시시하다고 다루지 않았어요. 그들은 경제, 시장구조, 정치가들의 이야기가 신문에 적합하다고 봤죠. 이런 식으로 대중 속에서 여성 이슈들은 사라지게 됐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마투라라는 소녀가 경찰서에서 두 명의 경찰관에게 강간당하는 사건이 일어났어요. 젊은 기자였던 저는 이 사건을 신문 한구석에 세 줄짜리 기사로 넣는 것이 아니라 1면에 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편집장은 이렇게 답했죠. ‘강간은 흔히 일어나는 일인데 왜 이걸 특별하게 다뤄야 하지?’”

젊은 파멜라에게 이 문제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은 당시 인도의 여성운동가들이었다. “1975년 제1차 세계여성대회는 인도여성들에게 중요한 계기가 됐어요. 대회에 참여한 2~3명의 여성들은 그곳에서 논의된 여성이슈를 인도여성들에게 전했지요. 그들은 백인여성의 이론으로 인도여성의 문제를 다룰 수 없다고 주장했어요. 인도여성들은 인도 여성들의 경험에 기반을 둔 지식 체계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봤지요. 1985년 나이로비 여성대회가 열리기까지 10년 동안 인도여성들은 자신들의 지식을 만들어가는 데 힘썼어요.”

힌두교 중심의 계급사회인 인도는 이슬람을 차별하고, 경제적인 상황도 서구여성과 다르다. 예를 들어 인도는 쓰레기나 오물을 치우는 체계를 구축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 일들은 달릿(불가촉 천민) 계급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파멜라는 “기자란 단지 사실들을 모아서 전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여성문제, 달릿의 이야기, 차별당하는 무슬림의 이야기 등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기자의 일”이라고 말했다.

파멜라는 요즘 인도에 등장하는 젊은 페미니스트들에 관해서 이야기 했다. “젊은 세대는 우리와 달라요. 그들은 남자·여자라는 범주로 세계를 설명하지 않고 유동적인 젠더로 설명합니다. 레즈비언이라고 밝히고 특히 섹슈얼리티에 관해서는 거리낌 없이 이야기해요. 여성주의란 언제나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는 민주주의지요. 그들의 주장은 사실상 우리세대가 이루어놓은 페미니즘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파멜라는 경쟁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는 젊은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이야기도 놓치지 않았다. “젊은 세대들은 끊임없이 경쟁에 내몰리며 1등이 돼야 하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시장구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들 안에서 페미니즘이 작동하는 것을 발견해요. 우리 세대는 평등을 중요한 이슈로 삼고 서로를 돌보며 나눠야 한다고 보았지요. 저는 이런 가치가 변할 거라고 보지 않아요.”

인도에선 2012년 12월 여자 의대생 집단 강간사건이 일어난 후 여성폭력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파멜라는 “이 사건은 인도사회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국가는 버르마 위원회를 구성해 강간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와 정책을 내놓았다”며 “최초로 부부강간을 불법으로 정하고, 군인이 주둔지역에서 저지른 강간사건은 군법이 아니라 일반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아시아 초국가 여성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파멜라는 “아시아는 시장경제로 연결돼 국가 간 이권다툼과 정치적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그러나 여성들이 함께 모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오간다. 그들은 공통점이 많고 국가의 이익을 대변하느라 경직돼 있지도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파키스탄과 인도는 서로 불편한 관계이지만 여성들이 만나면 서로 나눌 이야기가 많다. 일본 여성이 이번 EGEP에 참여해 위안부 이야기를 함께 나누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파밀라는 젊은 세대들에게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를 나누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스스로 변화시킬 존재이며 우리 사회의 변화의 주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스스로를 교육시키고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것을 익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멜라는 “당신이 서있는 그 곳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라”며 “당신의 몸은 땅과 하늘을 연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늘의 지혜를 받아 세상을 연결하고 화해시키는 모습을 잊지 말라 당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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