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자치부 ‘출산지도’, 여성을 출산도구로 여겨

보건복지부 ‘아름다운 가슴’, 여성의 몸 객체화

여성의 역할 임신·출산·육아에 한정… 국가서 관리·규제?

 

대한민국 출산지도 홈페이지 화면.
대한민국 출산지도 홈페이지 화면.

행정자치부가 구랍 29일 내놓은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보고 있노라면 “여성에게 국가란 없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이 절로 실감난다. 저출생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세우기는커녕 ‘가임기 여성지도’를 만들어 저출생 문제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려버린 행자부의 행태에 많은 여성들이 분노를 터뜨렸다. 지방자치단체별 가임 여성수를 끝자리 수까지 보여주며 등수를 매긴 ‘출산지도’는 여성을 출산 도구로 여겼기에 나올 수 있었다는 목소리가 높다.

‘출산지도’를 계획하고 만들어내기까지 정부 관계자들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가득하지 않았을까.

“아니, 가임여성이 이렇게나 많은데 다들 애 안 낳고 뭐하는 거야? 저출산 문제는 다 애 안 낳는 여자들 문제라니까! 지역별로 퍼져 있는 가임여성들만 애 낳아도 저출산 단박에 해결되겠는 걸?”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게 있다. 여성도 생각이란 것을 하는, 인격체를 가진 ‘사람’이란 것을. 여성은 임신 기계가 아니다. 자신만의 꿈과 가치관,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갖고 있는 인간이다. 그러나 출산지도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 이들의 머릿속에 ‘비혼주의 여성’ ‘비출생을 결심한 여성’ ‘성소수자 여성’ 등은 애초에 없었다. 여성이라는 지정성별과 15~49세의 연령으로 가임여성을 산정하고, 여성들의 출산으로 저출생이 해결될 것이란 생각은 얼마나 안일하고 게으르고 폭력적인가. 여성이면 언젠가 ‘애를 낳을 것’이란 생각은 잘못됐다. 임신·출산·육아는 여성의 로망이 아니다.

여성의 신체기관인 자궁을 국가의 공공재로 바라보고 저출산 문제의 해결책으로 이용하려 한 행자부의 행태는 비판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현재 여성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행자부에 반발하며 ‘비출생’을 선언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트위터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나는_가임여성이다’ 해시태그 프로젝트는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울분을 잘 보여준다.

오늘 이 나라에서 아이를 절대 낳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했다. 나는 오늘 국가에 의해 내가 생물학적 여성이고 자궁이 달렸다는 이유로 공식적으로 가축화된 기분이었다. 책임은 여성이 아닌 국가에 있다. #나는_가임여성이다(@jung*******)

이 나라는 내 성격, 장래희망, 가치관, 미래엔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나는 걸어 다니는 자궁 1개일 뿐이다. #나는_가임여성이다(@alwa*******)

임신을 안 하면 이기적인 년, 낳으면 맘충. 임신중단을 할 권리는 없고 세계에서 제일 낮은 피임률 자랑, 여성용 피임약은 몸에 나빠도 금지 안 하는데 남성용 피임은 칼같이 금지. 가사분담 OECD 꼴찌, 육아 6분. 꺼져 안 낳아 결혼 안 해. #나는_가임여성이다(@uios***)

성폭행 당했을 때 법정 가면 가해자 입에서 ‘저출산 막기 위해서 그랬어요’라는 말이 나올 거 같다. 여성을 성상품화시키는 것은 여자를 멸종시키는 것과 같다. 여자를 성상품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나는_가임여성이다(@G_Ne****)

지금 (비혼)여성의 출산중단권은 그렇게 틀어막는데, 기혼여성들과 여아에 한정해서 낙태는 아주 많이 함. 그래서 지금 가임여성 인구수 줄어들고 ‘출생률’이 떨어졌지. #나는_가임여성이다(@ddrm**)

한국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기 위해서는 무시무시한 양육비와 유치원 전쟁, 교육부담, 경력단절 등 고려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성차별적 노동 환경과 세계 최고 수준의 성별 임금 격차는 저출산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다. 또 여성은 임신으로 인한 신체적 위험과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

하지만 행자부는 여성의 희생과 고통은 무시한 채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목표만을 좇아 기괴한 지도를 만들어냈다. 가임기 여성을 15~49세로 설정했다는 것, ‘가임기 여성 지도’ 다음에는 여성의 생리·초경 통계를 만들 예정이었다는 것은 모두 가부장적 관점에서 탄생한 폭력적인 결과물임에 틀림없다.

 

 

‘국가건강정보포털’ 사이트에 게재됐던 ‘아름다운 가슴이란’ 제목의 게시글과 아름다운 가슴의 모식도. 글에서는 아름다운 가슴의 조건으로 구체적인 수치와 모양을 제시한다.
‘국가건강정보포털’ 사이트에 게재됐던 ‘아름다운 가슴이란’ 제목의 게시글과 아름다운 가슴의 모식도. 글에서는 아름다운 가슴의 조건으로 구체적인 수치와 모양을 제시한다.

여성의 몸은 정부의 관리·규제 하에 놓이면서 출산의 도구로 여겨지는 동시에 성적 객체화되기도 한다.

보건복지부가 국민에게 건강·의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운영하는 ‘국가건강정보포털’은 ‘(여성의) 아름다운 가슴이란’이란 글을 통해 가슴의 미적 조건을 제시하고 그림까지 올리는 등 여성의 신체를 성적 대상화해 뭇매를 맞은 바 있다. 대한의학회가 작성했다는 해당 글은 2010년부터 게재돼 있던 것이지만, 지난해 8월 누리꾼들에 의해 SNS를 중심으로 확산되며 문제가 드러났다.

게시글은 여성의 가슴을 “아기에게는 생명의 정수를 물려주는 곳” “남편에게는 애정을 나눠주는 곳” “여성 본인에게는 미적 가치를 표현하는 곳”이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가슴은 제2의 성기” “여성의 자존심이 표현되는 곳”이라고도 묘사했다. 또 마치 물건을 품평하듯 “현대인의 기준에서 볼 때 아름다운 가슴은 적당히 풍만하고 탄력이 있어야 하며 원추형이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해당 글은 ‘아름다운 가슴의 모식도’라는 이상적인 가슴 모양의 그림을 내걸면서 ‘한쪽에 250cc 정도의 크기’ ‘유륜 직경은 4cm를 넘지 않아야 한다’ ‘유두가 살짝 올라간 모양’ ‘유두의 색깔은 연한 적색’ 등 구체적인 수치와 모양, 색깔까지 언급했다.

누리꾼들은 당시 이 글을 보고 국가가 앞장서 여성의 신체를 성적 대상화하고 획일화했다며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여성의 몸을 재단하고 평가한 보건복지부에 누리꾼들은 “복지부인지 성형외과인지 모르겠다” “하다하다 보건복지부에서까지 내 가슴에 고나리질(‘관리’라는 단어를 빨리 칠 때 발생하는 오타+접미사 ‘질’. 이것저것 간섭하고 가르치려 하거나 이유 없이 통제하고 비평하는 것)하냐”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여성의 몸을 출산의 도구로 보고 평가·재단의 대상으로 삼는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은 물을 수밖에 없다. 

“여성은 이 나라에서 ‘임신기계’ 혹은 하나의 ‘몸뚱어리’에 지나지 않습니까?”

여성의 인격을 지워버리고, 남성과 같은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이제 여성들은 더 이상 참지 않는다.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말하고, 싸울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됐다. 허니 여성들의 목소리를 잊지 않길 바란다. “여자는 걸어다니는 자궁이 아니다. 부위별로 재단 당해 평가받아야 할 객체도 아니다. 여자는 남성들과 같이 ‘생각’을 가진 인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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