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의 한파가 휘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여성들은 저임금·미숙련직에 묶여 가방 끈이 길수록 취업이 더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 가운데 어렵사리 직장을 구한 대졸 여성들은 스스로도 “다른 여성들에 비해 혜택받은 편”이라고 말하지만 성차별적 문화를 견뎌내야 하는 현실이 고달픈 건 마찬가지다.

승진기회 잡기 어려워 결혼 엄두도 못내

모 은행 전산부 직원 K씨 (26·입사 3년)

“회사에서 부서별로 3개월씩 돌아가며 경리 일을 담당하게 하는데 팀 내 여직원이 맡게 되죠. 전산부 들어와서 커피 타는 일까지 하게 될 줄이야… 자존심이 상했죠”

입사 3년차인 K씨. 이제 커피 타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직장생활의 앞날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이다. “승진하려면 줄타기를 잘 해야 하는데 그런 연줄은 남자들만의 것이에요. 여직원은 연고도 별로 없고 술자리에서도 소외되곤 하니까요” 무엇보다 절망적인 건 업무배치다. “기회를 줘야 능력을 발휘할텐데 회사에선 처음부터 여직원들에게 거는 기대치가 낮기 때문에 주요 업무를 맡기지 않아요”

“직장 다니면서 결혼 생각하긴 어려워요” 야근이 빈번한 직장생활을 하며 가사노동과 시집관리, 출산과 육아의 짐까지 짊어지는 건 무리라는 것이다. 그나마 한두 명 있는 기혼 여성상사들은 ‘아기 낳고 며칠 쉬지도 않고 회사에 나와 일했다’는 식의 전설(?)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독한 수퍼우먼’들이다.

주요 사안에서 여성 배제 상실감 느껴

모 벤처기업 사원 C씨 (27·입사 1년)

“벤처는 좀 다를 줄 알았죠. 웬걸요. 남자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건 똑같아요. 다른 것이 있다면 유니폼 안 입고 커피 타는 일 안 해도 된다는 것 정도랄까”

‘능력위주’의 회사에서도 남녀의 역할구분은 존재한다고 말하는 C씨. 사무실에선 “여직원들이 더 일을 잘 한다”고 말들 하지만 막상 회사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논의를 할 땐 “남자들끼리 뭉쳐서 결정한다”는 것이다. “어떤 얘기가 오가는지 우린 눈치껏 알 따름이에요. 왜 여직원을 굳이 소외시키는 건지 알 수 없어요”

게다가 서류정리·문서작성 등의 일은 ‘자연스럽게’ 여직원들의 몫이 돼 이중의 일을 해야 한다고. “벤처라는 말은 허상이에요. 회사에선 직원들에게 자신이 회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라지만 그건 남자직원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죠”

성희롱만연 남성문화, 바라볼 여성모델 없다

모 반도체 회사 연구원 N씨 (25세·입사 5개월)

“회사문화는 폭탄주와 당구, 스타크래프트로 이루어진 남자들 문화죠.”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N씨는 요즘 회사생활을 견뎌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바라볼 수 있는 여자상사 모델이 있다면 훨씬 든든하겠어요. 회사에 남아있는 여성들은 모두 미혼(독신을 포함한)이고 소위 ‘준남성화’돼 있다고 말한다. “남자들 문화에 맞추게 되는 거죠. 가령 ‘남자는 이래야 돼. 여자는 저래야 돼’하는 식으로…”

무엇보다 그를 황당하게 하는 건 서슴지 않고 자행되는 남자직원들의 성희롱이다. “갑자기 ‘뽀뽀하자’며 덤비는가 하면 어깨와 허벅지를 만지작거리는 거예요” N씨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한다. 남자들은 ‘장난’이라고 하면 그만인데 정식으로 문제 제기하면 분위기만 어색해지고 업무에서 소외당할 게 뻔하다는 것이다. “새로 들어온 여직원은 무조건 얌전하고 소심할 거라고 생각하죠. 어느새 ‘나’라는 사람이 없어지고 무언가 가면을 뒤집어쓰고 사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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